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적인 고민들 중 대부분은 내가 그 때 시나리오만 잘 썼더라면 하지 않아도 됐을 고민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 때 아무리 시나리오를 잘 썼다고 해도 어디서 권위있는 시나리오 상을 받고 전지전능한 제작자에게 발굴되서 나는 아직 멀었다고 사양하는데도 이 시나리오를 감독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감독을 맡았는데 예상대로 대박이 나서 칸느나 베니스에서 상도 받고 헐리우드에서 에이전시 계약 제안이 들어오는 인생을 살고 있으리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업무적인 고민들이 덜 했을 것이 분명하다. 허무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시나리오 학원을 다녀보면 어떨까 했는데 대학교 다닐 때 수년 간 훌륭한 감독님에게 시나리오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시나리오 학원에 다닌 적은 없지만 시나리오 수업을 들은 적은 있는 것이다. 수업을 들은 기억보다는 수업 시간에 잔디밭에서 감독님과 술 마신 기억이 더 많긴 하다만 이제와서 시나리오 학원에 다닌다 해도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훌륭한 시나리오 작법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했는데 한국에 출간된 시나리오 작법 책이란 책은 거의 다 읽은 기억이 났다. 한국에 출간된 시나리오 작법 책의 어떤 경향 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 같은 걸 쓸 자신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습작을 많이 해보면 어떨까 했는데 지금 내 컴퓨터 속의 내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폴더에 당시엔 습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습작이 된 수 십 여편의 시나리오들이 저장되어 있는 기억이 났다. 현장에 나가서 훌륭한 감독님과 일해보면 어떨까 했는데 이미 그래봤다. 똘똘한 후배가 치고 올라와주면 어떨까 했는데 그냥 부러울 뿐이었다. 누구처럼 야구를 보다가 문득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걸까? 좀 이따 축구나 보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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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환자에게 병 이야기를 안해주는게 환자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시나리오 안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시한부 병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시나리오는 또 쓰면 되는 거고 정 미련이 남으면 고치면 되는 거다. 게다가 굳이 내가 그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더라도 아무개는 조만간 자기 시나리오가 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는 아무개의 행복한 얼굴이 참 보기 좋았다. 몇 번 더 보고 싶다. 그래. 나는 그 얘기 못 들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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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순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선 절대로 좋은 영화가 나올 순 없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이유로 시놉시스를 시나리오보다 먼저 썼다는 전제 하에 좋은 시놉시스에서 나쁜 시나리오가 나올 순 있지만 나쁜 시놉시스에선 절대로 좋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시나리오가 좋다고 시놉시스까지 좋으란 법은 없지만 대부분은 시놉시스만 보면 시나리오까지 읽어봐야 할지 말지 감이 온다. 시놉시스를 잘 쓸 자신은 없지만 시나리오만큼은 잘 쓸 자신이 있다며 시놉시스 단계를 건너뛰고 시나리오부터 썼는데 놀랍게도 좋은 시나리오가 나오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라도 시놉시스를 먼저 썼더라면 시나리오만큼이나 좋았을 가능성이 크다. 시놉시스가 반드시 웰메이드여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는 시놉시스를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는 작가의 집필 과정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신념 하에 나쁜 시놉시스에서도 좋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다년간 이런 저런 사례들을 겪고 나니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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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좋은 작품을 위해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칩니다'라는 나레이션과는 달리
봉준호 감독이 광고 속에서 실제로 고치고 있는 건 시나리오가 아니라 콘티다.

혹시나 콘티를 시나리오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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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해 캐비닛에 차고 넘치는 시나리오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도서분류 · 관리방법이 급속히 발달했다지만 나는 딱 한 가지 기준으로만 시나리오를 분류하는데 그 기준은 바로 싹수다. 내가 생각하는 싹수란 시나리오의 문학적 완성도나 공모전 수상 가능성 또는 영진위 지원작 선정 여부 따위가 아니라 순전히 영화화 가능성을 뜻한다. 그렇게 일단은 싹수를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분류하고 대박 중박 쪽박을 기준으로 최종 분류하는 편이다.


