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누구나 자기가 생각한 걸 쓰기 시작한다. 자기가 재밌다고 느꼈으니 남도 그럴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집필에 들어가 하루 이틀 만에 초고 아니 완고를 완성하고 지인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상처를 받는다. 자기가 재밌다고 느꼈다고 남도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고 간혹 영원히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순순히 인정하고 첫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 다음번엔 뭔가 다르리라 생각하고 새로 써 본다. 그리고 또 상처를 받는다. 그냥 새로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그냥 새로 쓰는 정도로는 안 된다. 환골탈태해야한다. 암튼 이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하고 나면 더 이상 자기가 생각한 걸 쓰고 싶지 않아진다. 더 이상은 삽질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린다. 그렇게 삽질조차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누군가에게 의뢰(?)가 온다. 예전에 니가 쓴 걸 재밌게 봤는데 그거 말고 내가 생각하는 걸 써보지 않겠냐는.

솔깃하다. 남이 생각한 건 뭔가 다를 것 같다. 일단은 들어본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남의 생각이라고 그렇게까지 월등하게 재밌진 않다는 걸. 당연하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의 생각이라도 처음 몇 마디만 들었을 땐 다 고만고만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의 생각이니 뭔가 있겠거니 하고 순순히 시키는 대로 써 본다. 아 처음부터 그러진 않는다. 자기 생각엔 그렇게 말고 이렇게 쓰는 게 더 재밌을 것 같기 때문에 나름 소신껏 의견을 이야기해본다. 그렇게 말고 이렇게 써 보자고. 그러나 씨도 안 먹힌다.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면 회의가 시작된다. 그러나 무의미하다. 어차피 정답은 없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아무리 고민 해봐도 답은 하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나는 이렇게만 쓰고 싶고 그렇게는 쓰기 싫으면 관두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둘 순 없다. 더 이상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걸 쓸 엄두는 나질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꾸역꾸역 쓴다.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걸 써도 잘 안 써지는데 남만 재밌다고 생각한 걸 쓰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어지간한 프로페셔널이 아닌 이상 결과도 뻔하다.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걸 써도 남들이 재밌게 봐줄까 말깐데 남만 재밌다고 생각한 걸 억지로 썼는데 재밌을 리가 없다. 대개는 이쯤에서 프로젝트에서 아웃되거나 이 과정을 두어 번 더 똥개훈련하듯 반복하고 아웃된다. 끝까지 잘 풀리는 경우는 극히 희박하고 뒤끝도 안 좋다.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걸 써도 안 되고 남이 재밌다고 생각한 걸 써도 안 된다. 이젠 뭘 어째야 할까? 이쯤에서 아예 뭔가를 쓰는 걸 관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두지 못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쓰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거나 운명이거나.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걸 써도 안 됐고 남이 재밌다고 생각한 걸 써도 안 됐는데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뭔가를 계속 쓰고 싶다면 그냥 내가 재밌다고 생각한 걸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일의 특성상 내가 해도 삽질, 남이 해도 삽질일 가능성이 큰데 어차피 할 삽질이라면 남 때문에 한 삽질이 훨씬 더 억울하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자기가 재밌다고 생각한 걸 쓰기를 멈추지 마라. 그래야 계속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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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는 상대적으로 쉽고 만만한 감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모르는 사람을 웃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보면 패러디는 확실히 매우 효과적이고 강력한 유머 수단이다. 가장 인기있는 개인기인 성대 묘사도 패러디인 셈이고 방송용 개그의 팔할 이상이 패러디인 것만 봐도 그렇다. 정말 쉽다. 못 믿겠음 진지한 영화 속 대사 아무 거나 골라 전혀 맥락이 다른 상황에 갖다 써 보면 알 것이다. 어지간하면 웃긴다. 빵 터지는 웃음까진 아니더라도 썩소는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유명한 광고, 드라마, 영화의 대사나 인터넷 유행어들을 시나리오에서 종종 접하게 된다. 물론 기성 작가들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주로 작가 지망생들의 시나리오에서 접한다는 얘기다. 기성 작가들의 시나리오에선 접하기 어렵지만 작가 지망생들의 시나리오에선 종종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 봐도 패러디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감이 왔을 것이다. 그렇다. 하지 마라.

그렇다면 패러디 영화는 어떨까? 대표적으로 ‘총알 탄 사나이’, ‘무서운 영화’ 시리즈가 있고 헐리우드에선 최근까지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만큼 많은 수의 패러디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아마 헐리우드에선 정말 흔한데 한국에선 드문 대표적인 장르가 패러디 영화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패러디 영화에 비하면 동물 영화는 메이저 장르다. 사실 한국에서도 한 번 시도했었고 흥행 성적도 나쁘진 않았던 만큼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된 것 같은 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하지 마라. 만약 이번 주까지 시나리오 다 써서 넘기고 다음 주에 캐스팅, 투자 끝내고 다음 달에 촬영 끝내고 다다음달에 극장에 걸 수 있다면 또 모를까 패러디는 하지 마라.

시나리오라는 게 이번 주에 다 써서 넘기면 다다음 달에 극장에 걸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 1년에서 최장 10년까진 생각해야 되는데 만약 시나리오에 오래된 유행어를 패러디한 대사 따위가 있다면 웃기지 않은 건 물론이고 오래된 유행어만큼이나 오래된 시나리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래된 시나리오는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래된 시나리오는 다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소중한 시간 낭비하기 싫은 거다. 이 놈 저 놈한테 다 거절당하고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광고하는 셈이나 마찬가지고 그 상황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영화 속에서 패러디 된 영화들이 오래된 영화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패러디 했을 당시엔 그렇게까지 오래된 영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 빠르다. 최신 영화가 옛날 영화 되는 거 금방이다.

현실적으로 패러디할 만한 영화도 마땅찮다. 패러디를 하려면 관객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대박 영화를 해야 되는데 한국은 대박 영화가 보통 일 년에 5~6편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보통 패러디 영화엔 패러디 대상 영화들이 최소 10편은 필요한데 당장 10편만 패러디하려해도 3~4년 전 영화들로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근데 이게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나 3~4년 전 영화지 시나리오가 돌고 돌다보면 7~8년 전 영화가 되기 십상이다. 한국 사회가 워낙에 역동적이라 3~8년 전 영화는 인지도가 낮아져 패러디 대상에 부적합해진다. 무엇보다 한국은 패러디 영화 시장 자체가 작다. 아니 없다고 봐야한다. 명분없는 비꼼이나 조롱은 한국 관객들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주까지 시나리오 다 써서 넘기고 다음 주에 캐스팅, 투자 끝내고 다음 달에 촬영 끝내고 다다음달에 극장에 걸 수 있어도 패러디는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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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이 안 풀려서 불안 초조할 때마다 시나리오 작법 책을 읽는 버릇이 있었다. 시나리오 작법 책이란게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서 “다 필요없고 그냥 내가 잘 쓰는 게 빠르겠다”란 생각으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읽고 있다 보면 시나리오 뿐만 아니라 영화와 관련된 모든 일들이 다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한국에 출간된 거의 모든 시나리오 작법 책을 빌려 읽은 것도 아니고 대부분 사서 읽게 되었는데;; 언젠가부턴 내 책장의 시나리오 작법 섹션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이게 어쩌면 자기계발서 읽는 심리랑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계발서 읽는다고 자기계발이 잘 되는 게 아닌데도 계속 읽게 되는 것처럼 시나리오 작법 책 읽는다고 시나리오가 잘 써지는 게 아닌데도 계속 읽게 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가 몇 권 읽고 나면 다 비슷비슷한 것처럼 시나리오 작법 책도 몇 권 읽고 나면 다 비슷비슷한 것까지도 비슷하다. 물론 시나리오 작법이 다 비슷비슷한 건 아니다. 법을 영미법과 대륙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시나리오 작법 책도 크게 보면 사례 중심과 이론 중심으로 나눌 수 있고 최근의 경향은 이론보다는 사례 위주인 듯하다. 언뜻 생각하면 사례보다는 이론 중심의 시나리오 작법이 더 효율적일 것 같지만 내가 볼 땐 이론보다는 사례 중심이 나은 것 같다. 왜냐하면.. 아 근데 지금 이 글에선 이론이냐 사례냐가 중요한 건 아니고 여러모로 시나리오 작법 책은 자기계발서랑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게 중요하다.

몰라서 못 쓰는 게 아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는 하지만 열심히 읽는다고 뭔 특별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 누가 모르나? 초반 10분 안에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하고 주인공의 갈등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는 걸 누가 모르나? 그저 고달프고 갑갑한 현실에 잠깐의 도피와 위안이 될 뿐이다. 심지어 어지간한 작법 책을 다 읽고 난 후 작법 공부만으론 뭔가 모자란 느낌에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101가지 습관’까지 읽어도 별반 달라지는 건 없다. 유명한 헐리우드 작가들도 우리랑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연대감을 느끼는 건 잠시고 책장을 덮고나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될 뿐이다.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에겐 대박이 있지만 한국 시나리오 작가들에겐 대박이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법 책이 시나리오 창작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나리오를 의식하고 쓰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다리가 많은데 서로 안 엉키고 잘 걷네”라는 칭찬을 듣고 갑자기 걷는 걸 의식하다가 다리가 얽혀서 시궁창에 빠졌다는 지네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는 오쿠다 히데오도 ‘공중그네’에서 주요 소재로 삼은 바 있다. “제구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 3루수는 제대로 된 송구를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님들도 시나리오 작법 책은 몇 권 안 읽었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유명 시나리오 학원 선생님들이나 영화과 교수님들도 인터넷에서 필모그래피를 검색해보면 정작 자기 시나리오는 못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 선생님은 이를 두고 학생들에게 기를 빨리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엔 시나리오를 가르치다보면 시나리오를 쓰는 행위를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기 때문인 듯하다. 암튼 시나리오 작법 책은 두 권 이상 읽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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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Posted by 애드맨

시나리오만 열심히 쓰는 작가가 있고 시나리오도 열심히 쓰는 작가가 있다. 나중에 누가 더 잘 살까? 당연히 시나리오도 열심히 쓰는 작가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론적으로 작가는 시나리오만 열심히 쓰는 게 맞다. 작가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는 시나리오만 잘 쓰면 해결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시나리오만 열심히 쓴다”는 마인드라면 하루 빨리 “시나리오도 열심히 쓴다”는 마인드로 바꾸는 게 좋다. 다들 그러고 살기 때문에 아니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배우가 연기만 하나? 감독이 연출만 하나? 아니다.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는 거다. 오리가 유유히 호수를 떠다니기 위해선 수면 아래로는 맹렬히 쉬지 않고 발길질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기나 연출 이외의 것들이 정확히 뭔지 딱 꼬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대충 비즈니스라고 통틀어 부르면 맞을 것 같다.

