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이저 영화사 + 대박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호환마마, 전쟁 등의 재앙만 없다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2. 메이저 영화사 +대박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기획팀에서 시나리오의 문제점을 지적하겠지만 아무런 상관없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3. 메이저 영화사 + 보통 감독 +재미있는 시나리오

감독 교체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무난하게 크랭크인 할 수 있다.


4. 메이저 영화사 + 보통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영화사 대표가 밀어붙인다면 기획팀의 구박을 받으며 크랭크인 할 수 있다.


5. 메이저 영화사 + 신인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영화사 대표가 밀어붙여야만 기획팀도 수긍하는 분위기 속에서 크랭크인 할 수 있다.


6. 메이저 영화사 + 신인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신인감독에게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고쳐오라는 숙제를 내주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감독은 대표 얼굴도 못보고 주로 기획팀 막내와 커뮤니케이션한다.


7. 마이너 영화사 + 대박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영화사 대표가 양아치만 아니라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마이너 영화사에는 기획팀이 없는 경우가 많다.


8. 마이너 영화사 + 대박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영화사 대표가 정상인이고 감독에게 시나리오 수정 의지만 있다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기획팀이 있다면 반대 의견을 내겠지만 대박작품 감독님 앞에서는 아무 소리 못한다.


9. 마이너 영화사 + 보통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메이저 영화사와 공동제작을 시도하면 조금 더 빨리 크랭크인 할 수 있다.


10. 마이너 영화사 + 보통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고쳐달라고 부탁하고 사무실을 빌려준다.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전략적으로 기획팀과 친해지는 감독도 있다.


11. 마이너 영화사 + 신인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시나리오의 컨셉을 도용당할 가능성이 조금 있다.
표절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영화사 대표와 신인감독이 법정에서 만날 수도 있지만
보통은 신인 감독이 그냥 참고 넘어간다.


12. 마이너 영화사 + 신인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장동건을 캐스팅하거나 영화진흥위원회가 도와준다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메이저 영화사는 대기업들과 친하거나 따로 믿는 구석이 있는 영화사입니다.

마이너 영화사는 메이저 영화사가 아니거나 신생 영화사 입니다.


대박 감독은 대박 작품을 연출한지 몇 년 지나지 않은 감독입니다.

보통 감독은 대박 작품 연출 경력이 없는 기성 감독입니다.


재미있는 시나리오는 읽고 나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나리오 입니다.

재미없는 시나리오는 중도 포기했거나 회의를 위해 억지로 읽은 시나리오입니다.


스타 배우 캐스팅은 크랭크인을 뜻하므로 고려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Posted by 애드맨

얼마 전 한국 영화계의 양대 대기업 메이저 영화사 중 한 곳에서 경력 사원 모집 공지가 떳길래 냅다 지원했다. 보통은 3대 대기업 메이저 영화사라고 하지만 그 중 한곳은 영화는 그만하고 건설업으로 업종을 변경한다는 루머가 있길래 제외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즘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영화인들 대부분이 이 회사에 지원해서 경쟁이 치열하다고는 하지만 나 정도의 경력이면 서류전형은 통과할 줄 알았다. 운 좋게 채용된다 해도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들 금방 나간다는 소문도 있지만 그건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모집대상은 영화사업 전문성의 극대화 및 창의적 사고를 통한 역량강화를 목적으로 도입한 영화전문 직종인 프로젝트 매니저, 엑스큐터인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직종이지만 프로젝트 성과에 따른 보상이 가능하고 면접 때 열심히 하겠다고 큰소리로 외치면 어쩐지 시켜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영화사에서 제공하는 이력서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력서의 칸을 하나 하나 채워 넣다보니 최소한 서류에서는 당연히 합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모집 요강에 3년 이상 경력자 중에서도 주요 흥행작품 참여경력자를 우대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작품은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언제나 개봉한 해의 비흥행순위 영화 랭킹 상위권에 올라갔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마 흥행 작품 참여 경력이 없다고 떨어뜨리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대박이 나든 쪽박이 나든 스텝의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무리 돈 계산 잘하고 현장 진행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스텝이라도 개봉 이후의 쪽박과 대박은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대 조건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이력서를 작성하다 뜬금없이 개인 재산을 적어야 되는 칸을 발견하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회사에 붙으려면 돈이 많은게 유리한지 적어야 유리한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재산이 너무 많으면 헝그리 정신이 없어 보이고 일이 힘들면 금방 나갈 놈이라는 인상을 줄 것 같고 돈이 너무 없으면 횡령이나 뇌물에 약하거나 영화사 비품 도난의 우려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 같기 때문이다. 포스트잇, 호치키스, A4용지, 볼펜, 가위, 칼 그리고 스카치테잎이 너무 자주 떨어지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빈칸으로 남겨뒀다.


정성스레 이력서를 작성한 후 지원 버튼을 클릭했는데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서류 전형 합격자에 한하여 유선으로 통보 한다던데 이력서 제출 이후 나에게 전화한 사람은 친구랑 가족 그리고 스팸업자들 뿐이다.


서류전형에서 탈락이라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처음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다. 과거의 동료들이 경쟁자가 되어버린 비정한 현실과 나를 서류전형에서 탈락시킨 메이저 영화사 대표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제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력서를 작성한 후 지원하기 버튼을 클릭할 때 실수를 한 것 같다. 왠지 전산상의 착오 때문에 제대로 이력서가 접수되지 않았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건 나의 잘못도 메이저 영화사의 잘못도 아닌 단지 전산상의 오류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원하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이제는 김광섭 대표님을 그만 미워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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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