이런 말 하면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데 나는 어떤 시나리오든 대충 처음 몇 페이지만 읽어보면 싹수가 있는 지 없는 지 알 수 있다. 어떤 시나리오가 싹수있는 시나리오인지 정색하고 묻는다면 딱 잘라 대답하기는 힘들지만 대충 처음 몇 페이지만 읽어보면 견적이 나온다. 물론 <봉준호나 김지운> 같은 국가대표급 감독들의 시나리오는 누구라도 당연히 싹수있다는 평가를 내리겠지만 그 외 기타 등등 영화인들의 시나리오는 평가가 갈리는 편이다. 그러나 <봉준호나 김지운> 같은 국가대표급 감독이 집필한 시나리오라도 누가 썼는지 모른 채로 읽는다면 쉽게 싹수 여부를 판단하기가 함들 것이다.


한마디로 어느 무명 작가가 <존경받던 신부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후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치명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나 <만주를 배경으로 말타고 총싸움하는 이야기>를 썼다면 당연히 읽어보지도 않고 싹수없는 시나리오로 분류하겠지만 만약 그 시나리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의 시나리오라면 읽어보지도 않고 싹수있는 시나리오로 분류할 것이라는 얘기다.


작년엔 한국영화계의 불황 탓인지 신상 시나리오 편수가 확 줄어서 시나리오 정리 작업이 재작년에 비해 한결 수월했다. 오래 묵은 싹수없는 시나리오들을 대거 이면지로 재활용했고, 싹수있는 시나리오로 분류했었으나 영화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나리오들을 싹수없는 시나리오로 재분류했다. 시나리오 재분류 작업을 끝내고 싹수있는 시나리오로 분류했었으나 아직까지도 영화화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는 시나리오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는데 이렇게 훌륭한 시나리오들이 아직까지도 영화화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이 바닥엔 팔자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캐비닛 안에는 몇 년 전에 싹수있는 시나리오라고 평가했으나 아직까지도 영화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시나리오들이 총 서 너편 정도 되는데 (마린보이도 그 중 한 편이었다. 마린보이 한 편만 놓고 보면 다소 허술해보일 수도 있지만 한 해에 수백편씩 쏟아져나오는 시나리오들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마린보이는 불후의 명작이나 다름없다.) 이 시나리오들만 생각하면 뭔가 해 보려는 의욕이 생기려다가 말곤 한다. 이렇게 잘 써도 영화화가 안 되는 마당에 더 잘 쓸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싹수없는 시나리오로 분류했었으나 그 시나리오의 아이디어 제공자가 투자자이거나 제작자인 관계로 결국엔 영화화되어 극장에 걸리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흥행성적과는 상관없이) 나에게도 언젠간 기회가 올 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내 아이템들은 당연히 싹수있는 시나리오로 분류되어 있다.

2008/12/29   마린보이 기대된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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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
2009년 1월7일부터 2월1일까지


줄거리

영화감독인 남편은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려고 고군분투하지만 작업환경은 나아지는 게 없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내는 매일 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며 어려운 가정을 꾸려나간다. 어느 날 아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시아버지는 유서 한통 남기고 목을 매 자살했지만 시동생은 아버지가 죽은 줄도 모르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내의 소식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도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시나리오 수정 작업만 계속할 뿐이다. 다시 밤이 되자 아내는 노래방으로 나서고, 남편은 탈고한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 대표를 만나러 가고, 시동생은 축 늘어진 아버지의 시신 아래에서 찬밥을 차려 먹는다. 이렇게 가족들은 아버지 곁에서 똑같은 일상생활을 계속하는데….


기대

영화감독인 남편의 시나리오를 읽은 영화사 대표의 반응이 궁금하다


우려

일반 관객들도 영화사 대표의 반응이 궁금할까?


