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영화사직원의비공식업무일지'에 해당되는 글 164건

  1. 2011.07.02 돈 안주면 쓰지 마라
  2. 2011.06.12 표절에는 신경쓰지 마라
  3. 2011.05.26 한국영화를 멀리하지 마라
  4. 2011.05.17 정치 이야기는 쓰지 마라
  5. 2011.05.01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지 마라
  6. 2011.04.26 지문은 신경쓰지 마라
  7. 2011.04.17 여자들이 싫어하는 건 쓰지 마라 (1)
  8. 2011.03.20 그래도 노인 이야기는 쓰지 마라
  9. 2011.03.04 자위행위는 쓰지 마라
  10. 2011.02.23 빨리 쓰지 마라
  11. 2011.02.08 굶어가면서까진 쓰지 말자
  12. 2011.02.01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는 쓰지 마라
  13. 2011.01.24 주식은 하지 마라
  14. 2011.01.18 직장 다니면서 쓰지 마라 (2)
  15. 2010.12.28 영화에는 때가 있다 (1)
  16. 2010.12.12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남은 길
  17. 2010.12.05 영화판 이야기는 쓰지 말자
  18. 2010.11.16 실존 인물은 주인공으로 쓰지 마라
  19. 2010.11.14 비밀리에는 쓰지 마라
  20. 2010.11.05 아이폰 공인 서비스 센터 체험 후기;; (1)
  21. 2010.11.01 아이폰 사설 수리 센터 체험 후기;;
  22. 2010.10.16 자기 이야기는 쓰지 마라
  23. 2010.09.24 SF도 쓰지 마라
  24. 2010.09.14 좀비 이야기는 쓰지 마라
  25. 2010.07.30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여성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
  26. 2010.07.11 피디랑 싸우지 마라
  27. 2010.07.08 블로그나 트위터에 일 얘기는 올리지 마라 (2)
  28. 2010.07.04 자기 싫은 남자와는 자지 마라 (1)
  29. 2010.06.25 시나리오 쓰면 불행해진다 (2)
  30. 2010.06.24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말은 쉽다. 돈 안주면 안 쓰면 된다. 상식적으로도 그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특히나 영화를 정말 하고 싶어서 수년째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해왔지만 매번 떨어지기만 해서 더 이상 당선될 자신은 없고 영화사에 직접 시나리오를 보내도 봤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질 않고 딱히 알고 지내는 영화인도 없고 믿을 만한 구석도 없는 작가 지망생에겐 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솔직히 아직도 돈도 안주고 한 번 써와보라고 시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진 않는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런 사례들이 직간접적으로 들려오는 게 참 신기할 뿐이다.

넋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웹서핑이나 하고 있는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온다. 누군가의 소개 또는 우연히 작가님의 시나리오를 읽고 같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다고 한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하는 사람이라니까 약속을 잡고 만나보기로 한다. 이런 전화 받으면 진짜 행복하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순간이 왔구나 싶다. 그런데 세상 물정을 조금 아는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 사람이 돈 안주고 한번 써와보라고 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워낙에 그런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전화를 걸어 혹시 돈 안 주고 한 번 써와보라고 할 거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점심 약속은 아니다. 2시 쯤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기는 아직 점심 한 끼 사 줄 가치도 없다는 의미여서 씁쓸하지만 초면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 커피 전문점에서 만나는 게 어디냐 싶다. 어쨌든 만났다. 다행히 커피는 얻어마셨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들어보니 좀 오래 되긴 했지만 그 때 그 대박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옳거니! 그런 대박 작품에 참여했을 정도면 분명 나 하나 쯤은 작가로 데뷔시켜 줄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요즘 자기가 진행 중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 얘기를 해준다. 우와 이런 대단한 사람이 자기같은 하찮은 작가 지망생에게 연락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간다. 자기가 따로 준비 중인 아이템 얘기를 해 주며 한 번 써 볼 생각이 없냐고 넌지시 떠본다. 써 볼 생각이야 물론 있다. 그래서 있다고 한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며 그럼 언제까지 한 번 써와보라며 데드라인도 정해준다. 열심히 하겠다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대답한다. 돈 얘기가 궁금하지만 괜히 돈 얘기 꺼냈다가는 분위기가 싸해질 것 같아 조심스럽다. 알아서 돈 얘기 해 주길 기다리다 자리는 마무리 지어지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시계를 보니 딱 저녁 먹기 전이다. 자기는 아직 저녁 한 끼 사 줄 가치도 없다는 의미여서 다시 한 번 좀 씁쓸해진다.

집으로 오는 길에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말로만 들어오던 “한 번 써와봐라” 사례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다. 동료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서라도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다. 어쩌면 잘 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동료 작가 지망생들 걱정 할 때가 아니고 시나리오야 어차피 혼자서 돈 안 받고도 수십편 넘게 써왔는데 한 편 쯤 더 쓴다고 키보드가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은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서 영화하긴 싫다. 영화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려 회의라는 걸 해 보고 싶고 영화사 구경도 해 보고 싶다. 그동안 혼자서 영화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모른다. 눈 딱 감고 딱 한 번만 써 보기로 한다.

더 이상 긴 말 안 하겠다. 쓰지 마라. 그런 사람하고는 놀지도 마라. 아예 전화도 받지 마라. 괜히 전화 안 받았다가 나중에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한 번 써와보라고 시키는 사람 중엔 누군가에게 업무상 불이익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돈도 안 주면서 한 번 써와보라고 시키는 사람하고는 어차피 뭘 해도 안 된다. 내 말 못 믿겠으면 한 번 다 썼다고 연락해봐라. 십중팔구는 지난 번 만났던 커피 전문점에서 2시 쯤에 만나자고 할 거다. 아무리 열심히 써 가도 그 시나리오로 투자를 받기 전에는 밥 한 끼 제대로 얻어먹기도 힘들 거다. 정 외롭고 힘들면 트위터해라. 트위터하는 작가님들 팔로우하면 알게 되겠지만 대단한 영화 몇 편씩 한 작가님들도 골방에 틀어박혀 외롭고 힘든 건 마찬가지다. 원래 다 그런 거다. 돈 안주면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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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기 때문에 새로운 뭔가를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표절에는 신경쓰지 말라는 얘기다. 예전에 잠깐 같이 일하던 감독님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일을 시작하려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만난 모 작가 지망생에게 괜찮은 거 있으면 괜찮으니까 걱정말고 그냥 표절해오라고 주문하셨다. 이 말은 말 그대로 표절을 해 오라는 건 아니고 지나치게 오리지널하려는 경향이 있던 그 작가 지망생에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좀 쎄게 한 것이다. 당시 그 작가 지망생은 시나리오 회의 때 누군가 레퍼런스의 ‘레’, 우라까이의 ‘우’자만 꺼내도 속으로만 비분강개할 정도로 지나치게 오리지널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작가 지망생은 속으로만 비분강개해도 얼굴에 다 티가 나는 스타일이라 주변에서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작가 지망생님들 중에 종종 이런 경우가 있는데 정말 이럴 필요가 없다.

지나치게 오리지널하려는 경향이 뭔지 쉽게 예를 들자면 만약 누군가 자폐증 환자인 형과 뭔가 꿍꿍이가 있는 동생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거 ‘레인맨’ 표절 아니냐고, 한국 최초의 스키 점프 국가대표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거 ‘쿨러닝’ 표절 아니냐고, 조직 보스의 딸과 결혼하려는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거 ‘미키 블루 아이즈’ 표절 아니냐고 비분강개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는 표절 아니다. 다른 나라에선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표절 아니다. 괜히 비분강개 할 필요가 없다. 괜찮은 아이디어를 떠올려놓고도 혼자서 검토해보고는 “에이 그거 어느 영화에서 벌써 했던거네”라고 포기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는 한국에서 영화 못 한다 (드라마도 비슷하다). 만약 질주를 멈추면 터지는 폭탄을 배달하게 된 퀵 서비스맨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스피드’ 때문에 못 하겠다거나 바다에 떠 있는 석유 시추선에서 벌어지는 심해 괴생명체와 대원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에일리언’ 때문에 못 하겠다거나 어느 못 나가는 가수가 귀신들린 비디오 테잎을 습득한 다음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90년대 중반 이후에 제작된 한일 공포영화들이 세 편 이상 떠올라서 포기해버렸다면 올 여름 극장가에선 한국영화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표절하게 될까봐 지나치게 오리지널하려고 할 필요가 없듯 억울하게 표절 당할까봐 지나치게 몸 사리고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어느 시나리오 학원의 특강에서 “시나리오의 저작권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느냐”는 작가 지망생의 질문에 “시나리오의 저작권은 원래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던 어느 영화사 대표가 생각나는데 그런 건 아니고 현실적으로 시나리오의 저작권 아니 아이템은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건 그냥 답이 없는 문제이므로 모든 걸 운명에 맡기고 신경을 끄는 수 밖에 없다. 물론 해도 해도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훔치는 경우는 답이 있을 수도 있지만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훔치기 때문이다. 아이템은 먼저 만드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는 힘없는 작가 지망생들만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아니다. 한때 한국영화계에서 최고로 잘 나가던 영화사 대표조차 술자리에서 별 생각없이 아이템 얘기를 꺼냈다가 그 술자리에 있던 감독에게 아이템을 빼앗기는 일이 있었다. “시나리오의 저작권은 원래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던 그 영화사 대표조차 어느 신인 작가의 시나리오 아이템을 훔쳤다는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은 굳이 예를 들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그냥 좋은 사람 만나길 바라는 수 밖엔 답이 없다. 표절에는 신경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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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오랜 시간 동안 안 풀리다 보면 한국영화를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여기서 ‘오랜 시간’이라함은 1~2년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1~2년 정도 안 풀리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가서 1~2년 정도 안 풀렸는데 오랜 시간 동안 안 풀린다고 말하지 마라. 10년 넘게 안 풀리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10년 정도는 안 풀려봐야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는데도 안 풀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2년 정도는 그냥 습작 기간이라고 봐야 한다. 암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안 풀렸는데도 한국영화를 멀리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한국영화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안 봐도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어는 말하는 만큼 들린다는 말이 있다. 영화도 비슷한 것 같다. 쓰는 만큼 보인다. 작가는 물론이고 한 편이라도 써 본 피디와 한 편도 안 써 본 피디는 다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쓰지는 않았더라도 뭘 쓸지 고민한 만큼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어지간해서는 영화를 보는 안목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이쯤되면 줄거리만 봐도 어느 영화의 우라까이인지 어느 영화들의 조합인지 대충 견적이 나온다. 시나리오를 안 봐도 어떻게 썼는지 다 알 것 같다. 굳이 영화를 볼 필요성을 못 느낀다. 줄거리랑 예고편만으로도 충분하다. 안 봐도 알 것 같은 영화를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극장에서 보게되면 머리에서 쥐가 나고 막 괴로워지기도 한다. 그런 경우를 몇 번 겪고 나면 안 봐도 알 것 같은 영화는 절대로 안 보게 된다. 특히 한국영화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한국영화의 제작 환경이 뻔하니 작가가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무슨 고민을 했고 그래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외국영화에 비해 더욱 잘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노림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한국영화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비록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이 바닥에서 구르다보면 아는 사람이 한 두 명씩이라도 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다 친구가 되진 않는다. 친구는커녕 원수가 될 수도 있고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되기를 바라기는 싫은 사이가 되기도 한다. 자기는 오랜 시간 동안 안 풀리는데 잘 되기를 바라기는 싫은 사람이 만든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보고 싶겠는가? 안 보고 싶겠는가? 게다가 그 사람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면 어떻겠는가? 잘 되고 말고를 떠나 배가 아프겠는가? 안 아프겠는가? 적어도 극장까지 가서 보고 싶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잘 되기를 바라기는 싫은 사람이 늘어갈수록 멀리하게 되는 한국영화의 수도 많아진다. 그냥 없는 영화인 셈 치면 속은 편해진다.

