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목은 ‘범죄자의 탄생’이지만 딱히 내용에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 일본 제목은 ‘무숙인별장’이라고 한다. 책 소개에 따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농촌을 도망 나온 탓에 인별장(호적 장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자들을 일러 ‘무숙’이라고 했고 ‘무숙인별장’이란 작가가 만든 가공의 장부 이름이라고 한다. 도시에서 호적이 없어 취업을 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본의 아니게 범죄에 엮이는 무숙자들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겨 있는데 내가 인상 깊었던 건 무숙자들이 관리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모질고 혹독하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분노나 원망은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설령 분노와 원망이 있더라도 속으로 삭이고 그저 나라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묵묵히 따를 뿐이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기세다. 묘하게 고분고분했다. 우리 같았으면 개처럼 살기보단 영웅처럼 죽겠다며 죽창을 들고 일어났을 텐데 이들은 차라리 도망을 쳤으면 쳤지 반항은 하지 않는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은 이유가 수백 년 전부터 나라에서 잔인하리만큼 가혹하게 통치 당해왔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서 조금만 거슬리거나 수상한 행동을 해도 어디론가 끌려가 감금당하거나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은 잠깐 놀러 가기엔 좋을지 몰라도 오래 눌러 앉아 살기엔 빡센 나라 일지도 모르겠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최근 한국 출간작들에 실망하고 있었는데 간만에 감탄하며 봤다. 시종일관 다이나믹하고 박진감 넘쳤다.


Posted by 애드맨


나는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중,하 구매자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들도 대부분 구매했다.

비록 오와 열이 맞진 않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들을 볼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그 중 걸작 단편 컬렉션은 워낙에 훌륭한 기획이어서 당연히 대박났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출판사 둘이 연합해서 마쓰모토 세이초 전집을 내준다니 정말 존경스럽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아 빨리 읽고 싶다. 기대된다~!

관련 포스팅
Posted by 애드맨


2009/05/02   앤잇굿 선정 박쥐 베스트리뷰 [6]

얼마 전 신기주 기자의 '박찬욱스럽기'를 '앤잇굿 선정 박쥐 베스트리뷰'에 선정한 바 있다. 그 당시 선정 이유에서 '<박쥐>는 걸작은 못 된다'라고 단언하는 자신감은 조금 걱정된다고 우려했었는데 방금 전 (프랑스 현지 시각으로 7시 30분 쯤)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야 말았다. 박쥐가 칸느에서 상을 받아버린 것이다. 물론 '칸느에서 상 받았다고 다 걸작은 아닙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칸느의 권능이 너무 큰 게 사실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 받았다고 다 걸작은 아닙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어감부터가 다르다.


모름지기 특정 예술 작품에 대해 걸작 졸작을 쉽사리 단언하는 태도는 무척이나 리스크가 큰 법이다. 흥행예상이야 빗나간다해도 ‘죄송합니다만 관객들의 마음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라고 머리 한번 긁적이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특정 예술작품에 대해 걸작은 아니라고 단언했는데 훗날 그 작품이 알고 보니 걸작이라고 판명(?)난다면 무식해서 그렇다거나 영화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앤잇굿 선정 박쥐 베스트리뷰 말미에 ‘앤잇굿 선정 베스트리뷰는 앤잇굿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사족을 덧붙여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신문 칼럼 등에서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사족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p.s. 박쥐의 칸느 수상 소식에 당혹해하고 있을 모든 반박(?) 진영의 리뷰어들에게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 ‘진위의 숲’ 일독을 권한다.

관련기사 : '박쥐',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올드보이' 영광 이어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