작가도 그래야 산다. 시나리오는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례로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흔히 갖고 있는 마인드 중의 하나가 “나는 시나리오로 승부할 거니까 옷엔 신경끄고 시나리오만 열심히 쓰겠다”인데 그러면 안 된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야하는 시나리오 작가의 특성상 겉만 번지르르해 보이길 원치 않는 심정은 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옷만 잘 입고 시나리오는 대충 쓰라는 게 아니다. 옷도 잘 입고 시나리오도 열심히 쓰라는 얘기다. 적어도 옷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정도로는 입지 말라는 얘기다. 최소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처럼은 보여야 한다. 시나리오라는 게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똑같은 얘길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잘 차려입고 있는 작가의 말이 더 그럴 듯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옷은 기본일 뿐이고 특히나 공동 작업일 경우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사람은 둘만 모여도 서열을 정하고 권력 다툼을 하면서 이런 저런 문제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회의를 하다보면 누군 이게 더 재밌다고 주장하고 누군 저게 더 재밌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반드시 생기는데 이건 시나리오만 열심히 쓴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글구 이건 좀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대학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는 시나리오 작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정한 시나리오 작가라면 대학원에 다닐 시간에 시나리오에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짧았다. 내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시나리오만 쓰는 것도 아니므로 할 수만 있다면 대학원에 다니며 시나리오도 열심히 쓰는 게 맞다. 대학원에 가서 시나리오 작법을 배우라는 게 아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열심히 살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귀인이 나타나 교수 자리를 제안할 수도 있는데 학위가 있는데 안 하는 거랑 학위가 없어서 못 하는 거랑은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시나리오 작가를 나이 들어서까지 하기가 쉽지 않고 교수보다 확실한 노후대비책도 없는데 학위가 없어서 못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나는 누군가를 가르칠 자신이 없고 그런 건 적성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얼른 생각을 바꿔라. 인생은 그런 게 아니다. 길게 봐야 한다. 교수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비겁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시나리오만 열심히 쓰다가는 재주만 부리는 곰이 되기 십상이다. 시나리오만 열심히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시나리오만 열심히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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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원룸 동거는 절대로 하지 마라. 아직 젊고 혈기 왕성한 작가 지망생이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다 보면 외로울 때가 많다. 그러다보면 누군가와 만나 연애를 하게 되고 연애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거를 하게 되는 수가 있다. 처음엔 좋다. 같이 장도 보고 같이 TV도 보고 같이 술도 마시고 같이 샤워도 하고 같이 잠도 자고 등등. 애인이 동종업계 종사자라면 같이 일 얘기도 하고 힘들 땐 의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글쓰기엔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글쓰기는 애인과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혹 애인이 잘 나가는 작가여서 글쓰기를 도와주거나 대신 써주거나 심지어는 데뷔시켜주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는데 워낙 희귀한 경우니 예외로 하자.)

카페 같은 곳에 나가서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한 카페에 너무 오래 있으면 눈치가 보이고 이 카페 저 카페 전전하다보면 본인이 지친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누가 노트북을 가져가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지겹다. 게다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금전적으로도 넉넉할 리 없다. 집 나가면 다 돈이다. 잘 나가는 작가가 돼서 작업실이 생기기 전까진 좋든 싫든 집이 곧 작업실이어야 한다. 그런데 작업실에 애인이 살고 있으면 글이 써지겠는가 안 써지겠는가.

집필에 집중하다보면 예민해질 때가 많은데 그럴 때 누가 옆에서 핸드폰으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거나 TV를 틀어놓거나 컴퓨터를 하며 키보드랑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있거나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뭔가를 꺼내 먹고 있거나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물소리를 내고 있거나 감기에 걸려서 잔기침을 하거나 혼자 놀기 심심하다며 말을 걸어오면 집중력이 흩으러지기 마련이다. 조금만 더 집중하면 걸작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가 옆에서 자꾸 방해를 하면 짜증이 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조용히 좀 해달라 그랬는데 조용히 해주긴 커녕 자길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느니 변했다느니 그러면서 싸움을 걸어오면 글이 써지겠는가 안 써지겠는가. 아마 김수현 작가님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한 줄도 못 쓸 것이다. 뭐 진짜 진짜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 작가라면 몇 줄 정도는 쓸 수 있겠지만 아직은 미숙한 작가 지망생이라면 영영 글을 못 쓰게 되는 수가 있다.

특히나 애인이 동종업계에 종사하고 있거나 그럴 예정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뭣 좀 쓸테니까 조용히 좀 해 달라 그러면 도대체 뭐 대단한 거 쓰는데 그러냐며 한 번 보자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템 이야길 해줬다간 그 딴 거 때려치우고 좀 제대로 된 걸 써 보란 얘길 듣기 십상이다. 안 그래도 이 아이템이 될까 말까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나름 동종업계 종사자에게 그 딴 거 때려치란 얘길 들으면 창작 의욕이 말끔하게 사라져버린다. 여기서 그 아이템이 진짜로 때려치워야 할 정도로 허접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애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기도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편히 좀 쉬려는데 조용히 하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짜증이 나는 거다. 이건 애인 잘못이 아니다. 동거 초기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주고 존중해줄 수 있지만 동거 기간이 길어지다보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설상가상으로 동거가 길어지다보면 결혼에 대한 압박도 심해진다. 연애 초기에 분명히 “데뷔한 다음에 결혼하자”고 약속했더라도 소용없다. 원래 남녀사이에 약속은 무의미한 것이다. 글 쓰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결혼 문제로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결혼을 하게 될 수 있다. 근데 결혼으로 결혼에 대한 압박감을 없애면 글이 더 잘 써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미혼으로 원룸에서 혼자 살 때보다 글이 더 잘 써질까? 그렇다고 글 쓰는데 방해된다고 헤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헤어진다고 바로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니다. 정이 뗀다고 금방 떼지는 것도 아니고 이별의 상처 극복한다고 또 한 세월 보내야 한다. 애써 극복하고 좀 써보려는데 결혼 소식이라도 들려왔다간 또 한세월이다. 이래 저래 고민은 많아지고 스트레스만 쌓이다가 결국 글은 영영 못 쓰게 된다. 동거는 하지 마라. 특히나 원룸 동거는 절대로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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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의 로맨틱 코미디가 있다. 남자 주인공이 부자인 로맨틱 코미디와 남자 주인공이 부자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 둘 다 쓰지 마라.

일단 남자 주인공이 부자인 로맨틱 코미디는 TV 드라마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뻥 안 치고 한국 드라마의 거의 전부가 남자 주인공이 부자인 로맨틱 코미디다. 남자 주인공이 부자인 로맨틱 코미디라면 TV에서도 1년 365일 무료로 볼 수 있는데 굳이 극장에서까지 유료로 볼 이유가 없고 드라마 쪽에는 A급 로맨틱 코미디 작가들이 즐비하므로 더 잘 쓰기도 어렵다. 잘 써도 소용없다. 실제로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 김은숙 작가가 쓴 남자 주인공이 부자인 로맨틱 코미디도 흥행은 안 됐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이 부자인 로맨틱 코미디는 말이 되기도 어렵다. 돈 많고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젊고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이 돈 없고 집안 안 좋고 학벌 안 좋고 젊지 않고 예쁘지도 않은 여자 주인공을 사랑한다는 게 말이 될까? 그런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는 까칠하지만 자기 여자에게만 다정할 수 있을까? 평생 자신을 괴롭혀오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 덕분에 극복할 수 있을까? 그 여자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동시에 가능할 수 있을까? 없다. 이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팬이 아니라면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남자 관객들은 보지 말라는 이야기이기도하다.

그렇다면 남자 주인공이 부자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는 왜 안 될까? 한국이 아직은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한국은 ‘여자가 살기 좋은 나라 80위’라고 한다(엄마가 살기 좋은 나라 순위는 48위다. 이게 무슨 뜻일까?). 로맨틱 코미디는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찾든 자아를 찾든 행복해지면서 끝나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여자 주인공이 ‘여자가 살기 좋은 나라 80위’ 나라에 살고 있다면 혼자만의 힘으로 행복해지기는 쉽지 않다고 봐야한다. 게다가 한국은 20대 여성의 자살율이 남성의 자살율보다 높은데 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은 여자가 혼자만의 힘으로 살기 힘든 나라고 이런 나라일수록 남자 주인공이 부자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최근 개봉한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이었고 미국 흥행에도 성공했으나 한국 흥행은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 주인공이 부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신분이동이 어렵고 정규직 취업은 하늘에 별 따기고 자영업 3년내 생존률은 50%도 안 되고 사회 안전망이 취약한 나라에서 ‘남자 주인공이 부자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대박이 나려면 “부자가 아닌 남자와 결혼한 여자도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영화 속에 있어야 한다. IMF같은 게 또 터지고 직장에서 짤리고 늙고 병들어서 하류층으로 전락해도 진정한 사랑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관객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웰메이드 로맨틱 코미디도 300만 넘는 대박은 어렵다고 봐야한다. 남자 주인공이 부자가 아니라면 두 사람의 사랑이 아무리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어도 은연 중에 과연 두 사람이 장기적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남자 주인공이 부자가 아닌 드라마는 흔치도 않을 뿐더러 시청률도 안 나온다. ‘줌마렐라’가 괜히 한국 드라마를 이끄는 키워드가 된 게 아니다.

남자 주인공이 부자인 로맨틱 코미디만 잘 된다는 건 생각해보면 굉장히 슬픈 이야기다. 한국 사회가 그만큼 살기가 팍팍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부디 한국이 하루빨리 선진국으로 도약해서 남자 주인공이 부자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도 300만 넘는 대박이 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전까지는 왠만하면 로맨틱 코미디는 쓰지마라. 그래도 정 로맨틱 코미디를 쓰고 싶으면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써라. A급 작가가 될 수만 있다면 대우는 말할 것도 없고 페이도 어마어마하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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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말은 쉽다. 돈 안주면 안 쓰면 된다. 상식적으로도 그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특히나 영화를 정말 하고 싶어서 수년째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해왔지만 매번 떨어지기만 해서 더 이상 당선될 자신은 없고 영화사에 직접 시나리오를 보내도 봤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질 않고 딱히 알고 지내는 영화인도 없고 믿을 만한 구석도 없는 작가 지망생에겐 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솔직히 아직도 돈도 안주고 한 번 써와보라고 시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진 않는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런 사례들이 직간접적으로 들려오는 게 참 신기할 뿐이다.