근데 이러면 안 된다. 줄거리만 보고 어느 영화의 우라까이인지 어느 영화들의 조합인지 맞추는 건 대단한 능력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다들 하고 있다. 중요한 건 그래서 뭘 어떻게 쓰느냐인데 한국영화를 멀리하다보면 점점 감을 잃게 되고 이미 남들이 했던 걸 자기 혼자만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알고보면 다 비슷비슷한 영화를 보며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걸 알려면 한국영화를 봐야 한다. 잘 되기를 바라기는 싫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영화를 보기 싫은 경우엔 딱히 답이 없다. 다만 그렇다고 영화를 안 볼 필요까지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 하나 안 본다고 잘 될 영화가 안 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바닥에선 굳이 누군가가 안 되기를 바라지 않아도 된다. 극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언젠가는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중력의 법칙과도 비슷한 것 같다. 한국영화를 멀리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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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정치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냥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재미있다. 기존 언론 매체는 물론이고 포털 뉴스만 들어가 봐도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등등의 순으로 언제나 정치 뉴스가 가장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트위터나 블로그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치 이야기는 임팩트로 보나 파급력으로 보나 피드백으로 보나 RT수로 보나 덧글 수로 보나 한번 터지기만 하면 그 정도에 있어 여타 이야기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정치적 성향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멤버들로 구성된 술자리 등에서 정치 이야기가 금기시되어 있는 이유도 정치 이야기가 지나치게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이야기는 섣불리 꺼냈다가는 그 순간부터 다른 화제는 몽땅 버로우 되고 술자리가 파토나는 그 순간까지 오로지 정치 이야기로만 달려야 될 가능성이 크다. 중간에 흐지부지 끝나면 직성이 풀리지 않아 끝을 봐야 하는 것이다. 니 편 내 편 가르기도 쉽다. “넌 좌파니 우파니?”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넌 대통령 누구 뽑았는데?”로도 가능하다. 암튼 그 정도로 정치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고 중독성도 강하고 끝도 없다.

그런데 한국엔 정치 영화가 드물다. 일상 속 정치 이야기의 흥행 성적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된다. 흥행에 성공한 정치 영화는 커녕 정치 영화 자체가 거의 없다. 정치 영화하면 흔히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떠올리는데 그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인 1991년 개봉작이다. 올해 성년의 날의 주인공이 1991년생들이다. 20년 전에 태어난 신생아들이 성년의 날을 맞이하기까지 흥행과 비평의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라도 제대로 잡은 정치 영화가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더 안타까운 건 그 당시 온갖 상이란 상은 다 수상한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가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한국 정치 영화의 역사는 지금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왜 한국에선 이렇다 할 정치 영화가 나오지 않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최종 보스 즉 나쁜 놈 설정의 어려움 때문인 듯하다. 결국엔 주인공이 나쁜 놈을 때려잡든 나쁜 놈에게 때려 잡히든 해야 되는데 누가 나쁜 놈인지 설정하는 일부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시대 배경이 현재에 가까울수록 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90년대 이전이 시대 배경이라면 별 문제없다. 그래서인지 정치적 성향이 강한 영화들 대부분이 90년대 이전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정통 정치 영화는 아니어도 정치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간 프로젝트의 기획 과정을 몇 번 구경한 적이 있는데 매번 최종 보스 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툭하면 이랬다 저랬다 하더라. 요즘엔 미국, 군산복합체, 그들과 결탁한 부패 정치인, 악덕 재벌 등이 최종 보스의 단골 후보들인데('한반도'이후 친일파는 줄고 있는 추세다) 그들이 진짜로 나쁜 놈인지 여부는 둘째치고 막상 그들을 최종 보스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다 보면 언제나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분명 더 나쁜 놈들이 있을 것 같다.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생긴다. 그렇다고 이 놈 저 놈 그 놈 모두 다 나쁜 놈이라고 할 수도 없고 1시간 반짜리 영화에서 이 놈이 왜 나쁜 놈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구구절절이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영화가 더 이상 영화가 아니게 되어버리거나 대중 영화치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져버리는 경향이 생긴다. 몇 안 되는 ‘쓰는 이’들조차 최종 보스에 흔쾌히 납득을 못 하는데 수십 수백만이 넘는 ‘보는 이’들을 어떻게 납득시키겠는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분노하라’에 나온 것처럼 이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이야기는 잘 쓰기도 어렵고 잘 써도 어렵다. 때론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반드시 써야 되는 이유가 없다면 정치 이야기는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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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나도 그 맘 다 안다. 왜 모르겠는가? 다른 일 하는 친구들하고 만나봤자 연예인 누구 아는 지나 물어보고 촬영장에서 몇 번 봤다고 안다고 말할 순 없으니 딱히 해 줄 이야기는 없고 술 마시며 음담패설이나 나누다 보면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고 너는 나중에 감독되면 내라 그래서 술값도 안 냈지만 조금 허무하다. 감독 된다고 다 술값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조금 답답하고 굳이 그런 말 하는 것도 우습고 암튼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이다. 반면 영화하는 친구들하고 만나면 비록 누가 술값을 낼 것인지에 대한 부담이 있긴 하지만 (특히 영화 한 지 1년 이상 지난 멤버들의 모임일 경우) 연예인 누가 아냐고 물어보는 애도 없고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서로 사정 다 알고 있으니 부연 설명 필요없고 어쩌면 뭔가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껀수가 생길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뜨기도 한다. 가끔은 술자리에서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게 사실이고 처음 보는 영화인이라도 알아두면 이 바닥 좁으니 언젠간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꾸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게 되고 다른 일 하는 친구들과의 모임은 연례 행사가 되는 경향이 생긴다.

그러면 안 된다. 특히 작가는 그러면 안 된다. 영화하는 친구들끼리 모여봤자 “작품 언제 들어가?”, “계약했어?”, “투자됐어?”, “캐스팅은?” 솔직히 이 네 마디가 대화의 대부분이다. 영화 얘기도 안 한다. 은행원들이 모이면 예술 얘기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 얘기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맨날 영화판 얘기만 쓸 것도 아니고 작가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세계를 겪고 알아야 되는데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렸다간 점점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다른 일 하는 친구의 지인들과도 어울리며 홍상수 영화 얘기 꺼냈다가 소외감도 느껴보고 심형래 욕하다가 멱살도 잡혀봐야 관객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고 풍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코 쉽진 않다. 어렸을 때야 두어번 만나도 금방 친구가 되지만 머리가 좀 크고 나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술자리가 맨날 있는 것도 아니고 맨날 같이 술 마신다고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친하다고 정말 친한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자주 만난다 해도 일 끝나면 관계도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지 말고 폭넓은 인간 관계도 결코 쉽진 않다면 어쩌라는 건가? 혼자 놀라는 건가? 아니다. 가족들과 어울리라는 거다. 가족들 중에서도 이왕이면 엄마하고 노는 게 좋다. 효도도 할 수 있고 일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몇 년 간 대중문화의 대세가 바로 엄마기 때문이다. 조만간 개봉하는 마마부터 시작해서 마더, 애자, 엄마, 친정 엄마, 열 한 번째 엄마, 엄마는 창녀다, 인어 공주,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경축 우리 사랑 등등. 당장 기억나는 한국 영화만 해도 이 정도고 외국 영화 중에서도 엄마 이야기가 많고 제목에 엄마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엄마의 비중이 큰 영화들이 엄청 많다. 조만간 대박이 예정되어 있는 써니도 강형철 감독이 우연히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 한 장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고 한국 소설 최초로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엄마를 부탁해도 엄마 이야기다. 영화나 소설 뿐만 아니다. TV 드라마는 99% 엄마(시어머니) 이야기다. 최신 유행에 뒤쳐지지 않겠다고 굳이 트렌드세터들을 기웃거릴 필요 없다. 영감을 얻겠다고 막 해외 여행가고 집 떠나서 고생할 필요 없다. 가족들과 어울리면 다 해결된다. 가족들 중에서도 이왕이면 엄마랑 자주 대화를 나누고 엄마가 재밌어 하는 걸 유심히 관찰하고 효도도 해라.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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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를 쓸 때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한 줄에서 막혀 버렸다고 한다.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를 놓고 극심한 고민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소설가에게 문장은 중요한가보다. 그렇다면 시나리오 작가는 어떨까? 예전에 어떤 시나리오 작가님이 ‘유리, 산에 가다’와 ‘산에 가는 유리’를 놓고 한참을 고민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나는 그 과정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다 시나리오가 소설도 아니고 그런 거 고민할 시간에 아이디어 하나라도 더 구상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그분께선 시나리오 작가도 작가이므로 소설가가 문장으로 승부하듯 시나리오 작가는 지문으로 승부해야한다고 주장하며 고민을 계속 하셨다. 그날 저녁엔 지문에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야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된 매력으로 피디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도 덧붙여 주장하셨다.

