역시 선생님이시다. 워낙에 말씀을 재미있게 하셔서 한 시간 반쯤 되는 방송을 논스톱으로 들을 수 있었다. 정말 틀린 말씀이 하나도 없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들이었다. 잠자리에서 듣고 있었는데 막 일어나서 메모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여러 가지 말씀 중 쪽수에 대한 말씀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선생님께선 쪽수로 밀어부치는 것만큼 천박한 게 없다고 하셨지만 내 생각에 영화산업에서의 쪽수는 천박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쪽수가 다다. 포스트 봉준호의 부재 역시 쪽수 때문이다. 진중권은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영화계에서 겪고 있는 포스트 봉준호의 부재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쪽수 때문이다.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가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재미없어지는 걸 보고 그 이유에 대해 틈날 때마다 잠깐씩 고민했었으나 답을 찾을 수 없던 와중에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몇 년 전부터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일본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역시 틈날 때마다 잠깐씩 고민해본 결과 문제는 쪽수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게 다 고령화 때문이다. 십여년전 일본처럼 한국도 늙고 있다. 포스트 봉준호만 없는 게 아니다.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들도 십 년 전 A급이 지금도 A급이다. 상업영화만 이런 거면 이게 다 대기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독립영화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십년 전 유망주들이 아직도 유망주다. 평론계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포스트 봉준호의 부재 문제는 한국영화 산업이 돌아가고 있는 이상 언제라도 누군가 갑툭튀하면 해결될 수 있지만 포스트 정성일의 부재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포스트 정성일이 가능한 토양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현장만 이런 게 아니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신입생 때 교수님들이 지금도 교수님이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한 때 영화 기획 업계(?)에선 20대 초반 여성 관객들의 취향이 진리였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다. 이건 그냥 내 짐작이지만 등산복 입고 극장에 오는 중장년층이 더 쎌 것 같다. 한국이 늙으면서 한국영화도 다 같이 늙은 것이다. 활력이 없어졌다. 독과점 문제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랄까? 선생님께서 태국영화를 칭찬하셨는데 태국영화가 뜨는 이유 역시 태국이 아직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초창기 봉준호나 박찬욱만한 감독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못 믿겠으면 그들의 초기작을 보면 안다. 다만 늙은 관객은 극장 밖에서도 그렇지만 극장 안에서도 모험을 원하지 않는다. 늙으면 지적 호기심이 떨어지는 법이라 키노 같이 어려운 잡지도 멀리 할 수밖에 없다. 늙으면 잘 모르는 말은 듣기 싫어지고 공부도 멀리하게 된다. 이제는 십년 전과는 달리 초창기 봉준호나 박찬욱이나 키노 등등과 조금은 부족한 점이 있어도 함께 지지고 볶으며 성장할 젊은 관객의 쪽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십여년전 혜성처럼 등장한 한국영화의 에이스들도 결국은 여러 분야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쪽수로 밀어부쳤기 때문에 십년 넘게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영진이 7년 전부터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한국영화 미래없다는 기사를 쓰곤 하는데 일면 맞는 말이다. 김영진은 이게 다 대기업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쪽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이고 뭐고 문제는 쪽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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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3D에 대한 경외심은 약해지고 스토리에 대한 허무함만 강해진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별 것도 아닌 영화에 참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다.

김영진 말이 맞다. 김영진이 헛소리라 그랬으면 헛소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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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의 영화랑] 아바타 이전과 이후? 헛소리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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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의 점프 컷] 사건만 남고 감정은 휘발되고  

선정이유

불신지옥에 대한 리뷰들 중 딱히 이거다 싶은 리뷰가 없었는데  김영진의 점프컷은 달랐다.
불신지옥이 잘 만든 영화였음에도 왜 하나도 무섭지 않았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역시 김영진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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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영진이다.
한동안 김영진의 글을 읽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이렇게라도 김영진의 글(?)을 읽게 되서 기쁘다.

관련기사 : 서울아트시네마, 올해는 고비를 넘겼지만...  
관련포스팅 : 2008/11/27   나는 김영진의 러프컷 애독자이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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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재기에 대한 생각

나는 <김영진의 러프컷> 애독자이다. 꽤 오래 전부터 <김영진의 러프컷>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꾸준히 정독하고 있다. 최근에 업데이트된 <영화계 재기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게 읽었다. 안타깝게도 한국 영화계는 그가 러프컷에서 꾸준히 피력해온 희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애정이 샘솟는 모양이다. 안타까움이 지속되면 내적으로 지칠 텐데, 김영진은 그걸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승화시켜 끊임없이 가슴 뜨끔한 충고들을 쏟아내고 있다.


