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1이 여름 한철 죽도록 고생해 단편영화를 만들어서 2007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을 했는데 본선 상영작 명단에 오르지도 못했다며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지만 당장 내가 연체 직전의 금융 위기 상태라 오늘은 힘들고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한잔 사겠다고 했다.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상영작 명단에 오르지 못한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술까지 사달라는지 그 허무한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게임, 일드, 미드같은 취미생활에 몇 일만 올인해도 금방 잊을 수 있는 고통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후배1이 단편 영화를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로 만들고 싶은 건 연예인 스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편상업영화고 단편영화는 장편상업영화 감독이 되기 위한 디딤돌 같은 존재일 것이다. 결국 후배1에게 서울독립영화제는 장편상업영화를 만들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만든 단편영화를 충무로 제작자들과 피디들에게 선전하기 위한 그리 효과적이지 않은 홍보 수단일 뿐이다.


게다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수백명의 장편 상업 영화 감독 중 서울독립영화제 출신 감독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고 직접 서울독립영화제에 가서 보면 알겠지만 이것이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에 선정될만한 수준의 단편영화라고 할 만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사평에 이런 저런 의미를 갖다붙여도 어차피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상영작 선정 기준은 심사위원이 해마다 바뀌듯 다를 수 밖에 없고 서울독립영화제 사람들도 사람이다 보니 단골 손님은 있게 마련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심정으로 선정되는 영화들도 몇편은 있을테니 그들의 눈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무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영화의 유통 배급망이 현실적으로 영화제 말고는 없기 때문에 서울독립영화제나 미쟝센 단편영화제 상영작에 선정되지 못하면 죽도록 고생해서 만든 영화를 스텝들과 가족들끼리만 보고 외장 하드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해야 된다는 사실은 무척 허무할 수 밖에 없다. 간혹 인터넷에 UCC처럼 올린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기적같은 일이니 일반화 할 수는 없다.

독립영화를 만드는건 예술의 영역이지만 영화제 상영과 배급은 비즈니스의 영역이므로 언제까지고 독야청청 인디펜던트일 수 없다는 사실을 독립영화 기획 단계부터 고려해야되는데 영화제 심사위원의 취향을 고려해가며 만드는 영화가 독립영화일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런데 독립영화 만들어서 성공하려면 영화제 심사위원 뿐만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 영화 지원금을 배분하는 심사위원의 취향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그렇게 뻣뻣하게 독립적으로 사고하면 독립영화 제대로 해먹기 힘들다.


독립영화 만들어서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상영작에 선정되는게 영화 인생의 목표라면 더 이상 할말은 없지만 어차피 남의 눈치를 보며 영화를 만들어야 되는 팔자라면 몇 안되는 심사위원에게 잘 보일 생각일랑 잊어버리고 일반 대중에게 잘 보여 한 푼이라도 더 삥뜯을 궁리를 하는게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자세아닐까.

Posted by 애드맨

레드카펫은 패션쇼가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결국 장사다. 한 마디로 돈을 버는 일이다. 돈 많은 누군가에게 투자를 받아야 시작할 수 있고 유무형의 수익을 창출해야만 지속될 수 있다. 하다못해 레드카펫쇼에 참여하는 연예인들 구경만 하고 곧장 집으로 갈 예정이었던 청소년들의 코묻은 돈이라도 레드카펫 근처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에게 안겨주어 영화제를 후원하는 부산 시민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시장에서 엿을 파는 엿장수의 차림새를 본 적이 있는가? 부산국제영화제 수익 창출에 이바지할수만 있다면 김동호 위원장이 엿장수 옷을 빌려입고 레드카펫 위에서 연예인들과 함께 덤블링이라도 해야 된다. 좋든 싫든 투정을 부리든 영화제의 정체성도 박스오피스의 척박한 논리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 그런데 필름마켓을 중시하고 다양한 기업체의 후원을 받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이 박스오피스의 척박한 논리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섹시한 여배우 한명이 야한 드레스입고 엉덩이 살랑 살랑 흔들며 레드카펫 위를 2~3분 정도 사뿐 사뿐 워킹해주는게 개막작으로 중국의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집결호가 초청됐다는 뉴스보다 홍보효과가 클 것이다. 난 아직도 김소연의 아슬아슬 드레스를 잊지 못하고 있다.


레드카펫의 영광을 박스오피스의 척박한 논리에 가려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배우들에게 헌사하려 해도 당장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는 터지지 않을 것이고 스타를 기다리는 팬들은 침묵할 것이다. 일단 누군지 알아야 호응을 할 것 아닌가. 현란한 카메라 플래시와 귀가 찢어질듯한 팬들의 환호 그리고 부산 시민들의 짭짤한 미소가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를 10회 넘도록 지속시켜온 발전 동력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목표는 생존과 지속이다. 언론의 노출에 목마른 연예인들을 이용해 홍보효과를 얻고 있다고 비난하는 건 멀티플렉스 극장 한개 빌려서 독립영화제나 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연예인 스타의 홍보 효과를 이용하고 있는 건 단편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스타 마케팅을 도입한 미쟝센 단편영화제와 스타 마케팅을 도입하지 않은 서울독립영화제나 인디포럼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답은 뻔하다. 영화제 사업이 예술의 본질과 기회의 균등 운운하며 고상떨며 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레드카펫쇼에만 참여하고 영화는 보지도 않고 곧장 서울로 올라가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연예인들에 대해서도 지탄을 하는 분들이 있던데 언론에 어필했으면 빨리 자기들을 불러주는 곳으로 스타크래프트 타고 날아가야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라는 자신감은 그냥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만 간직하면 된다. 영화제라는 쇼비지니스의 특성상 거품과 허영 그리고 화려한 포장이 없다면 내후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는 도쿄나 베이징에서 열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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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