실제로 그분은 지문을 감각적으로 잘 쓰는 걸로 유명했고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는 모르겠지만 뭔가 있어 보이긴 한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물론 지금은 그분이 ‘유리, 산에 가다’와 ‘산에 가는 유리’중 어느 쪽을 선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한 거 아닌가? ‘유리, 산에 가다’나 ‘산에 가는 유리’나 읽는 이에겐 그게 그거다. 그러나 그 당시엔 그분의 주장이 그럴 듯하게 들렸고 진짜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분은 전도유망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나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이제 갓 영화학과 졸업생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 상황에선 중박 작품 하나만 했어도 다 대단하게 보이는 법이다. 이런 걸 ‘분해의 오류’라고 하던가? 암튼 나는 그분 말이 맞다고 생각했고 한동안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유리, 산에 가다’와 ‘산에 가는 유리’를 놓고 한참을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던 내 마음 속에 의혹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 건 지문을 발로 쓴 듯한 시나리오도 이야기만 재밌으면 영화화 되는데 반해 감각적인 지문으로 유명한 그분의 시나리오는 메인 투자와 캐스팅에 번번히 실패하다 결국엔 엎어지는 걸 여러 번 지켜보고 난 후부터다. 감각적인 지문은 시나리오를 구원하지 못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없어 보이는 지문보다는 뭔가 있어 보이는 지문이 낫긴 하다. 시나리오가 재미는 없어도 지문이 감각적이면 필력은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어쩌면 윤색 작업을 의뢰받을 수도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윤색 전문 작가라는 직업이 성립 가능한지는 모르겠는데 가능하다면 뭐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윤색 열 번 하느니 오리지널 한 편 쓰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이다. 지문은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고 난 다음 문제다. 글꼴도 마찬가지다. 분명 글꼴은 시나리오의 첫인상이다. 시나리오의 전체적인 느낌을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꼴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로맨틱 코미디가 명조체라면 좀 뜬금없긴 할 것이다. 그래도 글꼴에는 신경쓰지 마라. 정 고민되면 그냥 바탕체로 해라. 로맨틱 코미디가 명조체여도 재미만 있다면 영화화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오타와 비문도 마찬가지다. 몇 날 며칠을 오타 체크만 하다 자기 눈에는 더 이상 오타가 보이지 않는다며 오타 체크를 부탁하는 작가를 본 적이 있는데 다른 건 다 완벽하다고 판단했으니 그랬겠지만 그럴 시간 있으면 대사라도 한 번 더 점검하는 게 낫다. 오타 좀 있으면 어떤가? 국어능력인증시험 볼 건가? 소설가의 문장과 시나리오 작가의 지문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지문에는 신경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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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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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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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장의 메인 관객층이 젊은 여자들이라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영화 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뮤지컬, 연극, 소설, 음악, 미술 다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 작가들은 여자 작가들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한 게 사실이다. 젊은 여자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 작가들은 여자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남자 작가들에 비해선 훨씬 잘 안다. 그걸 쓸지 말지는 다른 문제지만 적어도 여자들의 욕망을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자기가 욕망하는 걸 솔직히 써도 된다는 건 분명 엄청난 메리트다. 자기의 욕망과 영화 시장의 메인 관객층인 여자들의 욕망은 일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아직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 작가들은 여자 작가들과는 달리 자기가 욕망하는 걸 솔직하게 썼다간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여기 여고생과 남고생이 있다. 둘 다 소설가가 꿈인데 아직 습작 한 편 안 써 본 상태다. 그래서 눈치보지 말고 각자의 욕망을 솔직하게 소설로 써보라고 시켰다 치자. 과연 뭐가 나왔을까? 여고생의 욕망은 잘 생긴 남자랑 결혼하기일 것이다.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걸 마다하는 여고생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고생의 욕망은 뭘까? 솔직히 남고생에겐 욕망보단 욕정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 남고생에게 욕망은 없다. 단지 욕정이 있을 뿐이다. 예쁜 여자랑 결혼하기가 꿈인 남고생은 단연컨대 없다. 예쁜 여자들이랑 섹스를 많이 하는 게 꿈인 남고생이 있을 뿐이다. (물론 아닌 남고생도 있고 성적 다양성도 존중하지만 이 글에선 넘어가기로 하자.) 남고생이라면 가정보다는 하렘인 것이다. 이건 내가 겪어봐서 잘 안다. (참고로 남중, 남고, 군대 경력자임) 여고생이 자기가 욕망하는 바를 솔직하게 쓰면 귀여니처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남고생이 자기가 욕망하는 바를 솔직하게 썼다간 성인 사이트 야설 게시판에서 익명의 댓글로만 환영받는 게 고작이다. 남고생이 여고생처럼 쓰려면 훈련이 필요한데 그건 하루 이틀로 되는 게 아니고 욕정에 초연할 수 있다면 이미 남고생이 아니다. 그건 30대 후반 정도가 되어도 가능할까 말까다. 분명 소설가가 꿈인 남고생들도 여고생들만큼이나 많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남자 귀여니는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시나리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젊은 여자 시나리오 작가에 비해 젊은 남자 시나리오 작가가 괜히 적은 게 아니다. 만약 아직 젊고 혈기왕성하고 습작도 별로 안 써봤고 주변에 친한 여자들도 없고 여자들에게 작품을 모니터 받은 경험도 거의 없는 남자 작가라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봐도 좋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걸 쓰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싫어하는 건 쓰지 말아야 되는데 뭘 알아야 쓰든 말든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일반적인 남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의 경우엔 주변에 친한 여자가 많기가 정말 쉽지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암튼 대부분은 그렇더라. 그러니 남자 작가 지망생들은 더 분발하고 노력해야 한다. 시나리오 공부는 기본이고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 지까지는 몰라도 뭘 싫어하는 지는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주변에 친한 여자가 없다면 남초 게시판에서 걸그룹이랑 야구 얘기만 하지 말고 여초 게시판에 가서 놀아라. 가서 여자 회원들이랑 싸우지 말고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라. 어떤 감독님은 술집에 가서도 꼭 여자 종업원들에게 자기가 준비 중인 아이템을 얘기해주고 재밌는지 물어보더라. 바로 이런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가서 AV 찍을 게 아니라면 여자들이 싫어하는 건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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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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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예상계에 묵직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나는 10만만 넘어도 다행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걱정된다>는 포스팅을 올린 적도 있다. 예상이 어마어마하게 빗나간 셈이지만 그다지 부끄럽진 않다. 나는 시나리오는 커녕 원작 만화조차 안 읽어본 상태에서 예상을 했고 예상이라고 해 봤자 그냥 블로그에 올리고 마는 것 뿐이라 적중해도 그만 안 적중하면 조금 부끄러울 뿐이지만 나와는 달리 원작 만화를 읽어보고 시나리오도 읽어보고 감독도 만나보고 배우도 만나보고 직원들끼리 모여서 회의도 하고 여기저기 모니터도 돌려본 후 최종적으로 흥행이 안 될 거라 판단해서 투자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벌 돈을 못 번 나보다 훨씬 잘 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뭐 그다지 부끄러워하진 않을 것 같다. 노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흥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벌 돈을 못 번 건 사실이지만 돈을 까먹은 건 아니므로 아마 회사에서도 이해해 줄 것이다. 암튼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흥행 성공으로 한국 영화가 좀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 질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래도 노인 이야기는 쓰지 마라. 아무리 노인 이야기라도 좋은 이야기이기만 하면 <그대를 사랑합니다>처럼 관객들이 반드시 알아봐는 주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관객들이 알아봐주려면 일단 영화로 만들어져서 극장에 걸려야 하는데 노인 이야기를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썼을 경우엔 영화화가 어렵기 아니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오리지날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다음 연재 만화였다. 그것도 그냥 무명 작가의 만화가 아니라 강풀의 만화였고 독자들의 지지도 확보된 상태였다. 이럴 경우엔 영화화가 말이 된다. 시나리오를 읽어본 누군가가 “관객들이 노인 영화는 안 볼 것 같다.”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강풀 아시죠? 이거 강풀 만화에요. 다음에서 연재도 했는데 가 보시면 알겠지만 감동깊게 봤다는 댓글들이 대박 많아요. 댓글이 총 OO개 달렸는데 댓글 단 사람들 중 OO프로만 보러 와도 손익분기점은 금방 넘을 거에요.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좌석 점유율이 90%가 넘고..”라는 식으로 과학적인 숫자와 통계 그리고 사례를 들이대며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가 되도 영화화가 쉬운 건 아니다. 실제로 한 번 엎어지기도 했다. 다음 연재 만화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투자 결정을 내렸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노인 이야기는 안 될 것 같아 투자 결정을 철회한 사람도 있다는 뜻일 게다. 설령 우여곡절 끝에 영화화에 성공한다 해도 이번엔 개봉관 확보가 문제다. 극장 쪽 사람들도 노인 영화 대신에 다른 영화를 걸면 더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처음엔 개봉관 잡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산 넘어 산이란 말은 바로 노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으므로 여타 실버 시장처럼 이제는 노인 영화도 돈이 될 거라는 말도 있다. 실버 전용 극장도 있고 노인 관객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라는 일본을 보면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대박 영화 중에 노인 영화가 있다는 말은 한번도 못 들어봤다. 게다가 노인 전용 극장 상영작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들이다. 노인이라고 노인 영화를 원하는 건 아닌 것이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노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고생을 사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이리스>는 대박이었지만 <아테나>는 아니었던 것처럼 <워낭소리>는 대박이었지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아니었던 것처럼 딱 한 번만 대박이 가능한 장르가 있다. 노인 이야기는 쓰지 마라.


p.s. 앤잇굿 시놉시스 공모전 출품작 제한에 노인 이야기가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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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그대를 사랑합니다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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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행위를 안 해 본 남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남자는 없다. 그만큼 자위행위는 남자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자위행위 장면을 쉽게 볼 수 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만약 남자 주인공이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캐릭터가 좀 더 리얼하고 입체적으로 느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해당 영화가 인생의 진실이나 본질 따위 등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2010년 한국영화 흥행 1위 <아저씨>를 예로 들어보자. 원빈은 과거에 불행한 사건을 겪은 후 세상을 등진 채 전당포를 꾸려가며 외롭게 살아가는 전직 특수 요원이다. 여자 친구도 없고 이렇다 할 취미도 없다. 원빈이 실제 인물이라면 자위행위를 할까 안 할까? 당연히 할 것이다. 만약 원빈이 전당포에 앉아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그가 느끼고 있을 외로움이 관객들에게 보다 절절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2010년 한국영화 흥행 2위 <의형제>도 마찬가지다. 송강호가 연기한 국정원 요원 한규와 강동원이 연기한 남파공작원 지원은 주변에 여자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실제 인물이라면 자위행위를 할까 안 할까? 당연히 할 것이다. 만약 송강호와 강동원이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조직에서 버림받고 외로이 살아가는 두 남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관객들에게 보다 절절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여자 관객들이 싫어한다. 그것도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치를 떨며 싫어한다. 그래서 보통은 여자 관객들이 싫어해야 마땅한 나쁜 놈들만 자위행위를 한다. 2010년 한국영화 흥행 12위 <악마를 보았다>가 대표적인 예다. 이병헌은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변태 성범죄자만 골방에서 홀로 야동을 보며 자위행위를 한다.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 이병헌은 자위행위를 하는 변태 성범죄자를 죽도록 두드려 팬다. 이 영화에서 자위행위는 악, 안 자위행위는 선이다. 만약 이병헌이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이병헌이 느끼고 있을 자괴감과 분노가 관객들에게 보다 절절하게 와닿을테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영화의 주제를 더 살려주었겠지만 그래도 이병헌은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다. 여자 관객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액션이나 스릴러 뿐 아니라 로맨틱이나 멜로에서도 자위행위는 안 된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데 아직 성관계를 가지진 않은 상황이라면 남자가 여자를 생각하면서 자위 행위를 할까? 안 할까? 당연히 할 것이다. 또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져 처음으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지기 직전인데 만약 남자가 그토록 애태우며 기다렸던 이 순간이 짧게 끝나버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면 여자 몰래 자위행위를 할까? 안 할까? 음. 이 상황에선 하는 남자도 있고 안 하는 남자도 있겠다. 반드시 모든 남자가 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러나 성관계 직전 남자가 여자 몰래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남자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보다 절절하게 와닿을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자위행위는 안 된다. 여자 관객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암튼 안 된다. 아무리 자위행위가 관객들에게 인생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유용한 설정이라 해도 여자 관객들이 싫어하면 안 되는 거다. 게다가 자위행위 장면은 행위의 특성상 통편집도 쉽다. 남 몰래 혼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통편집되어도 이야기의 흐름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여자 관객들에게 욕 먹을 각오하고 큰 맘 먹고 쓰거나 찍어 봤자 괜히 피디나 대표나 투자자한테 욕만 바가지로 먹고 시나리오 모니터 단계나 편집실에서 삭제되기 십상이다. 여자 관객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자위행위는 하지 아니 쓰지 마라.

p.s. <블랙스완>을 보면 알겠지만 여자 주인공의 자위행위 장면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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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시나리오 한 편의 계약금은 보통 2000만원 정도 된다. 그러나 이제는 다들 알다시피 2000만원을 다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에 많이 올라온 시나리오 작가들의 현실에 대한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2000만원에 계약한다 해도 세 번에 걸쳐서 나눠 받고 그나마 투자가 안 되면 못 받기 때문에 선금 500만원 정도 받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500만원도 잘 준 거다. 이삼백 받고 끝나는 경우도 많다. 암튼 시나리오 한 편 계약하고 진행하다보면 이래저래 1년 정도는 걸리므로 연봉이 500만원 이하인 셈이다. 그렇게 500만원 받고 회사에서 고치라는데로 몇 번 고쳐주고 넋 놓고 투자를 기다리다 보면 2~3년은 금방이다. 그렇게 되면 연봉이 200만원 이하로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대로는 답이 안 나온다. 못 산다.

그렇다면 빨리 쓰면 어떨까? 애초에 투자나 메이드 따위는 기대도 않고 오로지 박리다매 정신으로 한 달에 한 편씩 일 년에 12편을 쓰고 그 중 6편을 팔면 선금 500만 받아도 3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정도면 생활은 가능하다. 비록 계약서에 계약기간 중에는 다른 작업을 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는 경우가 있지만 예전에 써 둔 거 판 거고 수정 작업은 안 한다고 했다고 대충 둘러대면 될 것 같다. 그래! 빨리 쓰자. 12편 써서 12편 다 팔면 선금만 받아도 연봉 육천이다. 운이 좋아서 그 중 몇 편만 투자가 되면 연봉 일억도 남의 일은 아니다. 시나리오만 써서 연봉 일억이면 아마 신문에도 나겠지. 아아 신난다. 오늘이 1일이니까 7일까지 시놉시스, 14일까지 트릿먼트, 21일까지 초고, 28일까지 재고, 31일까지 완성, 다음 달 7일까지 시놉시스..^^;; 불가능한 건 아니다. 빨리 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실제로 한 번 필 받으면 2~3일 안에 한 편 뚝딱 써 내는 작가들도 많다. 빨리 쓴다고 무조건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빨리 잘 쓸 수는 있어도 그걸 다 팔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 년에 12편은커녕 두 세 편 팔기도 쉽지 않다. 굳이 빨리 쓸 필요가 없다.

영화 제작업으로 등록한 영화사가 1200개가 넘는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중 작가에게 선금 500만원이라도 주고 영화 제작을 진행할 능력이 되는 영화사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영화를 진행할 능력이 되는 몇 안 되는 영화사에는 이미 제작 진행 중인 시나리오들이 수북히 쌓여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새로 사들이지도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구잡이로 시나리오를 사들이는 영화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글쎄다. 그래도 시나리오 한 번 팔아 보겠다고 또는 각색 작업이라도 물어오겠다고 이 회사 저 회사 이 피디 저 피디에게 영업한다고 돌아다니다보면 정작 시나리오 쓸 시간은 부족해지고 그러다 보면 잘 쓰지도 못 하는 게 무책임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결국은 그나마 간간히 들어오던 각색 의뢰마저 뚝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 회사에서 작업한다는 사실을 저 회사에서 모르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해 봤자 소용없다. 애초에 박리다매가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빨리 안 쓰고 여유있게 일 년에 한 편 써서 500만원 받아서는 생활이 안 되는 게 사실이긴 하다. 그런데 이는 시나리오 작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시나리오 이렇게 쓰진 마라 연재 초반에 시나리오 쓰면 불행해진다는 포스팅을 올린 것이다. 실제로 잘 나가고 못 나가고 여부와 상관없이 영화는 접고 드라마 쪽으로 넘어가려는 작가들이 한 둘이 아니다. 드라마 쪽도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드라마 대본 써서 부자 됐다는 작가는 몇 명 있는 게 사실이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영화 시나리오 써서 부자 됐다는 작가를 본 적이 있는가? 암튼 빨리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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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쓰면 불행해진다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굶진 말자.

아프지도 말자.