넋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웹서핑이나 하고 있는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온다. 누군가의 소개 또는 우연히 작가님의 시나리오를 읽고 같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다고 한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하는 사람이라니까 약속을 잡고 만나보기로 한다. 이런 전화 받으면 진짜 행복하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순간이 왔구나 싶다. 그런데 세상 물정을 조금 아는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 사람이 돈 안주고 한번 써와보라고 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워낙에 그런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전화를 걸어 혹시 돈 안 주고 한 번 써와보라고 할 거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점심 약속은 아니다. 2시 쯤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기는 아직 점심 한 끼 사 줄 가치도 없다는 의미여서 씁쓸하지만 초면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 커피 전문점에서 만나는 게 어디냐 싶다. 어쨌든 만났다. 다행히 커피는 얻어마셨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들어보니 좀 오래 되긴 했지만 그 때 그 대박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옳거니! 그런 대박 작품에 참여했을 정도면 분명 나 하나 쯤은 작가로 데뷔시켜 줄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요즘 자기가 진행 중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 얘기를 해준다. 우와 이런 대단한 사람이 자기같은 하찮은 작가 지망생에게 연락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간다. 자기가 따로 준비 중인 아이템 얘기를 해 주며 한 번 써 볼 생각이 없냐고 넌지시 떠본다. 써 볼 생각이야 물론 있다. 그래서 있다고 한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며 그럼 언제까지 한 번 써와보라며 데드라인도 정해준다. 열심히 하겠다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대답한다. 돈 얘기가 궁금하지만 괜히 돈 얘기 꺼냈다가는 분위기가 싸해질 것 같아 조심스럽다. 알아서 돈 얘기 해 주길 기다리다 자리는 마무리 지어지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시계를 보니 딱 저녁 먹기 전이다. 자기는 아직 저녁 한 끼 사 줄 가치도 없다는 의미여서 다시 한 번 좀 씁쓸해진다.

집으로 오는 길에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말로만 들어오던 “한 번 써와봐라” 사례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다. 동료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서라도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다. 어쩌면 잘 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동료 작가 지망생들 걱정 할 때가 아니고 시나리오야 어차피 혼자서 돈 안 받고도 수십편 넘게 써왔는데 한 편 쯤 더 쓴다고 키보드가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은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서 영화하긴 싫다. 영화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려 회의라는 걸 해 보고 싶고 영화사 구경도 해 보고 싶다. 그동안 혼자서 영화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모른다. 눈 딱 감고 딱 한 번만 써 보기로 한다.

더 이상 긴 말 안 하겠다. 쓰지 마라. 그런 사람하고는 놀지도 마라. 아예 전화도 받지 마라. 괜히 전화 안 받았다가 나중에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한 번 써와보라고 시키는 사람 중엔 누군가에게 업무상 불이익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돈도 안 주면서 한 번 써와보라고 시키는 사람하고는 어차피 뭘 해도 안 된다. 내 말 못 믿겠으면 한 번 다 썼다고 연락해봐라. 십중팔구는 지난 번 만났던 커피 전문점에서 2시 쯤에 만나자고 할 거다. 아무리 열심히 써 가도 그 시나리오로 투자를 받기 전에는 밥 한 끼 제대로 얻어먹기도 힘들 거다. 정 외롭고 힘들면 트위터해라. 트위터하는 작가님들 팔로우하면 알게 되겠지만 대단한 영화 몇 편씩 한 작가님들도 골방에 틀어박혀 외롭고 힘든 건 마찬가지다. 원래 다 그런 거다. 돈 안주면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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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동안 안 풀리다 보면 한국영화를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여기서 ‘오랜 시간’이라함은 1~2년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1~2년 정도 안 풀리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가서 1~2년 정도 안 풀렸는데 오랜 시간 동안 안 풀린다고 말하지 마라. 10년 넘게 안 풀리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10년 정도는 안 풀려봐야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는데도 안 풀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2년 정도는 그냥 습작 기간이라고 봐야 한다. 암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안 풀렸는데도 한국영화를 멀리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한국영화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안 봐도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어는 말하는 만큼 들린다는 말이 있다. 영화도 비슷한 것 같다. 쓰는 만큼 보인다. 작가는 물론이고 한 편이라도 써 본 피디와 한 편도 안 써 본 피디는 다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쓰지는 않았더라도 뭘 쓸지 고민한 만큼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어지간해서는 영화를 보는 안목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이쯤되면 줄거리만 봐도 어느 영화의 우라까이인지 어느 영화들의 조합인지 대충 견적이 나온다. 시나리오를 안 봐도 어떻게 썼는지 다 알 것 같다. 굳이 영화를 볼 필요성을 못 느낀다. 줄거리랑 예고편만으로도 충분하다. 안 봐도 알 것 같은 영화를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극장에서 보게되면 머리에서 쥐가 나고 막 괴로워지기도 한다. 그런 경우를 몇 번 겪고 나면 안 봐도 알 것 같은 영화는 절대로 안 보게 된다. 특히 한국영화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한국영화의 제작 환경이 뻔하니 작가가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무슨 고민을 했고 그래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외국영화에 비해 더욱 잘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노림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한국영화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비록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이 바닥에서 구르다보면 아는 사람이 한 두 명씩이라도 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다 친구가 되진 않는다. 친구는커녕 원수가 될 수도 있고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되기를 바라기는 싫은 사이가 되기도 한다. 자기는 오랜 시간 동안 안 풀리는데 잘 되기를 바라기는 싫은 사람이 만든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보고 싶겠는가? 안 보고 싶겠는가? 게다가 그 사람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면 어떻겠는가? 잘 되고 말고를 떠나 배가 아프겠는가? 안 아프겠는가? 적어도 극장까지 가서 보고 싶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잘 되기를 바라기는 싫은 사람이 늘어갈수록 멀리하게 되는 한국영화의 수도 많아진다. 그냥 없는 영화인 셈 치면 속은 편해진다.

근데 이러면 안 된다. 줄거리만 보고 어느 영화의 우라까이인지 어느 영화들의 조합인지 맞추는 건 대단한 능력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다들 하고 있다. 중요한 건 그래서 뭘 어떻게 쓰느냐인데 한국영화를 멀리하다보면 점점 감을 잃게 되고 이미 남들이 했던 걸 자기 혼자만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알고보면 다 비슷비슷한 영화를 보며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걸 알려면 한국영화를 봐야 한다. 잘 되기를 바라기는 싫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영화를 보기 싫은 경우엔 딱히 답이 없다. 다만 그렇다고 영화를 안 볼 필요까지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 하나 안 본다고 잘 될 영화가 안 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바닥에선 굳이 누군가가 안 되기를 바라지 않아도 된다. 극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언젠가는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중력의 법칙과도 비슷한 것 같다. 한국영화를 멀리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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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냥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재미있다. 기존 언론 매체는 물론이고 포털 뉴스만 들어가 봐도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등등의 순으로 언제나 정치 뉴스가 가장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트위터나 블로그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치 이야기는 임팩트로 보나 파급력으로 보나 피드백으로 보나 RT수로 보나 덧글 수로 보나 한번 터지기만 하면 그 정도에 있어 여타 이야기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정치적 성향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멤버들로 구성된 술자리 등에서 정치 이야기가 금기시되어 있는 이유도 정치 이야기가 지나치게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이야기는 섣불리 꺼냈다가는 그 순간부터 다른 화제는 몽땅 버로우 되고 술자리가 파토나는 그 순간까지 오로지 정치 이야기로만 달려야 될 가능성이 크다. 중간에 흐지부지 끝나면 직성이 풀리지 않아 끝을 봐야 하는 것이다. 니 편 내 편 가르기도 쉽다. “넌 좌파니 우파니?”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넌 대통령 누구 뽑았는데?”로도 가능하다. 암튼 그 정도로 정치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고 중독성도 강하고 끝도 없다.

그런데 한국엔 정치 영화가 드물다. 일상 속 정치 이야기의 흥행 성적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된다. 흥행에 성공한 정치 영화는 커녕 정치 영화 자체가 거의 없다. 정치 영화하면 흔히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떠올리는데 그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인 1991년 개봉작이다. 올해 성년의 날의 주인공이 1991년생들이다. 20년 전에 태어난 신생아들이 성년의 날을 맞이하기까지 흥행과 비평의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라도 제대로 잡은 정치 영화가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더 안타까운 건 그 당시 온갖 상이란 상은 다 수상한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가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한국 정치 영화의 역사는 지금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왜 한국에선 이렇다 할 정치 영화가 나오지 않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최종 보스 즉 나쁜 놈 설정의 어려움 때문인 듯하다. 결국엔 주인공이 나쁜 놈을 때려잡든 나쁜 놈에게 때려 잡히든 해야 되는데 누가 나쁜 놈인지 설정하는 일부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시대 배경이 현재에 가까울수록 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90년대 이전이 시대 배경이라면 별 문제없다. 그래서인지 정치적 성향이 강한 영화들 대부분이 90년대 이전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정통 정치 영화는 아니어도 정치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간 프로젝트의 기획 과정을 몇 번 구경한 적이 있는데 매번 최종 보스 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툭하면 이랬다 저랬다 하더라. 요즘엔 미국, 군산복합체, 그들과 결탁한 부패 정치인, 악덕 재벌 등이 최종 보스의 단골 후보들인데('한반도'이후 친일파는 줄고 있는 추세다) 그들이 진짜로 나쁜 놈인지 여부는 둘째치고 막상 그들을 최종 보스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다 보면 언제나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분명 더 나쁜 놈들이 있을 것 같다.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생긴다. 그렇다고 이 놈 저 놈 그 놈 모두 다 나쁜 놈이라고 할 수도 없고 1시간 반짜리 영화에서 이 놈이 왜 나쁜 놈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구구절절이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영화가 더 이상 영화가 아니게 되어버리거나 대중 영화치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져버리는 경향이 생긴다. 몇 안 되는 ‘쓰는 이’들조차 최종 보스에 흔쾌히 납득을 못 하는데 수십 수백만이 넘는 ‘보는 이’들을 어떻게 납득시키겠는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분노하라’에 나온 것처럼 이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이야기는 잘 쓰기도 어렵고 잘 써도 어렵다. 때론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반드시 써야 되는 이유가 없다면 정치 이야기는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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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맘 다 안다. 왜 모르겠는가? 다른 일 하는 친구들하고 만나봤자 연예인 누구 아는 지나 물어보고 촬영장에서 몇 번 봤다고 안다고 말할 순 없으니 딱히 해 줄 이야기는 없고 술 마시며 음담패설이나 나누다 보면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고 너는 나중에 감독되면 내라 그래서 술값도 안 냈지만 조금 허무하다. 감독 된다고 다 술값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조금 답답하고 굳이 그런 말 하는 것도 우습고 암튼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이다. 반면 영화하는 친구들하고 만나면 비록 누가 술값을 낼 것인지에 대한 부담이 있긴 하지만 (특히 영화 한 지 1년 이상 지난 멤버들의 모임일 경우) 연예인 누가 아냐고 물어보는 애도 없고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서로 사정 다 알고 있으니 부연 설명 필요없고 어쩌면 뭔가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껀수가 생길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뜨기도 한다. 가끔은 술자리에서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게 사실이고 처음 보는 영화인이라도 알아두면 이 바닥 좁으니 언젠간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꾸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게 되고 다른 일 하는 친구들과의 모임은 연례 행사가 되는 경향이 생긴다.