김영진은 이번 <김영진의 러프컷>에서 우석훈의 책들에 대한 감상과 인용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했다. 자신이 우석훈의 책들의 애독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한국 영화계에도 우석훈과 같은 혜안이 있는 이론가가 있었다면 훨씬 입체적인 대안을 많이 내놓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우석훈에 대한 평가는 둘째치고라도 김영진이 그토록 안타까워하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은 우석훈과 같은 이론가의 부재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김영진이 우석훈보다 못할 게 뭐 있는가?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 분야에선 김영진이 우석훈보다 뛰어날 것이다. 한국 영화계의 문제는 우석훈과 같은 이론가가 있고 없고의 여부가 아니다. 김영진 스스로도 주장했듯 문제는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답은 뻔히 나와 있고 대안도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이다. 역사적으로도 대부분의 문제들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였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한국 영화 침체의 원인 분석과 꾸지람(?)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 터져나오는 훈수와 대안들에 관한 언론 기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조선 시대에 활약했던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이 생각난다. 그들도 보다 이상적인 토지 활용법에 대해 고민하며 여전제, 균전제, 정전제 등의 주장을 했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침묵했다. 보다 이상적인 토지 활용법에 대해 자기들끼리 갑론을박 할 수는 있지만 당시 대다수 토지의 주인이었을 양반들이 그들의 주장에 동의해 자신들이 소유한 토지를 내 놓는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도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다만 힘없는 실학자들이 힘있는 양반들 소유의 토지를 ‘어떻게’하려면 아마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게 문제였을 것이다.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그 ‘어떻게’는 ‘어떻게’가 아닌 것이다. 당연히 실학자들의 주장은 수포로 돌아갔고 그들이 주장했던 여전제, 균전제, 정전제 등은 이제 교과서로만 전해 내려올 뿐이다.


김영진은 부가판권시장이 궤멸했고 극장흥행은 양분되었고 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정착시키면 된다고, 스크린 숫자를 제한하면 된다고, 부가판권 시장 문제라면 불법 다운로드를 합법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부가판권 시장 문제에 관해서는 정부가 마음먹고 밀어붙이면 안 될 것이 없지만 그게 되지 않는 이유도 언급하며 안타까워한다.


백번 옳은 소리지만 김영진의 문제도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이다. 특히 스크린 숫자를 제한하면 된다는 주장이 그렇다. 김영진은 ‘단순하게 말하면 스크린 숫자를 제한하면 된다’ 고했지만 절대로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토지에 대해서라면 토지의 소유와 처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적절히 제한할 수 있다는 토지 공개념이라도 적용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스크린에 대해서는 스크린 공개념(?)을 주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 제123조는 '국가는 토지소유권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민법 제2조는 '개인의 소유권리라도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제212조에서는 '개인의 소유권이라도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 내에서만 행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스크린은 토지와는 다르다. 스크린의 주인은 스크린을 소유한 기업의 주주들이기 때문이다.