그리고 언젠간 꼭 성공해서 남들 사는만큼은 누리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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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태초에 <원스>가 있었다. 훌륭한 작품이었다. 저예산으로 만들었고 유명한 배우들도 없었지만 흥행은 물론이고 OST에서도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으며 배우들에게도 부귀영화를 안겨 주었다. 그들은 가끔 한국에서 초청 공연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원스>는 전세계 독립 영화 역사상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고부가가치 성공 사례일 것이다. 물론 나도 재미있게 보았고 당연히 그들이 부러워졌고 따라해보고 싶어졌다. 왠만한 1000만 영화 감독보다 20만 <원스> 감독이 더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만만해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정도 쯤이야 우리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저예산이고 유명한 배우들도 필요없고 OST만 그럭저럭 감미로우면 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만해 보인다. 그래서 한동안 나도 <원스>같은 시나리오를 구상한 적도 있지만 그냥 구상만 하다 말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지 아니나 다를까 인디 뮤지션을 주인공으로 한 <원스> 워너비 시나리오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쏟아져 내린 시나리오의 수보다는 훨씬 적지만 그래도 은근히 많은 수의 음악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흥행성적과 시청률은 하나같이 저조했다. 영화와 드라마 뿐만 다큐멘터리도 몇 편 만들어졌지만 그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어떤 영화는 음악 영화는 아니지만 홍대 여신이 출연했어도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그만큼 홍대라는 키워드와 흥행은 인연이 없었다.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가 간지가 나긴 하고 홍대라는 지명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러니까 홍대 앞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음악 영화 특유의 극중 갈등을 모두 해소시키는 클라이막스에서의 공연 장면이나 노래가 끝난 뒤 객석의 애인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관객들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등등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 또는 홍대 앞에서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으로는 상업적으로 크게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홍대 앞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고민하며 음악을 하고 있는 이야기는 장르가 아니다. 마장동에서 정육점하는 이야기나 서초동에서 변호사하는 이야기처럼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그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에서 그들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려면 그들이 음악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홍대 앞에서 음악하며 재벌 2세나 탑스타와 연애를 하든가 살인 사건에 휘말려야 한다. 알고 보면 <원스>도 결국은 연애 이야기였다. 그런데 연애를 하든가 살인 사건에 휘말릴 거면 굳이 주인공이 홍대 앞에서 음악을 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억지로 이유를 만들다 보면 개연성이 희박해지고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진정성 있게만 가다보면 공감을 얻기 힘든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린다. 이래저래 투자 유치는 점점 요원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원스>처럼 OST 수입을 노리고 기획되었다가 결국은 흐지부지된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들을 몇 편 읽어본 적이 있는데 다들 절실하고 진정성있고 뭔가에 아파하고 있으며 젊고 파릇파릇하고 클라이막스에서의 공연 장면도 임팩트 있긴 하다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는 생각이 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를 쓰지 말랬다고 다른 동네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는 괜찮다는 건 아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충주에서 인디 밴드하는 이야기도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어쩌면 서울대 나와서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만 그래도 왠만하면 말리고 싶다. 어느 동네에서건 음악하는 이야기 특히 인디 밴드 하는 이야기는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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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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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계약금으로 주식하는 작가를 여럿 봤는데 하나같이 주식을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 차기작을 집필하지 못하고 한국 영화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더라 까진 아니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차기작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계약서에 싸인하고 통장에 목돈이 입금됐는데 그냥 썩힐 순 없으니 어떻게든 굴리고 싶어하는 심정은 알 것 같다. 주식이라면 경마나 도박 보다는 건전해 보이고 왠지 주식으로 돈 벌었다고 하면 가족들에게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뜻 생각해도 시나리오 써서 버는 재주보다는 주식으로 버는 재주가 더 있어 보인다. 시나리오 써서 벌어봤자 맥시멈 몇 천이지만 주식으로는 잘만 하면 워렌 버펫처럼 될 수도 있다. 그닥 어려워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기만 하면 된다더라. 그렇게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기만 반복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다. 게다가 주식은 홈트레이딩 시스템의 발달 덕분에 인터넷만 되면 어디에서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집필 활동과 병행이 가능하다. 요즘엔 스마트 폰만 있어도 된다. 치열하게 집필하다 잠깐 머리 식힐 겸 쉬엄 쉬엄하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만해 보인다. 작가에게 이보다 더 좋은 부업은 없을 것 같다. 그 어렵다는 시나리오 집필로도 돈을 벌었으니 뭘 해도 잘 될 것 같고 엔터 업종이라면 일반인들보다 아는 게 많으니 유리할 것 같다.


긴 말 않겠다. 주식은 하지 마라. 술, 담배, 남자, 여자는 해도 주식만큼은 하지 마라. 주식보단 차라리 경마나 도박이 낫다. 도박은 잘만 하면 도스트예프스키처럼 될 지도 모른다. 도박 중독 출신 거장 얘기는 들어봤어도 홈트레이딩 시스템으로 주식했다는 거장 얘기는 못 들어봤다. 암튼 주식은 하지 마라. 일단 주식을 시작하면 한글 창을 띄울 시간이 없어진다. 초단위로 피같은 계약금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데 한글 창 같은 소리 하고 있다. 거래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므로 그 외의 시간에 집필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듣고 와선 목돈을 쪼개 분산투자라도 했다간 돈 담근 종목들 관련 뉴스부터 시작해서 업계 동향, 루머, 애널 유무료 상담 분석 보고서 까지 일일이 챙겨봐야하고 이 게시판 저 게시판 들락거리고 재야 고수의 무료 강연회도 쫓아다니고 거시적으로 분석한답시고 다른 나라 지수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게 될 텐데 언제 시나리오를 쓰겠는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국엔 벌어도 못 쓰고 잃어도 못 쓴다. 돈을 벌게 되면 주식으로 돈 번 사람이 없다는데 나는 벌었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데 내가 왜 이 소리 저 소리 들어가며 남의 시나리오를 쓰고 앉아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반면 돈을 잃게 되면 언제 손절매를 할 것인지와 손절매를 한다면 어느 종목으로 갈아타야 되는 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 차 버린다. 어느 세월에 시나리오 써서 손실을 복구하나 막막해져 집필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사람이 또 주식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주식하면서 머리도 식힐 겸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영화라도 보는 건 차라리 다행이지만 시나리오 작가의 취미가 영화 감상인 경우는 흔치 않다. 다양한 취미가 있겠지만 만약 야구 같은 스포츠 감상이 취미라면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봐야한다. 낮에는 주식하고 밤에는 경기보고 경기 끝나면 주가 분석과 경기 분석에 매진하고 내일의 주가와 경기 결과를 예상하고 경우의 수에 따른 시나리오를 작성하다보면 이제 잘 시간이다. 솔직히 이 지경에 이르면 시나리오는 다 쓴 거다. 계약서에 싸인하고 선금까지 받은 상황이라도 잔금은 못 받을 확률이 백프로다. 정 목돈을 그냥 두기 불편하고 어딘가에 투자하고 싶다면 그동안 수고한 자기 자신에게 투자해라.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옷 입고 해외 여행 다녀라. 주식은 하지 마라. 장기투자도 하지 말고 특히 스켈핑으로 상한가 따라잡기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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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시나리오를 쓰려면 평일엔 기상-출근-오전 업무-점심 식사-오후 업무-저녁 식사-때론 야근-퇴근-TV시청-웹써핑-시나리오 집필-취침. 대충 이런 식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해야 하고 술 약속도 잡지 말아야 하는데 일단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설령 시간을 낸다 해도 한 두 시간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 두 시간이면 뭐 쓸까? 하는 고민에 멍 때리고 있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점심 때 쯤 일어나 TV 좀 봐주고 이제 뭣 좀 써 볼까 하면 벌써 일요일 밤이다.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턱턱 막혀온다. 우울하다. 시나리오 같은 소리 하고 있다. 괜히 스트레스만 가중된다. 게다가 주말엔 가끔 교외로 나가 바람도 쐬고 기분 전환도 해줘야 한다. 하다못해 시내에 나가 평일에 못 만난 친구들이라도 만나줘야 한다. 시나리오 집필도 엄연한 일인데 언제까지 쉬지 않고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시나리오만 쓰다보면 언젠가 틀림없이 병난다.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는 게 불가능하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쓰라는 얘긴가? 그렇다. 이왕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직장 따윈 미련없이 그만두고 써야 한다. 밥 먹고 술 먹는 시간 빼고 시나리오만 쓰는 전업 작가들도 잘 될까 말까다. 직장에 다니면서 시나리오를 쓴다면 전업 작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바닥이 그렇게 만만한 바닥이 아니고 전업 작가들이 좀 모자란 사람들도 아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관두라는 얘기는 아니다. 직장을 다닐 거면 직장에 충실하고 시나리오를 쓸 거면 시나리오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괜히 직장에 다니면서 시나리오까지 쓰려다보면 시나리오도 못 쓰고 직장 일에도 소홀하게 될 수밖에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되는 것이다.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우여곡절 끝에 한 편 완성한다 해도 완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직장을 그만두고 시나리오만 쓰고 싶은데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경우엔 어떡해야 하나? 그냥 쓰지 마라. 꼭 써야 하나? 포기해라.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출근했다 퇴근해서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안일까지 하고 나면 시나리오는 언제 쓰나?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면 결국엔 직장을 버리든 가족을 버려야 하는데 과연 시나리오라는 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두 마리 토끼 잡기도 힘든데 세 마리 토끼 잡기는 쉽겠는가? 괜히 어렵게 시간 내서 뭔가 써보겠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 시간에 차라리 가족들과 함께 남이 만든 영화를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게 더 행복한 인생 아닐까? 일 이주 아니 서너 달 안에 승부를 볼 수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시나리오라는 게 언제 승부가 날지 기약할 수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시나리오 한 편 쓰려면 몇 달은 걸리게 보통이고 영화화되기까지는 평균 3~4년은 걸리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직장 생활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승부가 난다해도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신인 작가의 경우 시나리오 써서 버는 돈이 연봉보다 많을 확률은 극히 적다.

직장 생활하며 남의 돈 받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인가? 거기에 부양할 가족까지 있다면 게임 오버라고 봐야 한다.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좋은 관객으로 남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괜히 이것 저것 다 하려다 이도 저도 안 된다. 직장 다니면서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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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2010년이 저물어 간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올해까지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다고 주변에 호언장담했거나 후원자들과 약속한 사람들 중 일부는 정말로 영화를 그만 둘 것이다. 기한을 정해두지 않고 천년만년 영화만 하리라 마음먹은 사람들도 있긴 하다. 실제로 내가 아는 아무개가 아는 아무개 형은 입봉 준비만 16년째인데 영화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 형은 내년에도 입봉 준비를 할 것이다. 잘 하고 있는 거다. 꼴랑 몇 년 해보고 안 된다고 포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를 한다는 명목 하에 놀기만 하는 분들도 있지만 현역 유명 감독들 중에서도 10년 가까이 준비만 한 분들이 여럿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는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아무런 성과 없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부턴 자기가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때가 온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화에만 전념 할 수 없게 되는 내적 외적 환경이 조성된다. 육체적으로는 지구력이 약해지고 정신적으로는 집중력이 약해지므로 물리적인 작업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이템이 아무리 좋아도 뭐라도 써야 시나리오가 되는 건데 쓰는 시간이 줄어들면 작품의 퀄리티가 떨어지게 된다. 하루에 여섯시간씩 쓰던게 세시간 한시간 30분 10분으로 줄어들게 된다. 다른 일 하느라 바빠서가 아니다. 시나리오만 쓰는데도 그렇게 된다.


경제적으로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진다. 언젠가는 반드시 수입이나 후원이 끊기게 마련인데 그 상황이 닥치고 나면 영화에 대한 고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수입이 끊기지 않으면 수입을 포기하고 영화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게 되고 후원이 끊기지 않으면 현재 상태에 만족하게 되거나 영화라는 험난한 고생길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오랜 시간 허송세월 하다보면 점점 의기소침해지면서 지레 포기하게 되기도 하고 이제 갓 영화판에 나온 패기있고 능력있는 후배들의 틈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 나이 먹도록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다면 능력이 없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갑’측의 선입견 때문에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런 선입견이 없더라도 '갑‘ 주변에는 날고 기는 유망주들이 쌔고 쌨다. 이렇다 할 메리트가 없다면 굳이 나이만 많고 경험은 없는 신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본인 스스로도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영화 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많은 게 사실이고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그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이렇게 살아도 한 평생 저렇게 살아도 한 평생 그냥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영화 경력이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이를 좀 먹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록 영화를 더 잘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나 영화만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이를 먹다보면 다양한 경험을 쌓기도 힘들어진다. 시나리오를 쓴 경험은 다양한 경험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면 위에 열거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영화를 계속 할 수 있는 일정한 레벨에 올라야 한다. 어느 정도 레벨이 되어야 영화를 계속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대충은 정해져 있다. 레벨에 오르고 못 오르고는 본인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참고로 나는 일정한 레벨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나이는 저절로 먹지만 레벨은 다르다. 내년이 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몸값은 떨어지고 있다. 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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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연말이 되니 올해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별 일은 없었고 대부분은 작년 재작년에 있었던 일들의 반복이었다. 의기투합했지만 엎어지거나 무기한 연기되거나 흐지부지되거나 지리멸렬이거나. 내 예상대로 되는 일이 정말 뻥 안 치고 하나도 없었고 설마 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연이어 터지곤 했다.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니어서 이젠 놀랍지도 않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문제는 딱히 하는 일 없이 되는 일 없이 월급만 꼬박꼬박 챙겨가는 세월이 본의 아니게 너무 길어지다보니 면목도 없고 염치도 없고 미안한 마음만 든다는 것이다. 정말 이번 회사에선 이러지 않으려고 했다. 진심이다.