그러면 안 된다. 특히 작가는 그러면 안 된다. 영화하는 친구들끼리 모여봤자 “작품 언제 들어가?”, “계약했어?”, “투자됐어?”, “캐스팅은?” 솔직히 이 네 마디가 대화의 대부분이다. 영화 얘기도 안 한다. 은행원들이 모이면 예술 얘기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 얘기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맨날 영화판 얘기만 쓸 것도 아니고 작가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세계를 겪고 알아야 되는데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렸다간 점점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다른 일 하는 친구의 지인들과도 어울리며 홍상수 영화 얘기 꺼냈다가 소외감도 느껴보고 심형래 욕하다가 멱살도 잡혀봐야 관객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고 풍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코 쉽진 않다. 어렸을 때야 두어번 만나도 금방 친구가 되지만 머리가 좀 크고 나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술자리가 맨날 있는 것도 아니고 맨날 같이 술 마신다고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친하다고 정말 친한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자주 만난다 해도 일 끝나면 관계도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지 말고 폭넓은 인간 관계도 결코 쉽진 않다면 어쩌라는 건가? 혼자 놀라는 건가? 아니다. 가족들과 어울리라는 거다. 가족들 중에서도 이왕이면 엄마하고 노는 게 좋다. 효도도 할 수 있고 일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몇 년 간 대중문화의 대세가 바로 엄마기 때문이다. 조만간 개봉하는 마마부터 시작해서 마더, 애자, 엄마, 친정 엄마, 열 한 번째 엄마, 엄마는 창녀다, 인어 공주,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경축 우리 사랑 등등. 당장 기억나는 한국 영화만 해도 이 정도고 외국 영화 중에서도 엄마 이야기가 많고 제목에 엄마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엄마의 비중이 큰 영화들이 엄청 많다. 조만간 대박이 예정되어 있는 써니도 강형철 감독이 우연히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 한 장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고 한국 소설 최초로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엄마를 부탁해도 엄마 이야기다. 영화나 소설 뿐만 아니다. TV 드라마는 99% 엄마(시어머니) 이야기다. 최신 유행에 뒤쳐지지 않겠다고 굳이 트렌드세터들을 기웃거릴 필요 없다. 영감을 얻겠다고 막 해외 여행가고 집 떠나서 고생할 필요 없다. 가족들과 어울리면 다 해결된다. 가족들 중에서도 이왕이면 엄마랑 자주 대화를 나누고 엄마가 재밌어 하는 걸 유심히 관찰하고 효도도 해라. 영화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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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장의 메인 관객층이 젊은 여자들이라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영화 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뮤지컬, 연극, 소설, 음악, 미술 다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 작가들은 여자 작가들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한 게 사실이다. 젊은 여자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 작가들은 여자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남자 작가들에 비해선 훨씬 잘 안다. 그걸 쓸지 말지는 다른 문제지만 적어도 여자들의 욕망을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자기가 욕망하는 걸 솔직히 써도 된다는 건 분명 엄청난 메리트다. 자기의 욕망과 영화 시장의 메인 관객층인 여자들의 욕망은 일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아직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 작가들은 여자 작가들과는 달리 자기가 욕망하는 걸 솔직하게 썼다간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여기 여고생과 남고생이 있다. 둘 다 소설가가 꿈인데 아직 습작 한 편 안 써 본 상태다. 그래서 눈치보지 말고 각자의 욕망을 솔직하게 소설로 써보라고 시켰다 치자. 과연 뭐가 나왔을까? 여고생의 욕망은 잘 생긴 남자랑 결혼하기일 것이다.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걸 마다하는 여고생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고생의 욕망은 뭘까? 솔직히 남고생에겐 욕망보단 욕정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 남고생에게 욕망은 없다. 단지 욕정이 있을 뿐이다. 예쁜 여자랑 결혼하기가 꿈인 남고생은 단연컨대 없다. 예쁜 여자들이랑 섹스를 많이 하는 게 꿈인 남고생이 있을 뿐이다. (물론 아닌 남고생도 있고 성적 다양성도 존중하지만 이 글에선 넘어가기로 하자.) 남고생이라면 가정보다는 하렘인 것이다. 이건 내가 겪어봐서 잘 안다. (참고로 남중, 남고, 군대 경력자임) 여고생이 자기가 욕망하는 바를 솔직하게 쓰면 귀여니처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남고생이 자기가 욕망하는 바를 솔직하게 썼다간 성인 사이트 야설 게시판에서 익명의 댓글로만 환영받는 게 고작이다. 남고생이 여고생처럼 쓰려면 훈련이 필요한데 그건 하루 이틀로 되는 게 아니고 욕정에 초연할 수 있다면 이미 남고생이 아니다. 그건 30대 후반 정도가 되어도 가능할까 말까다. 분명 소설가가 꿈인 남고생들도 여고생들만큼이나 많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남자 귀여니는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시나리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젊은 여자 시나리오 작가에 비해 젊은 남자 시나리오 작가가 괜히 적은 게 아니다. 만약 아직 젊고 혈기왕성하고 습작도 별로 안 써봤고 주변에 친한 여자들도 없고 여자들에게 작품을 모니터 받은 경험도 거의 없는 남자 작가라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봐도 좋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걸 쓰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싫어하는 건 쓰지 말아야 되는데 뭘 알아야 쓰든 말든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일반적인 남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의 경우엔 주변에 친한 여자가 많기가 정말 쉽지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암튼 대부분은 그렇더라. 그러니 남자 작가 지망생들은 더 분발하고 노력해야 한다. 시나리오 공부는 기본이고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 지까지는 몰라도 뭘 싫어하는 지는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주변에 친한 여자가 없다면 남초 게시판에서 걸그룹이랑 야구 얘기만 하지 말고 여초 게시판에 가서 놀아라. 가서 여자 회원들이랑 싸우지 말고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라. 어떤 감독님은 술집에 가서도 꼭 여자 종업원들에게 자기가 준비 중인 아이템을 얘기해주고 재밌는지 물어보더라. 바로 이런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가서 AV 찍을 게 아니라면 여자들이 싫어하는 건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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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예상계에 묵직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나는 10만만 넘어도 다행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걱정된다>는 포스팅을 올린 적도 있다. 예상이 어마어마하게 빗나간 셈이지만 그다지 부끄럽진 않다. 나는 시나리오는 커녕 원작 만화조차 안 읽어본 상태에서 예상을 했고 예상이라고 해 봤자 그냥 블로그에 올리고 마는 것 뿐이라 적중해도 그만 안 적중하면 조금 부끄러울 뿐이지만 나와는 달리 원작 만화를 읽어보고 시나리오도 읽어보고 감독도 만나보고 배우도 만나보고 직원들끼리 모여서 회의도 하고 여기저기 모니터도 돌려본 후 최종적으로 흥행이 안 될 거라 판단해서 투자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벌 돈을 못 번 나보다 훨씬 잘 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뭐 그다지 부끄러워하진 않을 것 같다. 노인들의 사랑 이야기가 흥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벌 돈을 못 번 건 사실이지만 돈을 까먹은 건 아니므로 아마 회사에서도 이해해 줄 것이다. 암튼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흥행 성공으로 한국 영화가 좀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 질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래도 노인 이야기는 쓰지 마라. 아무리 노인 이야기라도 좋은 이야기이기만 하면 <그대를 사랑합니다>처럼 관객들이 반드시 알아봐는 주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관객들이 알아봐주려면 일단 영화로 만들어져서 극장에 걸려야 하는데 노인 이야기를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썼을 경우엔 영화화가 어렵기 아니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오리지날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다음 연재 만화였다. 그것도 그냥 무명 작가의 만화가 아니라 강풀의 만화였고 독자들의 지지도 확보된 상태였다. 이럴 경우엔 영화화가 말이 된다. 시나리오를 읽어본 누군가가 “관객들이 노인 영화는 안 볼 것 같다.”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강풀 아시죠? 이거 강풀 만화에요. 다음에서 연재도 했는데 가 보시면 알겠지만 감동깊게 봤다는 댓글들이 대박 많아요. 댓글이 총 OO개 달렸는데 댓글 단 사람들 중 OO프로만 보러 와도 손익분기점은 금방 넘을 거에요.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좌석 점유율이 90%가 넘고..”라는 식으로 과학적인 숫자와 통계 그리고 사례를 들이대며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가 되도 영화화가 쉬운 건 아니다. 실제로 한 번 엎어지기도 했다. 다음 연재 만화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투자 결정을 내렸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노인 이야기는 안 될 것 같아 투자 결정을 철회한 사람도 있다는 뜻일 게다. 설령 우여곡절 끝에 영화화에 성공한다 해도 이번엔 개봉관 확보가 문제다. 극장 쪽 사람들도 노인 영화 대신에 다른 영화를 걸면 더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처음엔 개봉관 잡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산 넘어 산이란 말은 바로 노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으므로 여타 실버 시장처럼 이제는 노인 영화도 돈이 될 거라는 말도 있다. 실버 전용 극장도 있고 노인 관객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라는 일본을 보면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대박 영화 중에 노인 영화가 있다는 말은 한번도 못 들어봤다. 게다가 노인 전용 극장 상영작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들이다. 노인이라고 노인 영화를 원하는 건 아닌 것이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노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고생을 사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이리스>는 대박이었지만 <아테나>는 아니었던 것처럼 <워낭소리>는 대박이었지만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아니었던 것처럼 딱 한 번만 대박이 가능한 장르가 있다. 노인 이야기는 쓰지 마라.


