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우연히 만날 것도 같은데

닮은 사람 하나 보지 못했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일까

저 골목을 돌면 만나지려나



재택근무 이후 우연히라도 길거리에서 동료 직원들과 마주친 적이 없다. 활동하는 동네가 비슷하고 시사회도 자주 들르기 때문에 극장에서라도 우연히 마주칠 줄 알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오랜시간 동안 매일 매일 출퇴근하며 가족보다 친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남이 되버리고나니 예상대로 역시 망한 영화의 스텝 분위기나 망한 회사의 직원 분위기나 별반 다를게 없다는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사실 우연히는 아니지만 만나려면 만날 수는 있었다.


밀린 급여와 퇴직금 정산을 요구하는 직원들이 대표를 찾아가 담판을 짓는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직원들과 이 날 이때까지 하는 일 없이 인터넷 검색과 무의미한 회의만 무한 반복하던 나에게 월급을 주신 대표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는데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직원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표는 진심으로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니 법적 절차를 밟든 말든 뭐든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했다고 한다. 직원들도 그런 대표 앞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흐지부지 헤어지고 말았다는데 대표도 힘들겠지만 그동안 믿고 따르던 대표를 찾아가 이런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직원들의 심정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나야 뭐 처음 면접 때부터 출근을 포기하는 날까지 대표에게 사랑받으며 회사를 다닌 적이 없으니 그러려니 해도 다른 직원들은 나보다는 대표와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비교적 불의를 봐도 잘 참는 성격인데 한 때는 학교 선배들 따라 시위하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대학 안에서도 유행이 지났고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게 당연한 시절이었는데 강의실 대신 거리에서 한 철을 보내고 나니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모임에서 나와버린 그날 이후 거리의 학우(?)들과 함께 하지 않는 나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자괴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비교하는게 우습긴 하지만 그 때 그 시절 생각이 났다. 학교에서 우연히 거리의 학우들을 마주치면 어찌나 민망하던지... 물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밀린 급여와 퇴직금이라는 불의 앞에서 참지 않고 분연히 떨쳐 일어난 동료 직원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은 나 자신이 어째 좀 비겁하게 느껴지지만 그냥 부질없는 것 같아서 그랬다.


언젠가 한번쯤 저 골목을 돌다 우연히 동료 직원들을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해야겠다.
받아주려나?

Posted by 애드맨

제목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밀린급여


개봉일

미정


메인카피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들은 밀린 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


줄거리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OO영화사는 현재 망해가는 중이다. 대표 하나 믿고 회사에 온 직원들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하나 둘 엎어지고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자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한다.


직원들이 하나 둘씩 떠나자 사무실 분위기는 뒤숭숭해지고 남은 직원들은 회사가 망해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밀린 급여조차 받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영화계조차 불황이고 내년이 되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표를 믿는 직원들은 대표를 믿지 않는 직원들을 위로해보려 하지만 한없이 0에 가까워지고 있는 통장 잔고 앞에서 돈 안되는 위로 따위는 아무도 원치 않는다.


사실 대표를 믿는 직원들도 두렵고 초조한건 마찬가지고 권고사직이라도 당해 실업급여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시간이 지나면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가져보려 하지만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막연히 어떻게든 올해는 넘겨보자는 심산이다.


<밀린급여>를 네이버에서 검색하는 직원들과 대표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않은 직원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점점 깊어가는 두 그룹 사이의 반목과 불신 때문에 조만간 험한꼴이 연출될 것만 같다. 과격파 직원들은 법적조치를 취해서라도 밀린급여를 받아내겠다고 하고 온건파 직원들은 쌓인 정을 생각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는 가운데 대표를 믿는 직원들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기대
동병상련

우려
무관심;;

흥행예상

기대 < 우려




매주 열리던 더 이상 의미없는 주간업무보고회의가 취소되고 사무실에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밀린급여와 퇴직금을 계산해봤다. 제법 목돈이다. 내 블로그에 꾸준히 댓글 달아주시는 고마운 님들 모두에게 삼겹살 일인분씩 사드리고도 많이 남을 정도의 금액이다.


작가들 술값으로 뿌려댄 정산되지 않은 진행비에 대해선 마음을 비웠지만 그래도 밀린급여와 퇴직금은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네이버에서 <밀린 급여>를 검색해보니 지금 회사를 다니기 전에도 똑같은 단어를 검색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엔 엠파스로 <밀린 급여>를 검색해보았다. 이미 네이버에서 검색된 내용들이 뜬다. 마음을 비워야 될 것 같다.


사무실에서 마음이 통하는 직원들과 밀린급여 문제에 대해 메신저로 틈틈이 얘기를 나눠보면 모두가 어떤 절차를 밟아야 밀린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고 독한 마음 먹고 법적절차를 밟는다해도 땡전 한푼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기획팀 정말 답답하다고. 도대체 월급 받고 지금까지 영화 한편 못 들어간 이유가 뭐냐고. 물론 나에게 물었다기 보단 나와 함께 있던 큰언니와 둘째 언니 들으라고 한 소리 같은데 둘 다 못들은 척 했다. 나는 이럴 때 화난 척 하고 밥상을 엎고 뛰쳐 일어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상상을 잠시 하다가 냉정을 잃지 않고 머리를 긁적이며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바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한숨. 사실 그동안 우리 세명은 남의 피같은 돈 받고 말만 많이 했지 제대로 한 일은 하나도 없는게 사실이다. 할 말 없다.


다른 팀 사람이 답답해 할 정도면 그동안 월급 준 대표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대표한테 미안한데 그래도 밀린급여는 받고 싶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