암튼 어차피 영화사란 곳이 평생 직장이 될 순 없는 거고 (주변에선 별 다른 능력도 없이 지금까지 버틴 것만도 기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언젠간 짤리지 않으면 내 발로 걸어 나가야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만약 그 날이 왔을 때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서 당당하게 내 갈 길 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미 적은 나이가 아니고 자랑스레 내세울만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닐테니 동일 직종으로 재취업은 불가능할 것이고 현장 스태프로 돌아가기도 애매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럴만한 회사나 일자리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무엇인가?

일단 큰 회사에서 나에게 감독 한 번 해보라고 수십억을 쏴 줄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죽이는 시나리오를 써 온다 해도 연출은 검증된 기성 감독에게 맡길 것이다. 나도 그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해온 편이다; 그럴 능력이 있는 건 둘째치고 남들보곤 시나리오 쓰지 말라는 주제로 블로그에 연재까지 하고 있는 주제에 내가 시나리오 작가로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큰 회사보다 여유가 있을 리 없는 중소규모 회사에서 나에게 수십억을 쏴 줄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누워서 감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건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이제 내가 영화를 할 수 있는 남은 길이라곤 아이폰4 같은 거 하나 빌려서 내 돈으로 저렴하게 독립 영화를 찍는 수 밖엔 없을 것 같은데 그건 또 영 내키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남들이 그러겠다고 할 때마다 번번히 말려놓곤 정작 내가 그러는 건 좀 웃긴 일이고 만약 찍긴 했는데 결과물이 형편없을까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졸업 작품만도 못하면 상처가 클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몰래 가명 하나 만들어서 모르는 사람들 모집해서 찍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아는 사람들과 해도 힘든 게 영화 작업인데 모르는 사람이랑 했다간 뒷감당 할 자신이 없다. 촬영 몇 일 남겨두고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잠수타고 남자 친구가 하지 말랬다고 주연 여배우 연락 두절되고 스태프들 촬영 당일에 늦잠 자서 안 오고 등등의 일들을 혼자서 그것도 가명으로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일단 올해까진 모임 약속도 많고 하니 섣불리 일 벌일 생각말고 다른 남은 길에 대해서만 심사숙고해봐야겠다. 나이를 먹을 수록 머리만 복잡해진다. 역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성공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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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쓰면 불행해진다 

Posted by 애드맨

특히 신인 감독이 데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쓰지 마라. 이건 자기 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영화판 이야기는 영화판 경험이 있는 현장 스태프나 신인 감독이 쓰는 경향이 있지만 가끔은 영화판 경험이 전혀 없는 작가 지망생들도 영화판 이야기를 쓰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영화판 경험이 있는 현장 스태프나 신인 감독이 영화판 이야기를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예전에 자기 이야기는 쓰지 마라에서 충분히 설명한 것 같다.

영화판 이야기라고 좋은 영화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신인 감독이 데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시시하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충분히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고 얼마 전에 독립영화 쪽에서 한 편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지금 좋은 영화 만들겠다고 시나리오를 쓰려는 건 아니다. 좋은 영화고 뭐고 일단은 영화 경력을 쌓고 영화판에서 자리를 잡고 시나리오를 써서 돈도 벌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영화판 이야기는 경력이나 돈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영화판 이야기는 영화판 이야기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화화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판 이야기는 영화판 이야기라는 사실만으로 한 수 접고 들어가야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영화판에 대해서라면 시나리오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쓴 작가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나리오를 평가하는 사람들 중 영화화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영화판에 대해 그냥 더 잘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훨씬 더 잘 알고 있을게 뻔하다. 그 정도 위치에 올랐다면 영화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테니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고 생생하고 페이소스 돋는 에피소드들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판 이야기가 영화화되려면 일단은 그런 사람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들을 상대로 영화판 이야기를 쓴다는 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그들 중 3분의 2정도는 이 시나리오가 영화판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읽기를 포기하거나 페이지를 대충 대충 넘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일반 관객들은 영화판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영화판에 대한 관심은 다르다. 일반 관객들은 영화판 이야기보다는 맛집이나 화장품 업계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게 이미 흥행 성적과 드라마 시청률로 검증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판 이야기와 연예계 이야기는 다르다는 것이다. 구분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 중에 연예인이 있다면 연예계 이야기, 없다면 영화판 이야기로 보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감독이랑 스크립터랑 사귀는데 제작팀장이 끼어드는 이야기면 영화판 이야기, 영화 감독이랑 주연 여배우랑 사귀는데 아이돌 가수가 끼어드는 이야기면 연예계 이야기로 보면 될 것 같다. 조감독이 엑스트라랑 사귀는 이야기나 제작팀장이 연출부 세컨이랑 사귀는 이야기는 고민할 것도 없이 영화판 이야기다. 연예계 이야기라면 굳이 피할 필요까진 없겠다.

좀 부끄러운 고백이긴 하다만 사실은 나도 예전에 영화판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영화판 이야기를 쓰는 걸 보면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내가 쓴 건 영화판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못썼기 때문에 영화화에 실패한 것이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말리고 싶다. 남의 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영화판 이야기는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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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야기는 쓰지 마라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이번 포스팅은 바로 전 <비밀리에는 쓰지 마라>에 달린 “소녀시대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는 어떤가요?”라는 덧글에 대한 답글이다. 비단 소녀시대 뿐만 아니라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가 은근히 있다. 일종의 팬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장동건이 장동건으로 나오는 시나리오는 지금 기억나는 것만 해도 서 너 편은 된다. 이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스타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어하는 심리와도 비슷할 것이다. 애초에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주인공을 실존 인물(대부분은 시나리오 집필 당시에 가장 인기있는 연예인)로 설정하면 읽는 이의 관심을 끌기 쉬울 것 같고 관객들도 재밌어할 것 같고 팬들은 당연히 보러 올 것이고 어쩌면 그 실존 인물이 자기를 주인공으로 써 준 것을 기특하게 여겨 한 번 만나줄 지도 모르겠고 진짜 운이 좋다면 기꺼이 출연까지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권유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권유리와 함께 영화 작업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무작정 권유리가 권유리로 나오는 시나리오를 쓴다. 남자 주인공은 로드 매니저나 백수다. 줄거리를 39자로 요약하자면 권유리와 사랑에 빠진 로드 매니저나 백수가 이수만 사장의 반대를 이겨내고 권유리와 결혼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 권유리는 작가 지망생의 취향에 따라 다른 인기 연예인으로 교체될 수 있다.


나는 후딱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SM 사이트에 나와 있는 관리자 이메일로 보낸다. 그리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다음 수순을 상상해 본다. SM 사이트 관리자가 내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읽고는 A4용지에 출력해서 권유리 매니저에게 보여준다. 권유리 매니저도 내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읽고는 권유리에게 시나리오를 건넨다. 권유리는 바쁜 활동 틈틈이 밤을 새워 내 시나리오를 읽고는 너무 재밌어서 출연하고 싶어한다. 당장 이수만 사장에게 달려가 내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이 시나리오에 출연하고 싶다고 통보한다. 이수만 사장은 내 시나리오를 읽어보지도 않고 반대하지만 권유리가 하도 끈질기게 졸라대서 마지못해 읽어보고는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하루 정도 고민한 후 내 시나리오를 전격 영화화하기로 결정한다. 여기까지 이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 나는 결국 권유리와 영화 작업 후 궁극적으로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주일 뒤엔 SM에서 연락이 올까? 안 온다. 위와 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무작정 이메일로 보내는 게 아니라 권유리 매니저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건넸다 해도 일이 성사될 확률은 거의 없다. 궁금하면 실존 인물이 본인으로 출연한 영화가 몇 편이나 있는지 세어보자. 그 수많은 팬픽 중에 몇 편이나 영화화됐는지 생각해보자.


실존 인물을 주인공을 쓰면 안 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굳이 그래야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다면 굳이 실존 인물의 이미지에 기댈 필요가 없고 시나리오가 재미없다면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연해 줄 리가 없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더라도 실존 인물이 본인으로 나오는 걸 꺼려할 가능성이 있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야 될 수도 있는데 시나리오에 특정 인물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으면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하거나 프로젝트 자체를 접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실존 인물이 본인으로 나오는 영화를 누가 보러 올까? 열혈 팬들 말고 일반 관객들도 그 실존 인물의 연예계 활동이나 일상 생활을 극장에서 보고 싶어할까? 남들이 안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팬심은 존중하지만 실존 인물은 주인공으로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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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번쩍하고 괜찮은 아이템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아이템이 되는 아이템인지 아닌 지 잘 모를 수 있다. 분명 되는 아이템인 것 같긴 한데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볼 땐 조금 부족한 아이템이지만 남들에겐 되는 아이템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긴가민가한 것이다. 그럴 땐 누구한테 아이템 모니터를 의뢰할 수 밖에 없는데 막상 누구한테 물어보려고 하면 조금 망설여진다.


일단 믿을만한 안목을 가진 아무개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 주변에 있는 아무개들은 대부분 나보다 못하거나 어딘지 모르게 못미더워 보인다. 그렇다고 믿을만한 안목을 가졌다는 이유로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아무개에게 모니터를 의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뢰가 성사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누가 봐도 검증된 안목을 가졌을 정도라면 검증된 영화인이어야 하는데 그들이 생판 모르는 작가 지망생의 아이템 얘기를 들어줄 리 없다. 만남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만남이 성사된다 해도 조심성 있는 영화인이라면 모니터 자체를 꺼려 하는 경우가 많다. 하늘 아래 새로운 아이템이라는 게 있을 리 없고 만에 하나 자기가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과 비슷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껏 커피 한 잔 얻어먹겠다고 괜한 오해를 사기 싫은 것이다. 그냥 소개시켜준 사람 얼굴 생각해서 열심히 하라거나 행운을 빈다는 덕담 정도 해 주는 게 다일 것이다.


물론 작정하고 평가를 부탁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문득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한 시나리오가 도용당했더라는 흉흉한 소문을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시나리오조차 도용당하는 마당에 아이템 도용 정도는 일도 아닐 것 같다. 아이템에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막말로 검증된 영화인의 손에 괜찮은 아이템이 들어가면 그냥 만드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나의 허락이나 양해 따윈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아이템이야 먼저 만드는 사람이 임자라지만 검증된 영화인과 검증받지 못한 자기와는 게임 자체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 주변에 있는 아무개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낙천적인 성격 탓에 아이템을 도용당할 우려 따윈 전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모니터는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기 딴에는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간만에 창작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데 괜히 김빠지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이다. 창작의 즐거움을 빼앗기기 싫은 것이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모니터 따윈 필요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냥 비밀리에 완성해서 세상을 깜짝 놀래키고 싶다. 검증된 영화사와 계약한 후 주변 아무개들에게 연락해 거하게 술 한 잔 사는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런데 그래도 물어봐라. 길게도 필요없다. 그냥 재밌냐고만이라도 물어봐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칸느나 천만 따윈 일도 아니겠지만 영화는 혼자 보는 것도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한 편의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기까지는 최소한 30명은 설득해야 한다. 30명 전부가 오케이해도 될까 말까한 마당에 주변의 아무개 몇 명조차 설득하지 못한다면 안 되는 아이템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제 아무리 유력한 결정권자라도 혼자 결정하진 않는다. 일반 대학생으로 구성된 모니터 그룹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한다. 무엇보다 그 30명은 내 주변의 아무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보는 안목이란게 다 거기서 거기일 수 밖에 없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템 도용의 우려는 잠시 접어두는 수 밖에 없다. 작가 지망생 혼자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한 후 잘 되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냥 물어보고 써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서 쓸 필요까진 없지만 최소한 비밀리에는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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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후 일이다. 처음 들른 사설 수리 센터에서 아이폰 수리를 못해준대서 다른 사설 수리 센터를 갈까 하다가 다른 센터에 가봤자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 점심 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공인 서비스 센터에 들렀다. 물론 사설 수리 센터에서 한 번이라도 수리를 받았거나 고객 마음대로 아이폰 뚜껑을 한 번이라도 열었다면 공식 A/S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사설 수리 센터 기사님이 부품에 지문 하나 안 남기고 감쪽같이 조립을 해 놨기 때문에 절대로 안 걸릴 것이라고 장담했고 만약 걸리면 어쩔 거냐고 물어봤을 때 절대로 그럴 일 없고 무사히 리퍼 서비스를 받고나면 감사 전화나 달라고까지 했으니 속는 셈치고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사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무상 리퍼가 유일한 대안이었다.