p.s. 앤잇굿 시놉시스 공모전 출품작 제한에 노인 이야기가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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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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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행위를 안 해 본 남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남자는 없다. 그만큼 자위행위는 남자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자위행위 장면을 쉽게 볼 수 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만약 남자 주인공이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캐릭터가 좀 더 리얼하고 입체적으로 느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해당 영화가 인생의 진실이나 본질 따위 등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2010년 한국영화 흥행 1위 <아저씨>를 예로 들어보자. 원빈은 과거에 불행한 사건을 겪은 후 세상을 등진 채 전당포를 꾸려가며 외롭게 살아가는 전직 특수 요원이다. 여자 친구도 없고 이렇다 할 취미도 없다. 원빈이 실제 인물이라면 자위행위를 할까 안 할까? 당연히 할 것이다. 만약 원빈이 전당포에 앉아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그가 느끼고 있을 외로움이 관객들에게 보다 절절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2010년 한국영화 흥행 2위 <의형제>도 마찬가지다. 송강호가 연기한 국정원 요원 한규와 강동원이 연기한 남파공작원 지원은 주변에 여자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실제 인물이라면 자위행위를 할까 안 할까? 당연히 할 것이다. 만약 송강호와 강동원이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조직에서 버림받고 외로이 살아가는 두 남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관객들에게 보다 절절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여자 관객들이 싫어한다. 그것도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치를 떨며 싫어한다. 그래서 보통은 여자 관객들이 싫어해야 마땅한 나쁜 놈들만 자위행위를 한다. 2010년 한국영화 흥행 12위 <악마를 보았다>가 대표적인 예다. 이병헌은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변태 성범죄자만 골방에서 홀로 야동을 보며 자위행위를 한다.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 이병헌은 자위행위를 하는 변태 성범죄자를 죽도록 두드려 팬다. 이 영화에서 자위행위는 악, 안 자위행위는 선이다. 만약 이병헌이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이병헌이 느끼고 있을 자괴감과 분노가 관객들에게 보다 절절하게 와닿을테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영화의 주제를 더 살려주었겠지만 그래도 이병헌은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다. 여자 관객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액션이나 스릴러 뿐 아니라 로맨틱이나 멜로에서도 자위행위는 안 된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데 아직 성관계를 가지진 않은 상황이라면 남자가 여자를 생각하면서 자위 행위를 할까? 안 할까? 당연히 할 것이다. 또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져 처음으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지기 직전인데 만약 남자가 그토록 애태우며 기다렸던 이 순간이 짧게 끝나버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면 여자 몰래 자위행위를 할까? 안 할까? 음. 이 상황에선 하는 남자도 있고 안 하는 남자도 있겠다. 반드시 모든 남자가 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러나 성관계 직전 남자가 여자 몰래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있다면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남자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보다 절절하게 와닿을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자위행위는 안 된다. 여자 관객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암튼 안 된다. 아무리 자위행위가 관객들에게 인생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유용한 설정이라 해도 여자 관객들이 싫어하면 안 되는 거다. 게다가 자위행위 장면은 행위의 특성상 통편집도 쉽다. 남 몰래 혼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통편집되어도 이야기의 흐름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여자 관객들에게 욕 먹을 각오하고 큰 맘 먹고 쓰거나 찍어 봤자 괜히 피디나 대표나 투자자한테 욕만 바가지로 먹고 시나리오 모니터 단계나 편집실에서 삭제되기 십상이다. 여자 관객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자위행위는 하지 아니 쓰지 마라.

p.s. <블랙스완>을 보면 알겠지만 여자 주인공의 자위행위 장면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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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굶진 말자.

아프지도 말자.

그리고 언젠간 꼭 성공해서 남들 사는만큼은 누리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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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태초에 <원스>가 있었다. 훌륭한 작품이었다. 저예산으로 만들었고 유명한 배우들도 없었지만 흥행은 물론이고 OST에서도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으며 배우들에게도 부귀영화를 안겨 주었다. 그들은 가끔 한국에서 초청 공연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원스>는 전세계 독립 영화 역사상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고부가가치 성공 사례일 것이다. 물론 나도 재미있게 보았고 당연히 그들이 부러워졌고 따라해보고 싶어졌다. 왠만한 1000만 영화 감독보다 20만 <원스> 감독이 더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만만해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정도 쯤이야 우리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저예산이고 유명한 배우들도 필요없고 OST만 그럭저럭 감미로우면 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만해 보인다. 그래서 한동안 나도 <원스>같은 시나리오를 구상한 적도 있지만 그냥 구상만 하다 말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지 아니나 다를까 인디 뮤지션을 주인공으로 한 <원스> 워너비 시나리오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쏟아져 내린 시나리오의 수보다는 훨씬 적지만 그래도 은근히 많은 수의 음악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흥행성적과 시청률은 하나같이 저조했다. 영화와 드라마 뿐만 다큐멘터리도 몇 편 만들어졌지만 그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어떤 영화는 음악 영화는 아니지만 홍대 여신이 출연했어도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그만큼 홍대라는 키워드와 흥행은 인연이 없었다.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가 간지가 나긴 하고 홍대라는 지명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러니까 홍대 앞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음악 영화 특유의 극중 갈등을 모두 해소시키는 클라이막스에서의 공연 장면이나 노래가 끝난 뒤 객석의 애인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관객들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등등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 또는 홍대 앞에서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으로는 상업적으로 크게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홍대 앞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고민하며 음악을 하고 있는 이야기는 장르가 아니다. 마장동에서 정육점하는 이야기나 서초동에서 변호사하는 이야기처럼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그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에서 그들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려면 그들이 음악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홍대 앞에서 음악하며 재벌 2세나 탑스타와 연애를 하든가 살인 사건에 휘말려야 한다. 알고 보면 <원스>도 결국은 연애 이야기였다. 그런데 연애를 하든가 살인 사건에 휘말릴 거면 굳이 주인공이 홍대 앞에서 음악을 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억지로 이유를 만들다 보면 개연성이 희박해지고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진정성 있게만 가다보면 공감을 얻기 힘든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린다. 이래저래 투자 유치는 점점 요원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원스>처럼 OST 수입을 노리고 기획되었다가 결국은 흐지부지된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들을 몇 편 읽어본 적이 있는데 다들 절실하고 진정성있고 뭔가에 아파하고 있으며 젊고 파릇파릇하고 클라이막스에서의 공연 장면도 임팩트 있긴 하다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는 생각이 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를 쓰지 말랬다고 다른 동네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는 괜찮다는 건 아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충주에서 인디 밴드하는 이야기도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어쩌면 서울대 나와서 홍대 앞에서 음악하는 이야기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만 그래도 왠만하면 말리고 싶다. 어느 동네에서건 음악하는 이야기 특히 인디 밴드 하는 이야기는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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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시나리오 계약금으로 주식하는 작가를 여럿 봤는데 하나같이 주식을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 차기작을 집필하지 못하고 한국 영화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더라 까진 아니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차기작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계약서에 싸인하고 통장에 목돈이 입금됐는데 그냥 썩힐 순 없으니 어떻게든 굴리고 싶어하는 심정은 알 것 같다. 주식이라면 경마나 도박 보다는 건전해 보이고 왠지 주식으로 돈 벌었다고 하면 가족들에게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뜻 생각해도 시나리오 써서 버는 재주보다는 주식으로 버는 재주가 더 있어 보인다. 시나리오 써서 벌어봤자 맥시멈 몇 천이지만 주식으로는 잘만 하면 워렌 버펫처럼 될 수도 있다. 그닥 어려워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기만 하면 된다더라. 그렇게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기만 반복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다. 게다가 주식은 홈트레이딩 시스템의 발달 덕분에 인터넷만 되면 어디에서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집필 활동과 병행이 가능하다. 요즘엔 스마트 폰만 있어도 된다. 치열하게 집필하다 잠깐 머리 식힐 겸 쉬엄 쉬엄하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만해 보인다. 작가에게 이보다 더 좋은 부업은 없을 것 같다. 그 어렵다는 시나리오 집필로도 돈을 벌었으니 뭘 해도 잘 될 것 같고 엔터 업종이라면 일반인들보다 아는 게 많으니 유리할 것 같다.