CJ CGV나 롯데쇼핑(롯데시네마는 롯데쇼핑의 시네마사업본부이다.) 주주들에게 문화 산업 다양화를 위해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 개봉관 수를 좀 줄이고 대신 장률 감독의 <이리> 개봉관 수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굳이 겪어봐야 아는 건 아니다. 이에 대해 문화 산업에는 국가의 정체성과 유산이 걸려 있고 국가는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고유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므로 국가는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는 문화 산업 보호의 명분이 있긴 하지만 스크린쿼터조차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단순하게 스크린 숫자를 제한하면 된다고 주장해봤자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우여곡절 끝에 스크린 숫자 제한에 성공한다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자꾸 <이리>를 예로 들어서 미안한데 만약 <지구가 멈추는 날> 개봉관수를 줄이고 <이리> 개봉관 수를 확대하는 식으로 스크린 숫자 제한을 확대 실시한다면 전체 극장 관객수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스크린 숫자 제한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 지의 여부는 둘째치고라도 스크린 숫자를 제한한다 해도 <이리>같은 작은 규모의 창의적인(과연 <이리>가 창의적인 영화인지의 여부도 둘째치고) 영화의 개봉관수가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고(스크린 숫자 제한으로 인한 빈 개봉관들은 <이리>같은 영화들이 아니라 제2, 제3의 <지구가 멈추는 날>같은 영화들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스크린 숫자 제한으로 인해 한국영화 시장의 파이 자체가 작아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영진 뿐만 아니라 강한섭과 우석훈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의 문제도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이다. 상황이 불변한다면 과거 설명에 유효한 이론은 미래 예측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현실이란 상황의 변화를 주된 성격으로 한다. 미래의 상황이 현재와 다르지 않다면 과거에 대한 설명력이 예측력으로 직통될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는 변화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경제학자들이 과거에 대해 아무리 그럴듯한 설명력을 가졌다 해도 그와 동급의 예측력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B라는 문제가 있는데 과거에 A였기 때문에 B라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A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A가 아니었다고해서 B라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므로 A를 비판하는데 대부분의 분량이 할애되어 있는 경제학자들의 책은 연예인 가쉽 기사 읽듯이 한번 읽고 잊어버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들은 과거를 설명하고 비판하는 데에는 뛰어날 수 있지만 정확한 미래 예측력을 바탕으로한 ‘어떻게’를 포함한 현실 문제 타개를 위한 유효한 정책 수립은 그들의 전공이 아닌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궁극적인 ‘무엇을’에 대해선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귀납적 분석을 곁들이며 남들보다 그럴듯하게(말 그대로 그럴듯하게) 주장할 수 있지만 미래는 과거와 다르고 현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므로  ‘어떻게’해야 그 ‘무엇을’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선무당이 될 수 밖에 없다.


강한섭은 얼마 전에 한국 영화 침체의 대안으로 800억 펀드를 제안했는데 ‘어떻게’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800억 펀드가 조성되면 참 좋을 것 같다. 왜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800억 펀드가 가능한지보다는 왜 900억이나 1000억이 아니라 800억 펀드였는지가 궁금하다. ‘어떻게’가 없는 대안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제안할 수 있다. 나는 한국 영화 침체의 대안으로 800억 펀드가 아니라 5000억 펀드를 제안하고 싶다. 강한섭의 800억 펀드보다 애드맨의 5000억 펀드 제안이 더 뛰어난 제안이 아닌 것과 같은 이유로 미래 예측과 정책 제안 분야에서는 ‘무엇을’보다는 ‘어떻게’가 중요한 것이다.


김영진은 우석훈의 <짝패>에 대한 상찬을 전해들은 류승완이 ‘그 분 훌륭한 분이더군요. 근데 주류는 아니죠?’라고 웃으며 반문했다는 이야기를 언급하며 주류 비주류론을 제기했는데 주류라서 어떻고 비주류라서 어떻고 백날 따져봤자 사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인신공격의 오류’ 또는 ‘정황에 호소하는 오류’에 빠질 뿐이다. 주장의 정당성은 주장하는 이의 사람됨이나 정황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김영진은 자칭 타칭 경제전문가들이 수두룩한 학계와 언론계에서 경제위기에 대해 누구도 명쾌하게 진단하는 걸 보지 못했다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정말 실력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정확히 실력이 없다기보다는 아마도 ‘어떻게’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해야 하는가. 안타깝지만 나에게도 ‘어떻게’는 없다. 그러나 지금 문득 생각난 ‘어떻게’가 하나 있긴 하다. 다른 문제들에 대해선 잘 모르겠고 작은 규모의 창의적인 영화 활성화의 대안으로 전국의 대학교에서 영화학과 학생들과 교양 영화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에게 작은 규모의 창의적인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작은 규모의 창의적인 영화를 반드시 극장에서 관람하고 티켓을 첨부한 감상문 리포트를 제출하기 과제를 내 주는 건 어떨까? 학생들이 싫어할까? 이거 혹시 불법인가?;;;


과연 내년에는 몇 편의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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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꿈은 텔레비전에 나와 보는 게 아니라 필름2.0이나 씨네21 같은 영화 주간지에 실려 보는 것이었다. 필름2.0이나 씨네21 같은 영화 전문 주간지에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한 특집 기사가 <한국 예술영화가 도달한 절경> 같은 제목과 함께 서너 페이지에 걸쳐서 실리고 정성일이나 김영진 같은 훌륭한 평론가님들에게 ‘참 잘했어요’ 라는 칭찬도 받아 보고 싶었었다.