흥행예상

기대 > 우려


다른 건 모르겠고 영화감독인 남편의 시나리오를 읽은 영화사 대표의 반응이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답은 언제쯤이나 줄 것인지, 과연 영화감독인 남편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인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긴 하는데 약속한 날짜에 입금이 안 되는 건 아닌지, 죽도 밥도 안 되고 시나리오 회의만 죽도록 하고 아무런 성과없이 흐지부지 끝날 것인지, 연락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기가 준 시나리오를 그대로 표절한 영화의 제작발표회 기사를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닌지 등이 궁금하다. 그런데 일반 관객들도 이런 걸 궁금해할까? 음... 궁금해할 것 같다. 기대된다.

관련기사 : 박근형 연출의 신작 '너무 놀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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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일이다. 어느 잘 나가는 영화사의 못 나가는 피디 한 명이 어떤 무명 작가의 시나리오를 라면 받침으로 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같은 영화인으로서 어떻게 저런 몰상식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나리오를 라면 받침으로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방금 전에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였는데 이상하게도 라면 받침으로 쓸만한 뭔가가 안 보이길래 너무도 급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무심코 아무개 작가님의 시나리오를 라면 받침으로 써 버리고 말았다. 라면을 다 먹은 후 시나리오 맨 뒤에 도장처럼 찍혀있는 라면 국물 자국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아무개 작가님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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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지금 한참 촬영 준비 중인 작품의 시나리오를 읽어봐야겠다며 구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마침 그 작품의 제작팀에서 일하고 있다는 후배 한 명이 생각나서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냉큼 구해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같이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밥 한 번 사준 적 없는 후배라서 갑자기 친한 척 하기가 조금 민망했지만 억지로 친한 척하며 니네 영화 시나리오 좀 보여달라고 조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나한테 밥 한번 얻어먹은 적 없는 후배는 나한테 밥 한번 얻어먹은 적이 없기 때문인지 자기네 영화사 윗사람이 시나리오 외부 유출에 민감하다며 절대 못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 바닥에서 하루 이틀 일 한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그러냐고;; 지금 캐스팅 끝났고 촬영 준비 중이면 어지간한 현장 스텝들, 배우들, 매니저들, 투자사들, 시나리오 모니터 알바생들은 그 시나리오를 다 읽어봤을 것이고 그렇다면 외부로 유출될 만큼 유출됐다는 얘긴데 나 하나 쯤 더 읽어본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니니까 시나리오 좀 보여 달라고 다시 한번 간곡하게 억지로 웃으며 부탁을 해보았다.


후배는 아무리 시나리오가 외부로 유출 될 만큼 됐다고 하더라도 양심상(?) 자기 손으로는 유출하기 싫다며 절대로 못 보여주겠다고 꿋꿋하게 버텼다. 나는 시나리오 한 편 보여주는데 무슨 양심까지 들먹이냐며 그렇다면 도대체 니가 나에게 원하는게 뭐냐고 물어보았고 후배는 나한테 원하는 거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너도 읽어보고 싶은 시나리오가 있을 거 아니냐며 혹시 니가 읽어보고 싶은 최신 시나리오 중에 내가 갖고 있는 최신 시나리오가 있으면 보여주겠다고 제안하며 내가 갖고 있는 최신 시나리오 몇 편의 제목을 대며 거래를 시도해봤지만 후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시나리오를 몰래 외부로 유출하면서까지 읽고 싶은 시나리오는 없다는 것이다.


후배가 바쁘다고 끊으려고 하길래 선배가 이렇게 저자세로 부탁하는데도 못 보여주겠냐며 학연을 들먹이려고 하는 찰나 전화는 끊어졌다. 다시 전화해서 학연을 들먹여보려다가 그래봤자 험한 꼴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것 같아 깔끔하게 포기하고 그 후배와 친한 아무개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보통 아무리 외부 유출이 금지된 시나리오라도 자기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몇 명에게는 너만 보라고 신신당부 하면서 보여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입수한 사람들은 또 자기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꼭 너만 봐야된다며 보여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아무리 외부 유출이 금지된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몇 다리만 건너면 볼 수 있게 된다.