긴 말 않겠다. 주식은 하지 마라. 술, 담배, 남자, 여자는 해도 주식만큼은 하지 마라. 주식보단 차라리 경마나 도박이 낫다. 도박은 잘만 하면 도스트예프스키처럼 될 지도 모른다. 도박 중독 출신 거장 얘기는 들어봤어도 홈트레이딩 시스템으로 주식했다는 거장 얘기는 못 들어봤다. 암튼 주식은 하지 마라. 일단 주식을 시작하면 한글 창을 띄울 시간이 없어진다. 초단위로 피같은 계약금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데 한글 창 같은 소리 하고 있다. 거래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므로 그 외의 시간에 집필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듣고 와선 목돈을 쪼개 분산투자라도 했다간 돈 담근 종목들 관련 뉴스부터 시작해서 업계 동향, 루머, 애널 유무료 상담 분석 보고서 까지 일일이 챙겨봐야하고 이 게시판 저 게시판 들락거리고 재야 고수의 무료 강연회도 쫓아다니고 거시적으로 분석한답시고 다른 나라 지수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게 될 텐데 언제 시나리오를 쓰겠는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국엔 벌어도 못 쓰고 잃어도 못 쓴다. 돈을 벌게 되면 주식으로 돈 번 사람이 없다는데 나는 벌었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데 내가 왜 이 소리 저 소리 들어가며 남의 시나리오를 쓰고 앉아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반면 돈을 잃게 되면 언제 손절매를 할 것인지와 손절매를 한다면 어느 종목으로 갈아타야 되는 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 차 버린다. 어느 세월에 시나리오 써서 손실을 복구하나 막막해져 집필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사람이 또 주식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주식하면서 머리도 식힐 겸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영화라도 보는 건 차라리 다행이지만 시나리오 작가의 취미가 영화 감상인 경우는 흔치 않다. 다양한 취미가 있겠지만 만약 야구 같은 스포츠 감상이 취미라면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봐야한다. 낮에는 주식하고 밤에는 경기보고 경기 끝나면 주가 분석과 경기 분석에 매진하고 내일의 주가와 경기 결과를 예상하고 경우의 수에 따른 시나리오를 작성하다보면 이제 잘 시간이다. 솔직히 이 지경에 이르면 시나리오는 다 쓴 거다. 계약서에 싸인하고 선금까지 받은 상황이라도 잔금은 못 받을 확률이 백프로다. 정 목돈을 그냥 두기 불편하고 어딘가에 투자하고 싶다면 그동안 수고한 자기 자신에게 투자해라.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옷 입고 해외 여행 다녀라. 주식은 하지 마라. 장기투자도 하지 말고 특히 스켈핑으로 상한가 따라잡기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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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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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시나리오를 쓰려면 평일엔 기상-출근-오전 업무-점심 식사-오후 업무-저녁 식사-때론 야근-퇴근-TV시청-웹써핑-시나리오 집필-취침. 대충 이런 식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해야 하고 술 약속도 잡지 말아야 하는데 일단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설령 시간을 낸다 해도 한 두 시간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 두 시간이면 뭐 쓸까? 하는 고민에 멍 때리고 있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점심 때 쯤 일어나 TV 좀 봐주고 이제 뭣 좀 써 볼까 하면 벌써 일요일 밤이다.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턱턱 막혀온다. 우울하다. 시나리오 같은 소리 하고 있다. 괜히 스트레스만 가중된다. 게다가 주말엔 가끔 교외로 나가 바람도 쐬고 기분 전환도 해줘야 한다. 하다못해 시내에 나가 평일에 못 만난 친구들이라도 만나줘야 한다. 시나리오 집필도 엄연한 일인데 언제까지 쉬지 않고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시나리오만 쓰다보면 언젠가 틀림없이 병난다.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는 게 불가능하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쓰라는 얘긴가? 그렇다. 이왕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직장 따윈 미련없이 그만두고 써야 한다. 밥 먹고 술 먹는 시간 빼고 시나리오만 쓰는 전업 작가들도 잘 될까 말까다. 직장에 다니면서 시나리오를 쓴다면 전업 작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바닥이 그렇게 만만한 바닥이 아니고 전업 작가들이 좀 모자란 사람들도 아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관두라는 얘기는 아니다. 직장을 다닐 거면 직장에 충실하고 시나리오를 쓸 거면 시나리오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괜히 직장에 다니면서 시나리오까지 쓰려다보면 시나리오도 못 쓰고 직장 일에도 소홀하게 될 수밖에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되는 것이다.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우여곡절 끝에 한 편 완성한다 해도 완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직장을 그만두고 시나리오만 쓰고 싶은데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경우엔 어떡해야 하나? 그냥 쓰지 마라. 꼭 써야 하나? 포기해라.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출근했다 퇴근해서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안일까지 하고 나면 시나리오는 언제 쓰나?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시나리오를 쓰겠다면 결국엔 직장을 버리든 가족을 버려야 하는데 과연 시나리오라는 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두 마리 토끼 잡기도 힘든데 세 마리 토끼 잡기는 쉽겠는가? 괜히 어렵게 시간 내서 뭔가 써보겠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 시간에 차라리 가족들과 함께 남이 만든 영화를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게 더 행복한 인생 아닐까? 일 이주 아니 서너 달 안에 승부를 볼 수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시나리오라는 게 언제 승부가 날지 기약할 수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시나리오 한 편 쓰려면 몇 달은 걸리게 보통이고 영화화되기까지는 평균 3~4년은 걸리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직장 생활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승부가 난다해도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신인 작가의 경우 시나리오 써서 버는 돈이 연봉보다 많을 확률은 극히 적다.

직장 생활하며 남의 돈 받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인가? 거기에 부양할 가족까지 있다면 게임 오버라고 봐야 한다.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좋은 관객으로 남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괜히 이것 저것 다 하려다 이도 저도 안 된다. 직장 다니면서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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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2010년이 저물어 간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올해까지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다고 주변에 호언장담했거나 후원자들과 약속한 사람들 중 일부는 정말로 영화를 그만 둘 것이다. 기한을 정해두지 않고 천년만년 영화만 하리라 마음먹은 사람들도 있긴 하다. 실제로 내가 아는 아무개가 아는 아무개 형은 입봉 준비만 16년째인데 영화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 형은 내년에도 입봉 준비를 할 것이다. 잘 하고 있는 거다. 꼴랑 몇 년 해보고 안 된다고 포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를 한다는 명목 하에 놀기만 하는 분들도 있지만 현역 유명 감독들 중에서도 10년 가까이 준비만 한 분들이 여럿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는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아무런 성과 없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부턴 자기가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때가 온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화에만 전념 할 수 없게 되는 내적 외적 환경이 조성된다. 육체적으로는 지구력이 약해지고 정신적으로는 집중력이 약해지므로 물리적인 작업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이템이 아무리 좋아도 뭐라도 써야 시나리오가 되는 건데 쓰는 시간이 줄어들면 작품의 퀄리티가 떨어지게 된다. 하루에 여섯시간씩 쓰던게 세시간 한시간 30분 10분으로 줄어들게 된다. 다른 일 하느라 바빠서가 아니다. 시나리오만 쓰는데도 그렇게 된다.


경제적으로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진다. 언젠가는 반드시 수입이나 후원이 끊기게 마련인데 그 상황이 닥치고 나면 영화에 대한 고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수입이 끊기지 않으면 수입을 포기하고 영화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게 되고 후원이 끊기지 않으면 현재 상태에 만족하게 되거나 영화라는 험난한 고생길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오랜 시간 허송세월 하다보면 점점 의기소침해지면서 지레 포기하게 되기도 하고 이제 갓 영화판에 나온 패기있고 능력있는 후배들의 틈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 나이 먹도록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다면 능력이 없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갑’측의 선입견 때문에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런 선입견이 없더라도 '갑‘ 주변에는 날고 기는 유망주들이 쌔고 쌨다. 이렇다 할 메리트가 없다면 굳이 나이만 많고 경험은 없는 신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본인 스스로도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영화 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많은 게 사실이고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그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이렇게 살아도 한 평생 저렇게 살아도 한 평생 그냥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영화 경력이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이를 좀 먹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록 영화를 더 잘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나 영화만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이를 먹다보면 다양한 경험을 쌓기도 힘들어진다. 시나리오를 쓴 경험은 다양한 경험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면 위에 열거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영화를 계속 할 수 있는 일정한 레벨에 올라야 한다. 어느 정도 레벨이 되어야 영화를 계속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대충은 정해져 있다. 레벨에 오르고 못 오르고는 본인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참고로 나는 일정한 레벨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나이는 저절로 먹지만 레벨은 다르다. 내년이 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몸값은 떨어지고 있다. 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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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특히 신인 감독이 데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쓰지 마라. 이건 자기 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영화판 이야기는 영화판 경험이 있는 현장 스태프나 신인 감독이 쓰는 경향이 있지만 가끔은 영화판 경험이 전혀 없는 작가 지망생들도 영화판 이야기를 쓰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영화판 경험이 있는 현장 스태프나 신인 감독이 영화판 이야기를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예전에 자기 이야기는 쓰지 마라에서 충분히 설명한 것 같다.

영화판 이야기라고 좋은 영화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신인 감독이 데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시시하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충분히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고 얼마 전에 독립영화 쪽에서 한 편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지금 좋은 영화 만들겠다고 시나리오를 쓰려는 건 아니다. 좋은 영화고 뭐고 일단은 영화 경력을 쌓고 영화판에서 자리를 잡고 시나리오를 써서 돈도 벌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영화판 이야기는 경력이나 돈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영화판 이야기는 영화판 이야기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화화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판 이야기는 영화판 이야기라는 사실만으로 한 수 접고 들어가야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영화판에 대해서라면 시나리오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쓴 작가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나리오를 평가하는 사람들 중 영화화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영화판에 대해 그냥 더 잘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훨씬 더 잘 알고 있을게 뻔하다. 그 정도 위치에 올랐다면 영화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테니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고 생생하고 페이소스 돋는 에피소드들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판 이야기가 영화화되려면 일단은 그런 사람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들을 상대로 영화판 이야기를 쓴다는 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그들 중 3분의 2정도는 이 시나리오가 영화판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읽기를 포기하거나 페이지를 대충 대충 넘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일반 관객들은 영화판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영화판에 대한 관심은 다르다. 일반 관객들은 영화판 이야기보다는 맛집이나 화장품 업계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게 이미 흥행 성적과 드라마 시청률로 검증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판 이야기와 연예계 이야기는 다르다는 것이다. 구분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 중에 연예인이 있다면 연예계 이야기, 없다면 영화판 이야기로 보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감독이랑 스크립터랑 사귀는데 제작팀장이 끼어드는 이야기면 영화판 이야기, 영화 감독이랑 주연 여배우랑 사귀는데 아이돌 가수가 끼어드는 이야기면 연예계 이야기로 보면 될 것 같다. 조감독이 엑스트라랑 사귀는 이야기나 제작팀장이 연출부 세컨이랑 사귀는 이야기는 고민할 것도 없이 영화판 이야기다. 연예계 이야기라면 굳이 피할 필요까진 없겠다.

좀 부끄러운 고백이긴 하다만 사실은 나도 예전에 영화판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영화판 이야기를 쓰는 걸 보면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내가 쓴 건 영화판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못썼기 때문에 영화화에 실패한 것이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말리고 싶다. 남의 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영화판 이야기는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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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야기는 쓰지 마라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이번 포스팅은 바로 전 <비밀리에는 쓰지 마라>에 달린 “소녀시대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는 어떤가요?”라는 덧글에 대한 답글이다. 비단 소녀시대 뿐만 아니라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가 은근히 있다. 일종의 팬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장동건이 장동건으로 나오는 시나리오는 지금 기억나는 것만 해도 서 너 편은 된다. 이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스타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어하는 심리와도 비슷할 것이다. 애초에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주인공을 실존 인물(대부분은 시나리오 집필 당시에 가장 인기있는 연예인)로 설정하면 읽는 이의 관심을 끌기 쉬울 것 같고 관객들도 재밌어할 것 같고 팬들은 당연히 보러 올 것이고 어쩌면 그 실존 인물이 자기를 주인공으로 써 준 것을 기특하게 여겨 한 번 만나줄 지도 모르겠고 진짜 운이 좋다면 기꺼이 출연까지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권유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권유리와 함께 영화 작업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무작정 권유리가 권유리로 나오는 시나리오를 쓴다. 남자 주인공은 로드 매니저나 백수다. 줄거리를 39자로 요약하자면 권유리와 사랑에 빠진 로드 매니저나 백수가 이수만 사장의 반대를 이겨내고 권유리와 결혼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 권유리는 작가 지망생의 취향에 따라 다른 인기 연예인으로 교체될 수 있다.