필름2.0이나 씨네21 같은 영화 전문 주간지에 실리기 위해 영화를 잘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그날 이후 하루 이틀 삼년 사년 영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어정쩡하고 무의미하게 세월을 흘려보내다보니 나도 모르게 필름2.0이나 씨네21 같은 영화 전문 주간지에 실려보겠다는 꿈은 서서히 희미해져갔고 정성일이나 김영진 같은 훌륭한 평론가님들에게 ‘참 잘했어요’ 라는 칭찬을 받아보고 싶기는 커녕 그저 어떻게든 한 편이라도 만들어서 극장에 단 몇 일 만이라도 걸어봤으면 바라게 되었다. 그나마 작년부터는 어떻게든 한 편이라도 만들어서 극장에 걸어보기는커녕 어떻게 해야 이 바닥에 붙어있을 수 있을 지만 궁리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정확히 일년 전 오늘이었다.

하고 있던 일은 도저히 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될 지도 모르겠고 새벽인데 잠도 안 오길래 나도 모르게 블로그라는 걸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블로그를 만들긴 했는데 뭘 올려야 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런 글 올렸다가 욕이라도 먹고 상처라도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글을 올렸는데 고맙게도 몇몇 님들이 덧글을 달아주셨다. 남이 만든 블로그에 덧글이 달리는 건 봤어도 내가 만든 블로그에 덧글이 달린 건 처음이었고 누가 돈을 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 블로그를 열심히 한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엔 또 어느 님들이 덧글을 달아주시는지 확인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재미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술에 취하거나 멀쩡하거나 졸리거나 말거나 슬프거나 울고 싶거나 매일 매일 꼬박 꼬박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물론 1년간 블로그를 열심히 해 온 것과는 상관없이 하고 있던 일은 여전히 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점점 더 깝깝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블로그를 하던 중 하루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덧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스타일의 비밀 덧글이 올라왔다. 한국 최고의 영화 전문 주간지 필름2.0에 내가 만든 블로그에 대한 글이 실렸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블로그를 하며 다양한 종류의 덧글을 읽어왔지만 이런 스타일의 덧글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필름2.0에 내가 만든 블로그에 대한 글이 실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12시가 넘은 심야 새벽에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나가 필름2.0을 확인해보았다. 새벽 시간이라 손님이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서 한참을 필름2.0을 이리 저리 뒤적이며 도대체 어디에 내가 만든 블로그에 대한 글이 실렸다는 건지 찾아보고 있었는데 편의점 매니저가 다가왔다. 편의점 매니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지금 내가 뒤적이고 있는 필름2.0이 내 소유의 필름2.0이냐고 물어왔다. 당연히 아니라고 하니까 필름2.0을 살 것도 아니면서 편의점 안에서 그렇게 오래 동안 읽으면 안 된다고 했고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 빈 손으로 편의점에서 나왔다. 덧글을 달아주신 건 고마웠지만 조금 허무했다. 그 당시엔 블로그를 하다보니 정말 별 일을 다 겪는구나 싶었는데 과연 몇 일 뒤엔 내가 그 때 읽었던 필름2.0의 다음 호에 내가 만든 블로그에 대한 글이 실려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를 안 만들고도 필름2.0 같은 영화 전문 주간지에 실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드디어 텔레비전이 아니라 영화 전문 주간지에 실려보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이루어져서 기분이 좋긴 했는데 블로그의 성격상 차마 필름2.0에 실린 블로그가 내가 만든 블로그라고 평소에 영화 일을 하며 알게 된 지인들에게 자랑할 수가 없어서 조금 안타까웠다. 미친 척 하고 자랑해보려고도 했는데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게 뻔해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하여간 생각지도 못하게 어릴 적 꿈이 이루어지고 나니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블로그를 하고 있었는데 필름2.0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언제나 좋은 칼럼으로 영화를 보는 눈을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주신 장병원 편집장님과 김영진 기자님이 필름2.0에 마지막 칼럼을 올린 것이다. 두 분의 마지막 칼럼을 읽고 나서야 한국 영화만큼이나 한국 영화 전문 주간지도 어렵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고 마지막 칼럼이라고 생각하니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구구절절히 가슴 속에 사무치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러프컷은 그 동안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읽어왔을 정도로 김영진 기자의 팬이었고 나의 어릴 적 꿈을 실현시켜주신 장병원 편집장님에게도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마지막 칼럼을 읽게 되서 가슴이 아팠다. 비록 필름2.0에서는 더 이상 김영진 기자님과 장병원 편집장님의 칼럼을 읽을 순 없겠지만 벌써부터 다른 어딘가에서 읽게 될 다음 글들이 기다려진다.