다행히 후배와 친한 아무개는 그 시나리오를 파일로 갖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나만 볼테니까 제발 좀 보여달라고 애걸복걸을 했고 아무개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흔쾌히 시나리오 파일을 이메일로 전송해주었다. 후배에게 괄시받고 서럽던 마음이 아무개 덕분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나중에 아무개에게는 반드시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도대체 아무리 외부 유출이 금지된 시나리오라도 몇 다리만 건너면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손으로는 유출하기 싫다며 양심까지 들먹이는 심리는 뭘까? 그냥 내가 우스운걸까? 아님 하찮아보였나?

서럽게 구한 시나리오여서 그런지 시나리오 작가 카페 같은 곳에 올려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Posted by 애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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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하이힐을 신은 남자>라는 책을 처음 읽고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와 거침없는 전개에 감동받아 심산이라는 작가에 주목하게 됐다. 조만간 뜰 것 같다고 예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년 후엔 허영만의 <비트>로 심산이라는 이름을 충무로에 떨쳤고 <태양은 없다>로 충무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자리에 올랐다. 그 때쯤엔 완전히 심산 작가의 팬이 되서 빨리 다음 작품을 써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턴 작품이 아니라 한겨레 문화센터의 시나리오 강사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굿 초이스였다. 아무리 걸출한 시나리오 작가라도 김수현 작가가 아니고서는 시나리오만 써서 잘 먹고 잘 살기는 힘들다. 그러나 시나리오 학원을 차린다면? 유명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경력이 있으니 적당한 강의 센스와 인간적인 매력만 겸비하고 있다면 마르지 않는 샘물을 발견한 셈이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연출학원을 차린다면 대박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심산스쿨은 이미 성업중이다.


185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황금을 캐려고 모여든 서부의 사나이들에게 청바지를 만들어 팔아서 리바이스를 차린 레비 스트로스처럼 영화판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해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모여드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에게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친다면 심산 스쿨이 바로 리바이스다. 물론 시장규모가 다르니 리바이스만큼의 매출은 어렵겠지만 수강생들이 시나리오 워크샵을 통해 완성한 시나리오들을 영화사에 연결시켜주는 시나리오 작가 에이전시로서의 입지만 굳건히 다진다면 어지간한 메이저 영화사 부럽지 않을 정도로 번창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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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저 영화사 + 대박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호환마마, 전쟁 등의 재앙만 없다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2. 메이저 영화사 +대박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기획팀에서 시나리오의 문제점을 지적하겠지만 아무런 상관없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3. 메이저 영화사 + 보통 감독 +재미있는 시나리오

감독 교체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무난하게 크랭크인 할 수 있다.


4. 메이저 영화사 + 보통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영화사 대표가 밀어붙인다면 기획팀의 구박을 받으며 크랭크인 할 수 있다.


5. 메이저 영화사 + 신인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영화사 대표가 밀어붙여야만 기획팀도 수긍하는 분위기 속에서 크랭크인 할 수 있다.


6. 메이저 영화사 + 신인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신인감독에게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고쳐오라는 숙제를 내주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감독은 대표 얼굴도 못보고 주로 기획팀 막내와 커뮤니케이션한다.


7. 마이너 영화사 + 대박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영화사 대표가 양아치만 아니라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마이너 영화사에는 기획팀이 없는 경우가 많다.


8. 마이너 영화사 + 대박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영화사 대표가 정상인이고 감독에게 시나리오 수정 의지만 있다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기획팀이 있다면 반대 의견을 내겠지만 대박작품 감독님 앞에서는 아무 소리 못한다.


9. 마이너 영화사 + 보통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메이저 영화사와 공동제작을 시도하면 조금 더 빨리 크랭크인 할 수 있다.


10. 마이너 영화사 + 보통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고쳐달라고 부탁하고 사무실을 빌려준다.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전략적으로 기획팀과 친해지는 감독도 있다.


