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숲'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4.07 상실의 시대 걱정된다
  2. 2010.08.17 노르웨이의 숲 걱정된다


개봉일
2011.04.21.

메인카피
사랑을 앓고, 알아가던 스무살의 그때...

줄거리
17살. 나, ‘와타나베’(마츠야마 켄이치)는 절친 ‘기즈키’, 그의 연인 ‘나오코’(키쿠치 린코)와 함께 항상 셋이 어울렸다. ‘기즈키’가 홀연히 죽음을 택하고 남겨진 나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19살. 도쿄의 대학생이 된 나를 ‘나오코’가 찾아온다. 매주 함께 산책을 하면서 서로 가까워지게 되고, ‘나오코’의 스무 살 생일날 우린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후로 한동안 연락이 없던 ‘나오코’에게 현재 요양원에 있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그 곳을 찾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조금씩 확고해져 가는 것만 같다. 20살. 같은 대학에 다니는 ‘미도리’(미즈하라 키코)가 내 삶에 들어온다. 톡톡 튀는 성격의 그녀에게서 ‘나오코’와는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나오코’의 편지가 점점 뜸해지던 어느 날, ‘나오코’의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기대
원작의 명성

우려
하루키의 문체를 영상으로 옮길 수 있을까?

흥행예상
기대 < 우려

참 신기하다. <노르웨이의 숲>을 분명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줄거리를 읽어보니 하나도 재미없어 보인다. 작가 이름을 지우고 줄거리만 놓고 보면 십중팔구 “누가 이걸 영화로 보겠어?”라는 소리가 나올 법한 시나리오다. 아마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을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로만 썼다면 영화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래서 작가는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자기가 어느 방면에 재능이 있는지 하루 빨리 파악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만약 하루키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었다면 지금처럼 건강하지는 못할 것이다. 암튼 영화의 줄거리가 하나도 재미없어 보이는 이유는 하루키 특유의 문체까지는 줄거리에 소개할 수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루키 소설의 매력은 문체가 절반인데 문체는 줄거리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옮길 수 없을 것 같다. 상상이 안 된다. 배우들의 이미지가 내가 상상하던 와타나베, 나오코, 미도리가 아니라는 점은 괜한 투정일 수 있지만 하루키 특유의 문체를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재미를 영화를 보면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영화의 제목이 <상실의 시대>인 것도 불만이다. 나는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기 때문이다. 혹시 한국영화 <노르웨이의 숲> 때문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개봉하는 걸까?

관련 포스팅
노르웨이의 숲 걱정된다 

p.s. 와타나베가 너무 잘생겼다.

Posted by 애드맨

개봉일

2010년 9월 2일


메인카피

벌건 대낮에 벌어지는 피 말리는 삽질 무비!


줄거리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숲을 찾은 8명의 남녀가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게임에 휘말린다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코믹하게 풀어가는 일명, ‘코미디가 되고 싶은 잔혹극’. 코믹 호러를 내세운 한국의 저예산 장르영화. 시체를 버리러 숲을 찾은 두 명의 건달. 땅을 파던 사이에 시체가 사라졌다. 같은 시간, 밀회를 즐기는 불륜커플과 세 명의 불량 학생들이 숲을 찾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목적을 이루기 전에 그들을 노리는 또 다른 등산객과 만나야한 다는 사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대

노르웨이의 숲인 줄 알고;;


우려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란 걸 알고;;


흥행예상

기대 < 우려


노르웨이의 숲이 개봉한다길래 엄청 설레였다. 드디어 와타나베랑 미도리를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된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에겐 TvN의 ‘불친절한 경호씨’로 더 유명한 정경호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노르웨이의 숲에선 정경호가 맡을 만한 배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스터 바탕의 저 빨간색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여주인공인 미도리란 이름과도 노르웨이의 숲이란 단어의 느낌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잠시 후에 제목만 노르웨이의 숲이란 걸 알고 나서야 “아하~ 그럼 그렇지;” 했지만 속은 것 같아 기분이 영 이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류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저예산 스릴러 영화의 홍보 전략치곤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제목이 네덜란드의 숲이라든가 볼리비아의 숲이었다면 수많은 여타 저예산 영화들의 경우처럼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숲이라면? 영화 제목이 완전 초인기스테디베스트셀러 소설의 제목과 같으므로 잠깐이나마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관객들로 연결될 것 같진 않다. 일본 소설 노르웨이의 숲과 한국 영화 노르웨이의 숲 사이의 간극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정경호의 간극만큼이나 넓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걱정된다.


p.s. 원조 노르웨이의 숲의 개봉 소식. 와타나베가 너무 잘 생겨서 조금 실망했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