회사 근처에 서비스 센터가 몇 군데 있길래 어딜갈까 고민하다 그래도 KT라고 적힌 곳이 나을 것 같아 KT플라자에 갔다. 출입구 옆에 서 있던 직원으로 추정되는 아저씨에게 아이폰 수리 받으러 왔다고 하니까 여기선 아이폰 A/S 안 한다며 가까운 서비스 센터 위치가 적힌 지도를 주길래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인 서비스 센터로 갔다. 오후여선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대기표를 뽑고 자리에 앉자마자 말로만 듣던 아이폰4 구매 후 불만이 폭발한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서비스 센터가 떠내려가라 큰 소리로 항의하고 있었는데 항의 내용을 들어보니 아이폰4를 수령하고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문자 서비스가 먹통이 됐길래 A/S를 받으려고 KT에 상담 전화를 했더니 다른 전화 번호를 알려줬고 그 번호에 전화를 하니까 또 다른 전화 번호를 알려줬고 그 번호에 전화를 하니까 이번에는 통화가 안 되길래 열이 뻗쳐서 당장 택시 타고 이곳 저곳 들렀는데 들르는 곳마다 다른 곳에 가 보라고 사람을 뺑뺑이를 돌리길래 흘러 흘러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또 몇 일 기다려 달라는 대답을 듣고는 기어이 뚜껑이 열려버린 것이었다. 같은 불만 고객의 입장에서 좀 거들어줘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들었다. 저런 고객들 덕분에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고 우리가 힘을 합쳐서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애플의 악명높은 A/S 정책은 영원히 바뀔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의 악명높은 A/S정책을 바꾸기 위해 나의 청춘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고 저 고객이 겪은 일을 내가 지금부터 겪어야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눈 앞이 캄캄해졌다. 게다가 난 사설 수리 센터에서 아이폰 뚜껑을 임의로 열고 완전 분해 상태까지 갔다 왔기 때문에 공식 A/S 대상도 아니었다. 어쩌면 저 고객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식은 땀까지 흘러 내렸다. 만약 사설 수리 센터에서 수리 받은 사실을 들키면 끝까지 부인해야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워낙에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라 안 들킬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기사들이 나 같은 고객을 한 두 번 만났을 리도 없을 것 같아 승산은 없어 보였다.


한참을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자 자수해서 광명찾자는 심정으로 기사님 앞에 앉았다. 추궁하면 바로 실토할 생각이었다. 어쩌면 정직하다는 이유로 선처해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님은 “갑자기 안 켜진다고요?” 라고 물어보셨고 내가 그렇다고 하자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조그만 검정 박스를 뜯으시더니 아이폰을 꺼내셨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이 기종들이 그런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라고 하시며 나에게 그 아이폰을 건네주셨다. 나는 예상 외의 전개에 당황하며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리퍼폰인가요? 라고 물어봤고 기사님은 “아닙니다. 리퍼폰 받고 항의하시는 분들이 많아 이제는 새 아이폰으로 교체해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고 당장이라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너무 순순히 물러나면 의심을 살까봐 기존 아이폰에서 연락처나 데이터들은 살려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잔뜩 불쾌한 척 항의했고 기사님은 그건 불가능하다며 거듭해서 사과하셨다. 나는 고마운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정말 불쾌하지만 내가 성격이 좋아 참는 거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비스 센터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항의 중이던 아이폰4 불만 고객은 내가 서비스 센터에서 나갈 때까지도 큰 소리로 항의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은 같은 불만 고객의 입장이 아니어선지 거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사설 수리 센터에서 수리 받은 흔적이 전혀 남지 않게 감쪽같이 조립해 준 기사님에게 감사하긴 했지만 딱히 감사 전화까지 하고픈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수백여개에 달하는 전화번호가 몽땅 날아가고 기억하고 있는 번호가 몇 개 없는데도 일상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과 아이폰이 꺼졌다가 새 폰을 켜기 전까지 문자 한 통 안 와 있었다는 사실만이 조금 씁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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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 일이다. 멀쩡했던 아이폰이 켜지질 않았다. 여느 때처럼 트위터를 꼼꼼히 챙겨 읽다가 주머니에 넣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처음엔 밧데리가 다 된 줄 알았다. 분명 30%정도 남아 있던 것 같긴 했지만 내 착각이려니 했다. 아이폰 없이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니 10분이 40분 같았다. 집에 오는 길이 엄청 길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충전 케이블을 연결하고 나서야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켜졌다. 자세히 보니 충전잭이 조금 삐딱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제대로 연결했다. 그래도 안 켜졌다. 겁이 덜컥 났다. 인터넷으로 가까운 사설 수리센터를 검색해보았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영업시간이어서 얼른 전화를 걸었다. 기사님께 증상을 설명했더니 금방 고칠 수 있고 3~4만원이면 된다고 하셨다. 냅다 달려갔다. 공식 AS 센터를 찾아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쇼폰케어 보험은 들어놨지만 리퍼폰이 싫고 아이폰의 A/S 정책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을 하도 많이 들어서다. 그냥 빠르고 저렴하게 해결하고 싶었다.

아이폰을 본의 아니게 소홀히 대한 적은 딱 두 번 있었다. 지난 여름 장마철에 비를 쫄딱 맞은 가방 안에 밤새도록 방치해두었다가 그 다음 날 셀룰러 간섭 어쩌구하는 침수 현상 알림창이 몇 번 뜨다 만 적이 한 번 있고 얼마 전에 보호 케이스 없이 생폰 쓰다가 대략 30cm 정도의 높이에서 시멘트 바닥에 정통으로 떨어뜨린 적이 한 번 있다. 그렇게 딱 두 번 뿐이다. 그 외에는 스크래치 하나 없이 애지중지 모시고 다녔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그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고 허름한 사설 수리 센터에 들어가니 기사님 한 분이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다행히 대기 손님이 없어 얼른 아이폰을 꺼내 보여드렸더니 오래 안 걸린다며 아이폰 분해 작업을 시작하셨다. 아이폰 뚜껑이 열리는 순간 왠지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전혀 안 든 건 아니지만 애써 다 잘 될 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센터에 비치되어 있는 커피 믹스 한 잔을 마시며 한가로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아닌가? 이것도 아닌가? 이상하네? 왜 안 되지? 이래도 안되나? 조금 불안해져서 기사님 책상 위를 살펴보니 뭐가 내 아이폰 부품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온갖 아이폰 부품 잡동사니들이 책상 위에 잔뜩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아찔했다. 기사님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며 내일 몇 시쯤에 전화주라고 하셨다.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군소리없이 수리 센터에서 나왔다. 아이폰이 없으니까 정말 심심하고 외로웠다. 컴퓨터로 트위터에 접속해봤지만 아이폰으로 할 때와는 달리 전혀 몰입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뜬 눈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약속 시간 정각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기사님은 대뜸 못 고치겠다며 시간 날 때 와서 찾아가라고 하셨다. 고장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하셨다. 사설 수리 서비스를 받은 흔적이 남지 않도록 감쪽같이 원상태로 복구해놓을테니 공식 A/S 센터를 찾아가 리퍼 서비스를 받으라고 하셨다. 문득 어느 아이폰 관련 카페에서 아이폰 나사 두 개만 풀었다 조여도 무상 리퍼 불가 판정을 받는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화가 났지만 괜히 화를 내서 기사님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무상 리퍼를 받을 수 있게 감쪽같이 원상태로 복구해주지 않으실까봐 군소리없이 알았다고만 했다.

잔뜩 풀이 죽은 채로 아이폰을 찾으러 갔더니 뜬금없이 어제 유심칩은 가져가셨었죠? 라고 묻는 거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유심칩이 없다는 거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난 유심침 빼는 방법도 모른다고 했더니 그래요? 이상하네? 하면서 책상 위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아이폰 부품 더미 들을 한참을 뒤지더니 아 여깄네요 하면서 유심칩을 끼워주시고는 리퍼폰으로 무상 교환 받을 수 있게 만들어준 비용으로 O만원을 청구하셨다. 황당해서 조금만 깍아달랬더니 그건 곤란하다고 하셨다. 내 입장을 생각해보시라고 했더니 반대로 자기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라고 그거 고치려고 다른 일도 못하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며 야무지게 받아치셨다. 결과적으로 조금 깍아주시긴 했고 그 당시엔 디게 고마웠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그냥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다. 사설 센터에서 수리를 받았다는 이유로 무상 리퍼 서비스 불가 판정 받으면 81만원 내고 유상 리퍼 서비스를 받아야 된다는데 불안 초조해서 잠이 안 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사설 수리 센터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 반, 그냥 시치미 뚝 떼고 정식 A/S 센터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 반이다. 기사님 말로는 다른 사설 수리 센터를 가도 못 고칠 거라고 했지만 못 믿겠다. 핸드폰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마음 고생하게 될 줄은 몰랐다. 괴롭다.

Posted by 애드맨

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러 다니다보면 간혹 자기 이야기부터 쓰라는 시나리오 강사를 만날 때가 있다. 듣고 보면 왠지 그럴 듯 하게 느껴진다. 잘은 모르겠지만 잘 찾아보면 내 안에도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고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설마 영화화할만한 뭔가가 아예 없을 것 같진 않다. 내 안에 뭔가 대단한 게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조금은 사치스런 여행의 핑계 꺼리도 된다. 무엇보다 취재나 인터뷰 등을 안 해도 될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다른 건 몰라도 취재나 인터뷰를 안 해도 된다는 건 분명 메리트다. 다행히 해당 분야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취재를 위해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야 된다고 생각하면 마냥 귀찮고 부담되는게 사실이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취재를 위해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럴싸한 영화사 명함 한 장 없고 꽃미남도 아닌 남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특히 여자들은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만나주지 않는다. 시나리오 취재 때문에 만나자고 하면 “무슨 작품 쓰셨어요?”라고 물어볼게 뻔한데 곧이 곧대로 대답했다간 거절당하는게 당연하다. 아무리 근성이 좋아도 그런 식으로 거절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약속을 잡더라도 캔슬당하거나 바람맞거나 연락마저 두절되는 경우를 몇 번 겪다보면 집필 의욕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잘 나가는 작가라면 이런 꼴은 안 당하겠지 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취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시나리오 강사의 조언대로 그냥 자기 이야기부터 쓰고 싶어진다.


사실 취재가 그렇게까지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취재를 제대로 하려면 준비를 제대로 해야 되는데 준비를 제대로 했더라도 취재원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엔 답이 없다.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지 않고 돈과 시간만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순 정보 수집 차원의 취재라면 차라리 인터넷 검색이 더 나을 때가 많다. 게다가 인터넷 검색이라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다. 시나리오 작가로선 아마추어지만 인터넷 검색 분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프로라는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검색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결국은 취재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러나 자기 이야기는 다르다. 자기에 대해선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를 그냥 옮겨 적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벌써 시나리오 한 편 다 쓴 기분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뭘 쓸 것인가? 가만히 방에 누워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돌이켜 본다. 이야기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영화화할 꺼리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또 다시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돌이켜 본다. 그렇게 계속 혼자서 자아성찰의 시간을 반복하다보면 십중팔구 남이 볼 땐 별 거 아닌데 자기가 볼 땐 별 거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다. 자기 이야기부터 쓰라고 가르쳤던 시나리오 강사한테는 칭찬 받을 수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영화화되지는 않는다. 습작 한 편 썼다 치면 상관없지만 습작 한 편 쓰고 강사한테 칭찬이나 받겠다고 시나리오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자기 이야기는 습작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자기 이야기부터 출발하는 건 애초에 노선 자체가 다른 것이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것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축구와 야구만큼이나 다른 것 같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둘이 같거나 최소한 비슷한 이야기였던 시절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내 기억엔 <희생>이 2만 관객 동원하던 시절이 바로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자기 이야기는 쓰지 마라. (자기 이야기하기엔 블로그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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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SF 영화가 간지는 난다. 혹성탈출, 스타워즈, 에일리언, 토탈리콜, 터미네이터, ET, 블레이드 러너, 로보캅, 아바타 등등. 아,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다른 영화들은 그냥 영화일 뿐이지만 SF 영화들은 그냥 영화 이상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장르의 작가들은 그냥 작가일 뿐이지만 SF 장르의 작가들은 그냥 작가 이상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분명히 있다. 일단 SF를 쓴다는 건 최소한의 교양은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아는 게 없으면 절대로 쓸 수 없다. 적어도 에로나 고어를 쓰는 작가들보다는 지적으로 느껴진다. 유명한 SF 작가들 중 몇몇은 예언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단순히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미래의 변화까지 예상하고 적중시킨다면 확실히 다른 장르의 작가들과는 한 차원 높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걸작 SF 영화들은 기타 장르의 걸작과는 달리 전 세계의 관객들이 목표다. 누구나 미래는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헐리우드 얘기일 뿐이다.