11. 마이너 영화사 + 신인 감독 + 재미있는 시나리오

시나리오의 컨셉을 도용당할 가능성이 조금 있다.
표절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영화사 대표와 신인감독이 법정에서 만날 수도 있지만
보통은 신인 감독이 그냥 참고 넘어간다.


12. 마이너 영화사 + 신인 감독 + 재미없는 시나리오

장동건을 캐스팅하거나 영화진흥위원회가 도와준다면 크랭크인 할 수 있다.



메이저 영화사는 대기업들과 친하거나 따로 믿는 구석이 있는 영화사입니다.

마이너 영화사는 메이저 영화사가 아니거나 신생 영화사 입니다.


대박 감독은 대박 작품을 연출한지 몇 년 지나지 않은 감독입니다.

보통 감독은 대박 작품 연출 경력이 없는 기성 감독입니다.


재미있는 시나리오는 읽고 나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나리오 입니다.

재미없는 시나리오는 중도 포기했거나 회의를 위해 억지로 읽은 시나리오입니다.


스타 배우 캐스팅은 크랭크인을 뜻하므로 고려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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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몇 년전에 친구와 공동집필했다가 아무 소득없이 곱게 하드에 저장해둔 시나리오 한편을 현재 잘나가는 영화사 직원인 후배에게 보여주었다. 시대가 변했으니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보는 눈도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메신저로 시나리오를 보내고 얼마 뒤 후배가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이 시나리오 누가 쓴거예요?>


시나리오에 내 이름이 적혀 있으면 정정당당한 모니터에 방해가 될까봐 시나리오를 보내기 전에 작가 이름을 다 지웠는데 다짜고짜 누가 썼는지부터 물어보다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 메신저를 오래 하다 보면 글자만 봐도 대충은 글쓴이의 심정을 느낄 수가 있다.


대충 그냥 아는 작가가 쓴건데 입봉도 못한 무명이어서 이름은 말해줘도 모를거라고 하자 그럴줄 알았다고 살다 살다 이렇게 여성비하적인 유머로 점철된 기분 나쁘고 더티한 시나리오는 처음 읽어본다고 불쾌해했다. 자기가 여자여서가 아니라 정말 심하게 짜증나고 시나리오 읽느라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고 억울해했다. 이거 읽느라 칼퇴근도 못했으니 나중에 저녁 한번 사내라고 길길이 날뛰었고 만약 자기네 영화사에 이런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아무도 안 보여주고 바로 이면지로 재활용하고 싶은 수준이라고 총평했다.


그나마 오빠가 보여주는 거니까 끝까지 읽었지 처음 세장 읽고부터는 정말 읽기 싫었다며 왜 이 작품이 쓰레기인지 조목조목 꼬치꼬치 따져가며 가슴을 후벼팠다. 나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다 전생의 업보라고 생각하고 글쓴이가 나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후배의 혹평을 가슴에 하나하나 새겨두었다. 사실 몇 년 전에 시나리오를 돌릴 때도 다 한번씩 들었던 말이라서 새삼 충격적일건 없지만 세월이 흘르고 세상이 변했지만 사람들이 나와 친구의 시나리오를 보는 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후배의 모니터를 듣는 내 반응이 평소와는 달랐는지 후배는 혹시 이 작품 오빠랑 관계된 작품 아니냐고 물어왔는데 나는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정정당당한 모니터를 듣고 싶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했고 후배도 나랑 관계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거 같아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가 몇 년 전에 친구와 함께 공동으로 쓴 작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후배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가 예전에 그 시나리오 비슷한 내용의 시나리오를 친구와 쓰고 있다고 얘기해 준 기억이 나서 중간 부분을 읽을 때쯤 이 시나리오가 나랑 관계있는 시나리오라는 걸 눈치는 챘는데 직접 쓰기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고 놀라는 척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 같아 나는 시나리오의 줄거리 정도만 구상했고 실제 집필은 거의 내 친구가 했다고 얘기해주었다. 후배는 그제서야 그럴 줄 알았다고 오빠는 이런 시나리오 쓸 사람이 아니라며 이제 그만 퇴근한다고 로그아웃해버렸다.