나는 후딱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SM 사이트에 나와 있는 관리자 이메일로 보낸다. 그리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다음 수순을 상상해 본다. SM 사이트 관리자가 내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읽고는 A4용지에 출력해서 권유리 매니저에게 보여준다. 권유리 매니저도 내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읽고는 권유리에게 시나리오를 건넨다. 권유리는 바쁜 활동 틈틈이 밤을 새워 내 시나리오를 읽고는 너무 재밌어서 출연하고 싶어한다. 당장 이수만 사장에게 달려가 내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이 시나리오에 출연하고 싶다고 통보한다. 이수만 사장은 내 시나리오를 읽어보지도 않고 반대하지만 권유리가 하도 끈질기게 졸라대서 마지못해 읽어보고는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하루 정도 고민한 후 내 시나리오를 전격 영화화하기로 결정한다. 여기까지 이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 나는 결국 권유리와 영화 작업 후 궁극적으로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주일 뒤엔 SM에서 연락이 올까? 안 온다. 위와 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무작정 이메일로 보내는 게 아니라 권유리 매니저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건넸다 해도 일이 성사될 확률은 거의 없다. 궁금하면 실존 인물이 본인으로 출연한 영화가 몇 편이나 있는지 세어보자. 그 수많은 팬픽 중에 몇 편이나 영화화됐는지 생각해보자.


실존 인물을 주인공을 쓰면 안 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굳이 그래야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다면 굳이 실존 인물의 이미지에 기댈 필요가 없고 시나리오가 재미없다면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연해 줄 리가 없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더라도 실존 인물이 본인으로 나오는 걸 꺼려할 가능성이 있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야 될 수도 있는데 시나리오에 특정 인물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으면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하거나 프로젝트 자체를 접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실존 인물이 본인으로 나오는 영화를 누가 보러 올까? 열혈 팬들 말고 일반 관객들도 그 실존 인물의 연예계 활동이나 일상 생활을 극장에서 보고 싶어할까? 남들이 안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팬심은 존중하지만 실존 인물은 주인공으로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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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리에는 쓰지 마라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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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번쩍하고 괜찮은 아이템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아이템이 되는 아이템인지 아닌 지 잘 모를 수 있다. 분명 되는 아이템인 것 같긴 한데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볼 땐 조금 부족한 아이템이지만 남들에겐 되는 아이템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긴가민가한 것이다. 그럴 땐 누구한테 아이템 모니터를 의뢰할 수 밖에 없는데 막상 누구한테 물어보려고 하면 조금 망설여진다.


일단 믿을만한 안목을 가진 아무개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 주변에 있는 아무개들은 대부분 나보다 못하거나 어딘지 모르게 못미더워 보인다. 그렇다고 믿을만한 안목을 가졌다는 이유로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아무개에게 모니터를 의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뢰가 성사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누가 봐도 검증된 안목을 가졌을 정도라면 검증된 영화인이어야 하는데 그들이 생판 모르는 작가 지망생의 아이템 얘기를 들어줄 리 없다. 만남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만남이 성사된다 해도 조심성 있는 영화인이라면 모니터 자체를 꺼려 하는 경우가 많다. 하늘 아래 새로운 아이템이라는 게 있을 리 없고 만에 하나 자기가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과 비슷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껏 커피 한 잔 얻어먹겠다고 괜한 오해를 사기 싫은 것이다. 그냥 소개시켜준 사람 얼굴 생각해서 열심히 하라거나 행운을 빈다는 덕담 정도 해 주는 게 다일 것이다.


물론 작정하고 평가를 부탁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문득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한 시나리오가 도용당했더라는 흉흉한 소문을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시나리오조차 도용당하는 마당에 아이템 도용 정도는 일도 아닐 것 같다. 아이템에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막말로 검증된 영화인의 손에 괜찮은 아이템이 들어가면 그냥 만드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나의 허락이나 양해 따윈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아이템이야 먼저 만드는 사람이 임자라지만 검증된 영화인과 검증받지 못한 자기와는 게임 자체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 주변에 있는 아무개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낙천적인 성격 탓에 아이템을 도용당할 우려 따윈 전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모니터는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기 딴에는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간만에 창작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데 괜히 김빠지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이다. 창작의 즐거움을 빼앗기기 싫은 것이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모니터 따윈 필요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냥 비밀리에 완성해서 세상을 깜짝 놀래키고 싶다. 검증된 영화사와 계약한 후 주변 아무개들에게 연락해 거하게 술 한 잔 사는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런데 그래도 물어봐라. 길게도 필요없다. 그냥 재밌냐고만이라도 물어봐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칸느나 천만 따윈 일도 아니겠지만 영화는 혼자 보는 것도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한 편의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기까지는 최소한 30명은 설득해야 한다. 30명 전부가 오케이해도 될까 말까한 마당에 주변의 아무개 몇 명조차 설득하지 못한다면 안 되는 아이템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제 아무리 유력한 결정권자라도 혼자 결정하진 않는다. 일반 대학생으로 구성된 모니터 그룹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한다. 무엇보다 그 30명은 내 주변의 아무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보는 안목이란게 다 거기서 거기일 수 밖에 없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템 도용의 우려는 잠시 접어두는 수 밖에 없다. 작가 지망생 혼자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한 후 잘 되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냥 물어보고 써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서 쓸 필요까진 없지만 최소한 비밀리에는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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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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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러 다니다보면 간혹 자기 이야기부터 쓰라는 시나리오 강사를 만날 때가 있다. 듣고 보면 왠지 그럴 듯 하게 느껴진다. 잘은 모르겠지만 잘 찾아보면 내 안에도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고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설마 영화화할만한 뭔가가 아예 없을 것 같진 않다. 내 안에 뭔가 대단한 게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조금은 사치스런 여행의 핑계 꺼리도 된다. 무엇보다 취재나 인터뷰 등을 안 해도 될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다른 건 몰라도 취재나 인터뷰를 안 해도 된다는 건 분명 메리트다. 다행히 해당 분야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취재를 위해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야 된다고 생각하면 마냥 귀찮고 부담되는게 사실이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취재를 위해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럴싸한 영화사 명함 한 장 없고 꽃미남도 아닌 남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특히 여자들은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만나주지 않는다. 시나리오 취재 때문에 만나자고 하면 “무슨 작품 쓰셨어요?”라고 물어볼게 뻔한데 곧이 곧대로 대답했다간 거절당하는게 당연하다. 아무리 근성이 좋아도 그런 식으로 거절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약속을 잡더라도 캔슬당하거나 바람맞거나 연락마저 두절되는 경우를 몇 번 겪다보면 집필 의욕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잘 나가는 작가라면 이런 꼴은 안 당하겠지 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취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시나리오 강사의 조언대로 그냥 자기 이야기부터 쓰고 싶어진다.


사실 취재가 그렇게까지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취재를 제대로 하려면 준비를 제대로 해야 되는데 준비를 제대로 했더라도 취재원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엔 답이 없다.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지 않고 돈과 시간만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순 정보 수집 차원의 취재라면 차라리 인터넷 검색이 더 나을 때가 많다. 게다가 인터넷 검색이라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다. 시나리오 작가로선 아마추어지만 인터넷 검색 분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프로라는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검색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결국은 취재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러나 자기 이야기는 다르다. 자기에 대해선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를 그냥 옮겨 적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벌써 시나리오 한 편 다 쓴 기분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뭘 쓸 것인가? 가만히 방에 누워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돌이켜 본다. 이야기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영화화할 꺼리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또 다시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돌이켜 본다. 그렇게 계속 혼자서 자아성찰의 시간을 반복하다보면 십중팔구 남이 볼 땐 별 거 아닌데 자기가 볼 땐 별 거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다. 자기 이야기부터 쓰라고 가르쳤던 시나리오 강사한테는 칭찬 받을 수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영화화되지는 않는다. 습작 한 편 썼다 치면 상관없지만 습작 한 편 쓰고 강사한테 칭찬이나 받겠다고 시나리오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자기 이야기는 습작으로도 적합하지 않다. 자기 이야기부터 출발하는 건 애초에 노선 자체가 다른 것이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것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축구와 야구만큼이나 다른 것 같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둘이 같거나 최소한 비슷한 이야기였던 시절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내 기억엔 <희생>이 2만 관객 동원하던 시절이 바로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자기 이야기는 쓰지 마라. (자기 이야기하기엔 블로그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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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SF 영화가 간지는 난다. 혹성탈출, 스타워즈, 에일리언, 토탈리콜, 터미네이터, ET, 블레이드 러너, 로보캅, 아바타 등등. 아,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다른 영화들은 그냥 영화일 뿐이지만 SF 영화들은 그냥 영화 이상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장르의 작가들은 그냥 작가일 뿐이지만 SF 장르의 작가들은 그냥 작가 이상으로 느껴지는 뭔가가 분명히 있다. 일단 SF를 쓴다는 건 최소한의 교양은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아는 게 없으면 절대로 쓸 수 없다. 적어도 에로나 고어를 쓰는 작가들보다는 지적으로 느껴진다. 유명한 SF 작가들 중 몇몇은 예언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단순히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미래의 변화까지 예상하고 적중시킨다면 확실히 다른 장르의 작가들과는 한 차원 높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걸작 SF 영화들은 기타 장르의 걸작과는 달리 전 세계의 관객들이 목표다. 누구나 미래는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헐리우드 얘기일 뿐이다.

한국에서 SF는 안 된다. 한국 영화가 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SF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건 아니다. CG 기술이라면 근접했을 수도 있으나 영화를 CG 기술 만으로 만드는 건 아니다. 모두가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당연히 SF 시나리오는 아무도 안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SF를 쓰겠다는 친구들이 나와서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물론 아직까지 성공한 한국 SF영화가 없다는 이유로 현재에 안주하고 도전을 멈추어선 안 된다는 거 안다. 그리고 SF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쓰고 싶은 심정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열심히 잘만 쓴다면 아무런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필력이 범상치 않다면 시나리오 공모전 같은 데에서 상을 받을 순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상 하나 받겠다고 시나리오를 쓰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도 훌륭하고 가치있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공모전 수상은 아니다.

만약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은 했지만 영화화는 실패’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은 못했지만 영화화는 성공’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 같으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아마 나 말고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도 하고 영화화도 성공’의 경우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SF 시나리오의 경우엔 불가능하다. 실제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SF 시나리오가 있긴 했지만 영화화에는 번번히 실패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헐리우드를 능가할만한 훌륭한 SF 영화가 나오긴 하겠지만 언제가 될 지도 모르는 그 날을 위해 줄창 SF 시나리오만 쓰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자기 시나리오가 2~3년 안에 영화화되는 걸 보고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고 싶다면 SF는 쓰지 마라.