한국에서 SF는 안 된다. 한국 영화가 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SF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건 아니다. CG 기술이라면 근접했을 수도 있으나 영화를 CG 기술 만으로 만드는 건 아니다. 모두가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당연히 SF 시나리오는 아무도 안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SF를 쓰겠다는 친구들이 나와서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물론 아직까지 성공한 한국 SF영화가 없다는 이유로 현재에 안주하고 도전을 멈추어선 안 된다는 거 안다. 그리고 SF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쓰고 싶은 심정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열심히 잘만 쓴다면 아무런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필력이 범상치 않다면 시나리오 공모전 같은 데에서 상을 받을 순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상 하나 받겠다고 시나리오를 쓰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도 훌륭하고 가치있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공모전 수상은 아니다.

만약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은 했지만 영화화는 실패’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은 못했지만 영화화는 성공’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 같으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아마 나 말고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도 하고 영화화도 성공’의 경우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SF 시나리오의 경우엔 불가능하다. 실제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SF 시나리오가 있긴 했지만 영화화에는 번번히 실패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헐리우드를 능가할만한 훌륭한 SF 영화가 나오긴 하겠지만 언제가 될 지도 모르는 그 날을 위해 줄창 SF 시나리오만 쓰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자기 시나리오가 2~3년 안에 영화화되는 걸 보고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고 싶다면 SF는 쓰지 마라.

자기 돈이나 부모님 돈으로 만들거나 지원금을 타서 저예산으로 만드는 SF 영화는 논외로 하자. 헐리우드에서 SF를 만들려던 한국인 감독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경우도 논외로 하자. 그 분조차 지금은 SF 기획은 보류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전쟁 영화를 준비 중이시다. 내 생각에 지금 한국에서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급 SF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봉준호 외엔 없다. 봉준호보다 시나리오를 잘 쓸 자신이 있거나 감독이나 작가로 데뷔하고 필모그래피에 500만 영화 한 편, 1000만 영화 한 편을 추가시키기 전까진 절대로 SF는 쓰지 마라. 굳이 SF를 써야겠다면 소설을 쓰거나 만화를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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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난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친구 한 명이 좀비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러지 말라고 했다. 니가 왜 좀비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지는 알겠는데 무조건 쓰지 말라고 했다. 친구는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좀비 아이템이 얼마나 장점이 많고 매력적인지 주장하며 날 가르치려 들었다. 미국이나 영국같은 영화 선진국에선 잘 되는데 한국에선 아직 안 됐으므로 자기가 지금부터 쓰겠다는 것이다. 나는 다 알겠는데 그래도 쓰지 말라고 했다. 굳이 써야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왠만하면 쓰지 말라고 간곡하게 만류했다. 친구는 그래도 쓰겠다고 했고 나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가능할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1억 미만의 저예산 독립 영화가 아니라 메이저 자본이 투자된 블럭버스터급 좀비 영화가 제작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그 언젠가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친구의 나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기 이전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메이저 자본이 투자된 블록버스터급 좀비 영화 프로젝트는 무명 시나리오 작가가 야심차게 집필한 시나리오로부터 출발할 리도 없다.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업 영화계에 좀비 영화 프로젝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내가 아는 프로젝트만 해도 서너 건 정도 된다. 그것도 단편영화제 수상 경력이 전부인 이름 모를 감독 지망생이나 신인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감독들의 프로젝트들이다. 지금은 다 엎어졌거나 진행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고 있고 아마 향후 몇 년간은 그 프로젝트들을 극장에서 보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유명 감독들의 좀비 영화들이 왜 다 엎어졌거나 지지부진하고 있을까? 분명 시나리오의 문제는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그 시나리오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어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이나 영국같은 영화 선진국의 좀비 영화들에 비해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좀비 영화 특유의 사회적 불안감이나 의미 같은 것들이 세련되게 담겨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거나 자신이 좀비에게 물린 후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며 괴로워하는 장면들도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좀비 영화들이 성취해낸 것들을 넘어서진 못해도 비슷하게는 이루어냈을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먹고 좀비가 된다는 내용의 시나리오가 두 편 있었다.)


그러나 좀비 영화는 다 거기서 거기일 수 밖에 없는 면이 있다. 신인이 쓰건 기성이 쓰건 기획 회의를 여러 번 거치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면 기본은 나오는 반면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짜 낸다해도 기본 이상은 나오기 힘들다. 설령 시나리오가 기본 이상으로 나온다 해도 단지 좀비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프로젝트가 엎어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왜 좀비 영화라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지가 아니다.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를 잘 쓰고 못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게 중요한 것이다. 내 생각에 지금 한국에서 블록버스터급 좀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봉준호 외엔 없다. 박찬욱은 ‘흡혈귀’, 김지운은 ‘하드고어’를 만들며 ‘모두가 말려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씩 써버린 반면 봉준호에겐 아직 ‘모두가 말려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좀비 이야기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혼자서 백날 써봤자 영화화 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강풀이 지금 연재 중인 '당신의 모든 순간'이란 만화는 좀비 이야기다. 어쩌면 영화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강풀이니까'다.) 어느 날 갑자기 메이저 영화사가 속해있는 그룹의 회장님이 국산 좀비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하신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혼자서 좀비 이야기는 쓰지 마라. 내가 지금 나 혼자 잘 되겠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설마 남들은 좀비 이야기 못 쓰게 한 다음에 나 혼자 몰래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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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여성과 둘이서 술을 마셨다. 얼마 전에 남자 친구랑 헤어져서 외로우니까 나 같은 스타일만 빼고 아무 남자나 소개시켜달라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여성이 좋아할만한 남자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 막막했는데 그녀는 월급은 적어도 괜찮다는 조건(?)을 달았다. 순간 머리 속에 현재 여자 친구 없는 남자 친구들의 얼굴이 여럿 떠올랐다. 그 중 아무나 골라서 소개시켜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월급이 적어도 괜찮으면 정말 많은 남자들을 소개시켜줄 수 있기 마련이다. 당장이라도 술자리에 불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둘이서 눈이 맞아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내 입장이 난처해질 게 뻔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여성은 그 날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2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친구에게 소개팅을 시켜주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여성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숨기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두 사람이 나중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후 서로의 과거를 솔직하게 말해주기 게임이라도 하다가 로맨틱한 분위기에 취한 그녀가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 별 일 아니라는 생각에 나와의 과거(?)를 후련하게 털어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 주변엔 소개시켜 줄만한 남자가 하나도 없으니 여기저기 수소문해보겠다고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여성은 그럼 소개팅 성사 전까지는 자기가 부르면 언제 어디든 달려 나오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나는 언제 어디든 달려 나갈 순 있는데 그래서 뭘 하자는 거냐고 물어봤고 그녀는 그건 그 때 그 때 다를 예정이라고 했다. 그 때 그 때 다를 예정이라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지금 해보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는데 지금은 곤란하다고 했다. 그게 뭔지는 2차를 가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녀는 1차를 끝으로 집으로 가 버렸다. 술값은 그녀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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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보통은 회사 소속 피디님에게 일을 의뢰받고 함께 작품을 진행하게 되는데 한 달 넘게 또는 두 달 이상 넘게 이래라, 저래라, 이러는 게 좋겠다, 저러는 게 좋겠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으니 다음엔 저 길로 가보자 등의 지시를 받고 군소리 없이 따르다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분명 시키는 데로 다 했는데 일이 진행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계속 원점으로 돌아오길 반복이다. 지지부진하다. 대충 눈치를 보아하니 피디님이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 것 같다. 피디님 위에 또 누군가가 있어서 피디님도 그 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신세임이 분명하다. 피디 건너뛰고 최종 결정권자랑 독대하고 싶다. 이대로 계속 피디님이 시키는 데로만 하면 지금까지처럼 계속 삽질만 하게 될 것 같다. 뭔가 수를 내야 되겠다. 게다가 피디라는 사람이 나보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영화 외적인 것들 예를 들면 조직에서 살아남기, 대표님에게 잘 보이기, 줄 잘 서기 등의 영화판에서의 처세술에 대해서라면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확실히 내가 더 잘 아는 것 같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한 번(만나기 전에 한번 살펴봤으니) 피디님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의외로 훌륭한 작품이 없진 않다. 그런 훌륭한 작품에 참여하신 분이 자기보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나름 결론을 내린다. 아! 현장 경험이 많다고 영화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구나. 하긴 그렇게 따지자면 밥차 사장님보다 영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반대로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이 사람이 왜 피디인지 모르겠는 경우도 있다. 겨우 이따위 경력으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한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경우엔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있다. 피디 하기 전엔 뭐했냐고 물어보니 딴 일 하다 왔다고 한다. 딴 일 하다 왔으면서 평생 시나리오만 써 온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 거야? 어이가 없다. 이젠 나름 결론을 내린다. 경력을 떠나 변변한 시나리오 한 편도 못 써 본 피디가 습작만 수십 편에다 공모전 수상까지는 아니라도 심사위원에게 추천당한 경험도 있는 작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리는 상황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영화에 대해 더 잘 아는 게 분명하니 앞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면 그게 왜 말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득시키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이끌어가자. 조만간 합류할 감독도 내 의견에 손을 들어줄 것이다. 제대로 된 감독이라면 내 말이 맞다고 할 게 분명하다.


잘 알겠는데 그러지 마라. 입금이 끊기기 전까진 해 달라는 데로 다 해줘라. 피디건 감독이건 투자자건 기획팀 직원이건 마케팅 직원이건 알바 모니터 요원이건 변변한 시나리오 한 편 안 써 봤을 순 있어도 최첨단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포함해서 가끔 예술 영화도 감상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뭐가 좋고 나쁜 지는 자기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이건 시나리오 작가 한 명이 서 너 시간 토론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선 누구의 말이 맞는지 검증할 수가 없다. 대표님도 모르고 투자자님도 모른다. 누구 말이 맞았는지는 개봉 이후 흥행 성적이 말해주는 거다. 개발 단계에선 그저 예측만 가능할 뿐이다. 개봉 이후엔 그 때 작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 의견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면 얼마 일해보지도 못하고 짤렸을테니 무슨 말을 했는 지는 커녕 그런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모를 것이다. 설령 자기가 짤린 이후에 자기 의견대로 해서 흥행이 잘 됐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 없다. 그런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해 달라는 데로 다 해주다가는 계속 삽질만 할 게 뻔하다고? 운명이다. 팔자려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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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시나리오 관련 일을 하다보면 시나리오 회의 때 또는 시나리오 회의 이외의 시간에 당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질 때가 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시절엔 상상도 못했거나 말로만 들어왔던 억울하거나 어처구니 없거나 웃기지도 않은 일들을 막상 겪고 나니 혼자만 가슴 속에 간직하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알고 보니 나만 똑똑하고 다들 바보더라는 사실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보통은 믿을 수 있는 지인이나 친구들을 불러내 술이나 커피를 사주며 괴로워죽겠는 척을 하며 실컷 회사 욕을 하고 다음 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믿을 수 있는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는 지 그 중 가장 웃기다고 생각하는 몇몇 에피소드 들을 블로그에까지 작정하고 연재소설 쓰듯 올리는 경우가 있다. 블로그에 그런 이야기를 올리는 심정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데 왠만하면 하지 마라.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냐만은 그냥 하지 마라. 올리지 마라. 혼자만 알고 있거나 믿을 수 있는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잊어버려라. 그럴 시간 있으면 시나리오를 써라.