친구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팔아버리고 나니 조금 찝찝했다.


이제 강해져야할 때다.

Posted by 애드맨

눈을 뜨자마자 극장에 가서 조조로 한국 영화 한편을 보고 왔다. 왠만한 한국 영화는 시사회로 보는데 요즘엔 개봉하는 한국 영화 수가 너무 많아 시사회로 다 커버를 못 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보고 싶은 영화만 보고 살았는데 영화사 입사 이후엔 대표와의 대화 중 특정 영화 얘기가 나올 때 그 영화 아직 안봤다고 하면 기획하는 사람이 어떻게 개봉 영화를 안 볼 수가 있냐며 화를 내기 때문에 다 챙겨본다.


영화에 대한 꿈만 있던 시절에는 극장에서 바보같은 영화를 보게 되면 극장을 나오면서부터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인터넷 게시판에까지 악평을 남기고 퍼 나르고 했는데 요즘엔 저런 영화라도 만들어서 극장에 걸어봤으면 하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리 바보같은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도 알고보면 대부분 좋은 학교 나오고 똑똑하고 말도 잘하며 처세에도 능한 사람들이다. 제작사나 투자사에 그런 사람 한둘씩은 꼭 섞여 있다. 영화계에 학벌 인플레 현상이 생긴지는 제법 오래 되서 메이저 투자 제작 배급사에 가면 명문대는 기본이고 유학파도 그냥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다.


그렇다면 왜 그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같은 영화를 만들었는지가 궁금해지는데 그건 집단 지성의 부작용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집단 지성은 그냥 웃자고 한 소리고;; 보통은 그냥 재수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이 모든 건 재수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떤 영화가 바보같은 영화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은 물론 흥행 성적이다. 정성일, 유지나 등이 활약하던 동숭아트센터에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2만 들던 시절에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예술성이라는게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런 소리 하면 아무도 안 놀아준다. 특히 요즘 같이 수익률을 따지는 시대에 상업 영화가 예술 영화나 작가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건 사실 굴욕이나 다름없다. 알고 보면 독립, 예술, 작가주의 영화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생계형 영화인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는 회사에서 못 읽고 집으로 가져온 시나리오 몇 편을 읽었다. 작가 혼자 집에서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있고 영화사에서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진행하고 있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도 역시 운이다. 수백편(?)의 시나리오 중 영화로 만들어지는건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법대로 잘 썼다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못 썼다고 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좋다고 평가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고 평가한 시나리오라고 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모두가 쓰레기라고 평가한 시나리오도 유력인사 한 명이 좋다고 하면 영화로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유력인사 한 명이 좋게 보면 쓰레기라고 평가했던 사람들도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보며 마음을 바꾸는 일도 흔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평가할 때는 언제나 다른 이들의 눈치를 슬쩍 보게 된다. 특히나 투자 검토 차원에서 회사로 들어온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대표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높게 평가한 시나리오를 대표가 낮게 평가하는 일이 반복되면 나라는 인간 자체도 저평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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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서울특별시 공무원 임용시험 합격률>

- 1732명 채용에 총 144,445명 응시 경쟁률 83.4:1 / 합격률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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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마켓 시나리오 매매 확률>

- 2007년   총 530편  中  6편 매매완료 / 매매 확률 1.13%

- 2006년     총 1116편 中 33편 매매완료 / 매매 확률 2.95%

- 2005년     총  323편  中 16편 매매완료 / 매매 확률 4.95%

3년간 총 1969편 中 55편 매매완료 / 매매확률 2.79%


2007년 서울시 공무원 임용시험 경쟁률 83.4:1 합격 확률 1.19%

2007년 시나리오 작가 시나리오 매매률 88.3:1 매매 확률 1.13%

한국영화 시나리오 마켓이란?

http://www.scenariomarket.or.kr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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