자기 돈이나 부모님 돈으로 만들거나 지원금을 타서 저예산으로 만드는 SF 영화는 논외로 하자. 헐리우드에서 SF를 만들려던 한국인 감독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경우도 논외로 하자. 그 분조차 지금은 SF 기획은 보류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전쟁 영화를 준비 중이시다. 내 생각에 지금 한국에서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급 SF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봉준호 외엔 없다. 봉준호보다 시나리오를 잘 쓸 자신이 있거나 감독이나 작가로 데뷔하고 필모그래피에 500만 영화 한 편, 1000만 영화 한 편을 추가시키기 전까진 절대로 SF는 쓰지 마라. 굳이 SF를 써야겠다면 소설을 쓰거나 만화를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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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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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난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친구 한 명이 좀비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러지 말라고 했다. 니가 왜 좀비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지는 알겠는데 무조건 쓰지 말라고 했다. 친구는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좀비 아이템이 얼마나 장점이 많고 매력적인지 주장하며 날 가르치려 들었다. 미국이나 영국같은 영화 선진국에선 잘 되는데 한국에선 아직 안 됐으므로 자기가 지금부터 쓰겠다는 것이다. 나는 다 알겠는데 그래도 쓰지 말라고 했다. 굳이 써야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왠만하면 쓰지 말라고 간곡하게 만류했다. 친구는 그래도 쓰겠다고 했고 나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가능할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1억 미만의 저예산 독립 영화가 아니라 메이저 자본이 투자된 블럭버스터급 좀비 영화가 제작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그 언젠가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친구의 나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기 이전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메이저 자본이 투자된 블록버스터급 좀비 영화 프로젝트는 무명 시나리오 작가가 야심차게 집필한 시나리오로부터 출발할 리도 없다.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업 영화계에 좀비 영화 프로젝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내가 아는 프로젝트만 해도 서너 건 정도 된다. 그것도 단편영화제 수상 경력이 전부인 이름 모를 감독 지망생이나 신인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감독들의 프로젝트들이다. 지금은 다 엎어졌거나 진행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고 있고 아마 향후 몇 년간은 그 프로젝트들을 극장에서 보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유명 감독들의 좀비 영화들이 왜 다 엎어졌거나 지지부진하고 있을까? 분명 시나리오의 문제는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그 시나리오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어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이나 영국같은 영화 선진국의 좀비 영화들에 비해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좀비 영화 특유의 사회적 불안감이나 의미 같은 것들이 세련되게 담겨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거나 자신이 좀비에게 물린 후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며 괴로워하는 장면들도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좀비 영화들이 성취해낸 것들을 넘어서진 못해도 비슷하게는 이루어냈을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먹고 좀비가 된다는 내용의 시나리오가 두 편 있었다.)


그러나 좀비 영화는 다 거기서 거기일 수 밖에 없는 면이 있다. 신인이 쓰건 기성이 쓰건 기획 회의를 여러 번 거치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면 기본은 나오는 반면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짜 낸다해도 기본 이상은 나오기 힘들다. 설령 시나리오가 기본 이상으로 나온다 해도 단지 좀비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프로젝트가 엎어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왜 좀비 영화라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지가 아니다.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를 잘 쓰고 못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게 중요한 것이다. 내 생각에 지금 한국에서 블록버스터급 좀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봉준호 외엔 없다. 박찬욱은 ‘흡혈귀’, 김지운은 ‘하드고어’를 만들며 ‘모두가 말려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씩 써버린 반면 봉준호에겐 아직 ‘모두가 말려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좀비 이야기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혼자서 백날 써봤자 영화화 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강풀이 지금 연재 중인 '당신의 모든 순간'이란 만화는 좀비 이야기다. 어쩌면 영화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강풀이니까'다.) 어느 날 갑자기 메이저 영화사가 속해있는 그룹의 회장님이 국산 좀비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하신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혼자서 좀비 이야기는 쓰지 마라. 내가 지금 나 혼자 잘 되겠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설마 남들은 좀비 이야기 못 쓰게 한 다음에 나 혼자 몰래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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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내가 직간접적으로 만나 보고 들어 보고 같이 일해 본 시나리오 작가들 중에서 일적으로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시나리오 한 편이 영화화되는 확률이 워낙에 희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업 도중에 작품이 엎어지고 돈도 떼이면 당연히 우울하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작품이 극장에 걸리거나 대박이 나도 우울하긴 매한가지였다. 쪽박이 나면 우울하다 쳐도 대박이 나도 우울한 건 왜일까? 작품이 대박이 나더라도 시나리오 작가에게 떨어지는 건 쥐꼬리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 작품이 자기 아이템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작가에게 뭔가 떨어질 수 있도록 계약을 잘 하면 될 것 같지만 ‘갑’은 ‘을’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일 년에 열 편 개봉하면 한 편 나올까 말까하다는 대박의 기쁨에 취해있는 누군가의 선처로 소정의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자기는 몇 년 간 죽도록 노력해서 쓰고 또 써서 천만원 이상 삼천만원 이하의 금액을 그것도 세 번에 걸쳐 나눠 받고 떨어졌는데 누구는 몇 억원대의 금액을 한 번에 챙겨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사람 마음이 원래 그런 법이다.


작업 과정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다 아는 얘기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 자체가 그리 즐거운 행위는 아니다. 개인 작업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생계형 시나리오 작가들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한 편 써서 공모전이나 인맥을 통해 업계에 이름을 알린 다음 오리지널 작업보다는 주로 영화사에서 아이템 의뢰를 받거나 각색을 맡아서 생활하게 되는데 회사에서 시키는 데로 써 가면 시키는 데로만 썼다는 소리를 듣고 나름 열심히 해보겠다고 시키는 것 이상을 써 가면 왜 쓸데없이 시키지도 않은 걸 써 왔냐는 소리나 듣기 일쑤다. 답답한 마음에 그럼 원하는 게 뭐냐고 시비거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정중하게 물어보면 그걸 알면 우리가 쓰겠죠 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암튼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경우는 한국 영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시나리오가 잘 나온다 해도 투자다 캐스팅이다 해서 여기 저기 돌다보면 백이면 백 누군가는 반드시 뭐라고 한 소리 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말도 안 되는 상대에게 시나리오 강의를 듣게 될 때도 있고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쳐야 될 때도 있다. 작가도 사람인지라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의욕이 없어지게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회사에서는 작가의 심리 상태를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슬슬 다른 작가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시키는 데로 고분고분 잘 따라도 완고까지 뽑아내긴 쉽지 않다. 작가에게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는 판단이 서면 점점 연락이 뜸해지다가 타이밍을 봐서 교체당하기 일쑤다. 이런 험한 꼴 당하기 싫어서 자기 마음대로 오리지널 작품을 써서 운 좋게 계약한다 쳐도 개발 과정에서 회사랑 노선이 달라지고 마찰이 생기는 순간 작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계약을 잘 하면 될 것 같지만 ‘갑’은 ‘을’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3~4년 전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계의 장기 불황 덕분에 이젠 작가에게 작업 의뢰를 하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영화사가 많지도 않다는 것이다. 다른 건 노력하면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업계의 불황은 작가 한 두 명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작 환경도 크게 변했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플란다스의 개>라는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입봉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이젠 <플란다스의 개>같은 시나리오가 바로 이렇겐 쓰지 말아야 될 시나리오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최소한 쓰지 말아야 될 것들을 알고 있어야 일 비슷한 거라도 해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시나리오를 쓰면 불행해진다는 걸 알고 나서도 굳이 써야겠다면 최소한 쓰지 말아야 될 것들이라도 알고 있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구조랑 캐릭터 연구도 중요하지만 이젠 잘 쓰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체가 어쩐지 잘 나가는 놈이 자기 살아온 얘기하면서 잘난 척하는 느낌이 나는데 내가 잘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비공식업무일지 카테고리의 아무 글이나 읽어봐도 알 수 있으니 오해가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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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Posted by 애드맨

지난 주 쯤 인가? 국내에 출간된 거의 모든 시나리오 작법 책을 읽은 기념으로 한국에 출간된 시나리오 작법 책의 어떤 경향에 대해 심심풀이 삼아 써 보려고 했는데 그런 걸 쓰느니 차라리 시나리오 작법 책을 새로 하나 써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작법 책을 쓰려고 하면 어떻게든 쓸 수는 있겠는데 내가 지금까지 쓴 시나리오 중에선 대박은 커녕 영화화 된 것조차 단 한 편도 없다는 것이다(내가 만든 단편 영화 제외). 부끄럽지만 공모전 예심조차 통과해 본 적이 없다. 지금 고작 한 두 편 쓰고 이런 얘기 하는 거 아니다; 심지어는 보조 작가로 참여한 작품 중에서도 영화화 된 것이 없다. 자랑이 아니다. 아니다. 어쩌면 자랑일 수도 있겠다. 한때 날고 기던 사람들도 일이 없는 요즘같은 세상에 그런 저질 경력으로도 지금까지 월급을 받아 먹고 살고 있는 게 누군가의 눈에는 대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물론 그간 나에게 월급을 준 대표님들에게는 언제나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기회와 능력이 되면 보은할 생각이다.


암튼 영화화된 시나리오조차 한 편 못 쓴 주제에 로버트 맥기보다 잘 쓴다 해도 아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사실 로버트 맥기보다 잘 쓸 자신도 없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 같은 사람이 시나리오 작법 책을 쓴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소린가? 당연히 말도 안 되지.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축구보고 술마시고 트위터하면서 놀러 다녔다. 그게 지난 주 까지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주 부터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관점에 따라선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시나리오 작법 책의 저자로 더 경쟁력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 작법 책에도 여러 분야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정쩡하게 한 편이라도 대박이 났거나 영화화된 게 서너 편이 있는 사람보다는 영화화 된 게 단 한 편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더 유리한 분야가 있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국내에 출간된 거의 모든 시나리오 작법 책에는 시나리오를 이렇게 저렇게 쓰라는 얘기 밖엔 실려 있지 않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나쁜 시나리오의 예시는 몇 번 본 기억이 나지만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라는 주제에 책 전체가 오롯이 할애되어 있는 건 못 본 것 같다. 비록 내가 안 되는 시나리오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직간접적인 경험에 의해 어지간한 사람보다는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뭘 어떻게 써야 되는지는 모르지만 뭘 어떻게 쓰지 말아야 되는지에 대해선 안다고 말 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써야 되는지를 알고 싶으면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으면 된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집필 습관에 대해 알고 싶으면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들의 101가지 습관을 읽으면 된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처음 쓰는 작가들에게는 어떻게 쓰면 되는지 만큼이나 중요한게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를 아는 것이다. 어떻게 쓰면 안 되는 지만 알아도 최소 몇 년은 절약할 수가 있다. 몇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지금까지 되도 않을 시나리오를 쓰느라 또는 되도 않을 시나리오에 참여하느라 낭비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릴라 그런다. 만약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예전부터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나마 현역에서 감을 유지하고 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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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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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 

참고로 이런 책들도 읽어 왔다.


더 읽어야 되나?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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