솔직히 그런 이야기들을 블로그나 트위터에 연재하면 이전보다는 인생이 조금은 더 즐거워지는게 사실이다. 자기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믿을 수 있는 지인이나 친구들과는 달리 블로그에서 만난 사람들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진지하게 반응해준다. 회사엔 내 편이 없었지만 블로그에선 다 내 편 같다. 그 중 다는 아니더라도 몇몇은 마치 가족처럼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주거나 걱정해주거나 응원해 줄 것이다.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또 그 중엔 이미 비슷한 일을 겪은 업계 선배가 있기 마련이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이나 정보를 비밀 덧글로 남겨주기도 한다. 자신은 단지 하소연만 했을 뿐인데 위로를 받고 응원도 받고 좋은 정보도 얻게 된다. 블로그에 일 얘기를 올리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부턴 블로그에 일 얘기를 올리는 것에 재미가 들려서 일은 뒷전이 되고 작품을 진행하면서 겪고 있는 온갖 시시콜콜한 일들을 블로그에 연재하게 된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겪는 일이란게 장기간 일일 연재할 수 있을 만큼 풍성할 리가 없으니 조만간 흐지부지해지게 마련이다. 자연스레 덧글의 수가 줄어든다. 방문자 수도 줄어든다.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별 탈이 없으면서 재미도 있는 소재꺼리도 줄어든다. 이유없이 초조해지고 인기가 많다가 없어진 연예인들의 심리를 알 것도 같아진다. 점점 수위가 쎈 이야기를 올리려다 애써 자제하게 되고 어쩌다 술이라고 먹고 들어오는 날엔 당사자가 알게 되면 큰일날만한 위험한 수위의 글도 올려버린다. 그래놓곤 술 깨고 나면 화들짝 놀라며 자진 삭제하길 반복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누군가 공개된 장소에서 자기 모르게 자기 뒷다마를 까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기분이 좋겠는가? 나쁘겠는가? 굳이 뒷다마가 아니라고 해도 문제다. 누군가 일 이야기를 할 땐 그 이야기가 불특정 다수에게 연재될 꺼란 생각까지 하진 않는데 자기가 한 이야기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일일 연재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블로그가 있더라는 소문을 듣고 몰래 찾아가서 덧글을 읽어보니 자기 욕도 있다. 자랑스러울까? 당황스러울까? 당사자의 귀에 영원히 안 들어갈 것 같은가? 이 바닥이 그렇게 좁진 않지만 당사자의 귀에 영원히 안 들어갈 정도로 '좁지 않진' 않다.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도 익명으로 연재하면 안 들킬 것 같나?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갑’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바보도 아니고. 기분이 좋고 말고 자랑스럽고 당황스럽고를 떠나 허락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 불특정 다수에게 연재하는 작가와 같이 일을 하고 싶을까? 제작사와 겪고 있는 이야기를 연재하는 작가의 블로그나 카페 들을 몇 번 본 기억이 나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십중팔구는 해당 글이 자진 삭제되어 있거나 블로그 자체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있다. 요즘엔 시대가 변해선지 일 얘기가 올라오는 트위터를 종종 보게 된다. 트위터도 블로그와 비슷하다. 트위터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왠만하면 블로그나 트위터에 일 얘기는 올리지 마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럴 시간 있으면 시나리오를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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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잊을 만 하면 한번 씩 들려오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서 너 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갓 대학교나 시나리오 관련 학원을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걸어보기로 결심한 나이 어린 여자 작가 지망생이 천신만고 끝에 보조 작가 일을 얻게 됐는데 수십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자기를 뽑아준 남자 메인 작가가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원래 여자 보조 작가는 남자 메인 작가랑 한번 자고 나서 일을 시작하는 거라며 한번만 자자고 졸랐다는 것이다. 이 바닥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남자 피디랑 여자 작가랑, 남자 감독이랑 여자 배우랑, 남자 조감독이랑 여자 연출부랑 한 번 자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여자 메인 작가가 남자 보조 작가에게 그런 요구를 했다는 얘긴 못 들어봤다.) 나라고 이 바닥에 대해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꼭 그렇진 않다고 장담할 수 있다. 이렇게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자자고 조르지는 않더라도 오밤중이나 새벽녁 술자리에 불러내서 일 얘기는 조금만하고 뻔한 수작만 부리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요즘 워낙에 일이 없고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어려운 가운데 어떻게든 일은 해보고 싶은 심정은 잘 알겠고 천신만고 끝에 보조 작가로 뽑혔는데 아무 잘못도 없이 짤리기는 싫은 심정도 잘 알겠는데 그런 남자와 같이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그냥 하지 마라. 아무리 작가 일을 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살살 구슬리고 꼬셔도 넘어가지 마라. 일단 보조 작가 일이라는게 자기 싫은 남자와 자면서까지 해야 될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대단한 일 하셨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정 일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냥 알바하면서 자기 작품 써라. 모름지기 작가라면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게 맞긴 하다만 자기 싫은 남자와 자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알바하면서 글 쓰는 게 여러모로 훨씬 낫다. 물론 메인 작가와 보조 작가 사이로 만나서 작품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알콩달콩하는 사이로 발전한 후 서로의 합의하에 운명적으로 자게 될 수는 있다. 이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 여자 작가 지망생에게 한번만 자주지 않으면 일을 안 시켜줄꺼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일 리가 없다. 자기 싫다고 거절하는 여자 보조 작가에게 자기에게 밉보이면 이 바닥에서 발붙이기 힘들꺼라고 협박하는 남자 작가도 있다는데 요즘 이 바닥에서 그 정도의 파워를 갖고 누군가를 매장시킬 수 있는 남자 작가는 없다고 봐도 좋다. 이 바닥이 좁긴 하지만 그 정도로 좁진 않고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남자 작가라면 절대로 그런 요구를 할 리가 없다. 소문날게 뻔하기 때문이다. 잃을 게 너무 많다. 잃을 게 없어야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거다.

위와 같은 상황을 겪은 전현직 여자 보조 작가들이 그런 요구를 한 남자 작가들의 이름을 얘기해 줘서 누군지는 알겠는데 그냥 한숨만 나왔다. 한 두 다리는 아니고 서너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데 누군가를 매장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긴 커녕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름을 얘기해도 대부분은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작품다운 작품을 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회사와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내 기억에도 자기에게 밉보이면 불이익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해 준 전현직 여자 보조 작가들은 다행히 그런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만일 그런 요구에 응했다면 자기 싫은 남자와 자주고 일다운 일도 못해보고 결국엔 작품이 엎어지는 씁쓸한 경험만 하게 됐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싫은 남자와 자주면서까지 쓰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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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최근 몇 년간 내가 직간접적으로 만나 보고 들어 보고 같이 일해 본 시나리오 작가들 중에서 일적으로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시나리오 한 편이 영화화되는 확률이 워낙에 희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업 도중에 작품이 엎어지고 돈도 떼이면 당연히 우울하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작품이 극장에 걸리거나 대박이 나도 우울하긴 매한가지였다. 쪽박이 나면 우울하다 쳐도 대박이 나도 우울한 건 왜일까? 작품이 대박이 나더라도 시나리오 작가에게 떨어지는 건 쥐꼬리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 작품이 자기 아이템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작가에게 뭔가 떨어질 수 있도록 계약을 잘 하면 될 것 같지만 ‘갑’은 ‘을’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일 년에 열 편 개봉하면 한 편 나올까 말까하다는 대박의 기쁨에 취해있는 누군가의 선처로 소정의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자기는 몇 년 간 죽도록 노력해서 쓰고 또 써서 천만원 이상 삼천만원 이하의 금액을 그것도 세 번에 걸쳐 나눠 받고 떨어졌는데 누구는 몇 억원대의 금액을 한 번에 챙겨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사람 마음이 원래 그런 법이다.


작업 과정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다 아는 얘기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 자체가 그리 즐거운 행위는 아니다. 개인 작업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생계형 시나리오 작가들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한 편 써서 공모전이나 인맥을 통해 업계에 이름을 알린 다음 오리지널 작업보다는 주로 영화사에서 아이템 의뢰를 받거나 각색을 맡아서 생활하게 되는데 회사에서 시키는 데로 써 가면 시키는 데로만 썼다는 소리를 듣고 나름 열심히 해보겠다고 시키는 것 이상을 써 가면 왜 쓸데없이 시키지도 않은 걸 써 왔냐는 소리나 듣기 일쑤다. 답답한 마음에 그럼 원하는 게 뭐냐고 시비거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정중하게 물어보면 그걸 알면 우리가 쓰겠죠 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암튼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경우는 한국 영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시나리오가 잘 나온다 해도 투자다 캐스팅이다 해서 여기 저기 돌다보면 백이면 백 누군가는 반드시 뭐라고 한 소리 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말도 안 되는 상대에게 시나리오 강의를 듣게 될 때도 있고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쳐야 될 때도 있다. 작가도 사람인지라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의욕이 없어지게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회사에서는 작가의 심리 상태를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슬슬 다른 작가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시키는 데로 고분고분 잘 따라도 완고까지 뽑아내긴 쉽지 않다. 작가에게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는 판단이 서면 점점 연락이 뜸해지다가 타이밍을 봐서 교체당하기 일쑤다. 이런 험한 꼴 당하기 싫어서 자기 마음대로 오리지널 작품을 써서 운 좋게 계약한다 쳐도 개발 과정에서 회사랑 노선이 달라지고 마찰이 생기는 순간 작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계약을 잘 하면 될 것 같지만 ‘갑’은 ‘을’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3~4년 전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계의 장기 불황 덕분에 이젠 작가에게 작업 의뢰를 하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영화사가 많지도 않다는 것이다. 다른 건 노력하면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업계의 불황은 작가 한 두 명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작 환경도 크게 변했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플란다스의 개>라는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입봉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이젠 <플란다스의 개>같은 시나리오가 바로 이렇겐 쓰지 말아야 될 시나리오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최소한 쓰지 말아야 될 것들을 알고 있어야 일 비슷한 거라도 해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시나리오를 쓰면 불행해진다는 걸 알고 나서도 굳이 써야겠다면 최소한 쓰지 말아야 될 것들이라도 알고 있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구조랑 캐릭터 연구도 중요하지만 이젠 잘 쓰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체가 어쩐지 잘 나가는 놈이 자기 살아온 얘기하면서 잘난 척하는 느낌이 나는데 내가 잘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비공식업무일지 카테고리의 아무 글이나 읽어봐도 알 수 있으니 오해가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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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지난 주 쯤 인가? 국내에 출간된 거의 모든 시나리오 작법 책을 읽은 기념으로 한국에 출간된 시나리오 작법 책의 어떤 경향에 대해 심심풀이 삼아 써 보려고 했는데 그런 걸 쓰느니 차라리 시나리오 작법 책을 새로 하나 써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작법 책을 쓰려고 하면 어떻게든 쓸 수는 있겠는데 내가 지금까지 쓴 시나리오 중에선 대박은 커녕 영화화 된 것조차 단 한 편도 없다는 것이다(내가 만든 단편 영화 제외). 부끄럽지만 공모전 예심조차 통과해 본 적이 없다. 지금 고작 한 두 편 쓰고 이런 얘기 하는 거 아니다; 심지어는 보조 작가로 참여한 작품 중에서도 영화화 된 것이 없다. 자랑이 아니다. 아니다. 어쩌면 자랑일 수도 있겠다. 한때 날고 기던 사람들도 일이 없는 요즘같은 세상에 그런 저질 경력으로도 지금까지 월급을 받아 먹고 살고 있는 게 누군가의 눈에는 대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물론 그간 나에게 월급을 준 대표님들에게는 언제나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기회와 능력이 되면 보은할 생각이다.


암튼 영화화된 시나리오조차 한 편 못 쓴 주제에 로버트 맥기보다 잘 쓴다 해도 아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사실 로버트 맥기보다 잘 쓸 자신도 없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 같은 사람이 시나리오 작법 책을 쓴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소린가? 당연히 말도 안 되지.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축구보고 술마시고 트위터하면서 놀러 다녔다. 그게 지난 주 까지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주 부터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관점에 따라선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시나리오 작법 책의 저자로 더 경쟁력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 작법 책에도 여러 분야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정쩡하게 한 편이라도 대박이 났거나 영화화된 게 서너 편이 있는 사람보다는 영화화 된 게 단 한 편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더 유리한 분야가 있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국내에 출간된 거의 모든 시나리오 작법 책에는 시나리오를 이렇게 저렇게 쓰라는 얘기 밖엔 실려 있지 않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나쁜 시나리오의 예시는 몇 번 본 기억이 나지만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라는 주제에 책 전체가 오롯이 할애되어 있는 건 못 본 것 같다. 비록 내가 안 되는 시나리오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직간접적인 경험에 의해 어지간한 사람보다는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뭘 어떻게 써야 되는지는 모르지만 뭘 어떻게 쓰지 말아야 되는지에 대해선 안다고 말 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써야 되는지를 알고 싶으면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으면 된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집필 습관에 대해 알고 싶으면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들의 101가지 습관을 읽으면 된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처음 쓰는 작가들에게는 어떻게 쓰면 되는지 만큼이나 중요한게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를 아는 것이다. 어떻게 쓰면 안 되는 지만 알아도 최소 몇 년은 절약할 수가 있다. 몇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지금까지 되도 않을 시나리오를 쓰느라 또는 되도 않을 시나리오에 참여하느라 낭비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릴라 그런다. 만약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예전부터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나마 현역에서 감을 유지하고 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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