기대된다.

p.s. 감동의 순간 : 필름2.0엔 참 좋은 기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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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추억


우려

불법다운로드


흥행예상

기대 < 우려


요즘도 가끔은 아트선재센터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걸터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기억이 난다.


오전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해 점심 때가 되면 근처에 있는 화교 종업원이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주로 먹었고 가끔은 아트선재센터 바로 옆에 붙어있는 분식집에도 갔었다. 다음 영화 상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면 정독 도서관에도 가끔 갔었고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매표소 앞에서 우연히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한참을 자주 가다보면 한번 만났던 사람들을 계속 보게 되는데 나중에는 하도 자주 봐서 모르는 사이도 아닌 것 같아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인 적도 있다. 지금도 서너명은 기억나는데 다들 요즘에도 시네마테크를 자주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네마테크가 낙원상가로 이사간 다음부터는 출석률이 확 떨어졌고 언젠가부터는 거의 안 가게 됐는데 딱히 낙원상가에 불만도 없으면서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낙원상가보다는 아트선재센터가 훨씬 좋긴 했다. 그러나 낙원상가가 싫어서 안가는 건 아니고 아마도 불법 다운로드에 점점 익숙해져서인데 극장에서 보기 힘든 영화들을 집에서 볼 수 있게 된 건 좋지만 확실히 영화를 보면서도 틈틈이 인터넷 들락 날락 하느라 1시간 30분짜리 영화를 보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고 재미없는 영화다 싶으면 10초 건너뛰기로 30분 만에 보기도 해서 아무래도 영화를 본 것 같지가 않다. 아트선재센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즐거움도 없고 말만 안했지 아는 사이나 다름없는 보기만 해도 취향이 비슷할 것 같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을 못 만나는 것도 아쉽다. 물론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오승욱, 류승완, 김영진 등 유명한 영화인들을 같은 관객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최양일이나 스즈키 세이준 그리고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 때는 아트선재센터 앞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미리 연락을 안해도 극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적당히 취해서 집에 갔다가 다음날 눈 뜨자마다 아트선재센터로 허둥지둥 출근하던 그때 그 시절은 그립기는 하지만 다시 돌아올 것 같진 않다. 나는 지금도 다운로드를 망설이는 중인데 빨리 나라에서 말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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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김영진 기자를 좋아한다. 김영진 기자가 연재하는 러프컷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읽어오고 있다. 이번호 러프컷 영화광의 꿈과 생활인의 응시도 역시 좋은 글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영진 기자가 교수라는 사실이다.

물론 교수도 생활인이고 나름대로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는 직업이겠지만 전업 영화 잡지 기자보다는 훨씬 편하고 배부르게 느껴진다. 여전히 김영진 기자의 글은 훌륭하고 감동적이지만 김영진 기자가 아니고 김영진 교수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글을 읽어보면 배부르고 등따시니까 이런 글이 나오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진정성이 떨어진다거나 글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느낌은 아니다. 다만 강건너 불구경한다는 느낌?

지난 주 러프컷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본 두편의 영화 생각에서 김영진 기자는 '구로사와 기요시와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의 체력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젊은 감독들의 허영기 없는 맷집이 긴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외형적으로 풍요로운 듯 보이지만 영화적 정체에 대한 사고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한국영화계도 이미 폐허 같은 지점에 와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영화학과 학생들에게 영화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는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이지만 영화산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영화 잡지 기자가 쓸 필요는 없는 글이었다.

만약 박봉에 시달리는 전업 영화 잡지 기자가 저런 글을 쓴다면 상당히 멋있어 보일 것 같다는 아쉬움에 두서없이 끄적여 보았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