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환자에게 병 이야기를 안해주는게 환자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시나리오 안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시한부 병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시나리오는 또 쓰면 되는 거고 정 미련이 남으면 고치면 되는 거다. 게다가 굳이 내가 그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더라도 아무개는 조만간 자기 시나리오가 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는 아무개의 행복한 얼굴이 참 보기 좋았다. 몇 번 더 보고 싶다. 그래. 나는 그 얘기 못 들은 거다.

Posted by 애드맨


<애자>는 대박이었다. <친정엄마>도 대박날 것 같다. 모녀 시한부 영화는 100% 대박이므로 꾸준히 만들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애자>는 엄마가 시한부고 <친정엄마>는 딸이 시한부다. 그렇다면 다음 모녀 시한부 영화에선 누가 시한부로 나올까? 엄마가 시한부면 <애자>, 딸이 시한부면 <친정엄마> 따라했다는 얘기가 나올 것 같다. 누구를 시한부로 하든 따라했다는 얘기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엄마와 딸이 둘 다 시한부면 어떨까? 두 배로 슬플까? 그러고보니 예전에 남녀 주인공이 둘 다 시한부였던 <연리지>라는 영화가 있었다. 둘 다 시한부면 두 배로 슬프리라는 계산에서 나온 기획이었을까? 만약 엄마와 딸이 둘 다 시한부면 <애자>+<친정엄마>급의 대박이 터질 지 아니면 <연리지>처럼 될지 궁금하다.

관련포스팅
애자 기대된다 
친정엄마 기대된다
지진 영화 기대된다 

p.s.

Posted by 애드맨

우리 망해가는 영화사에는 제작비를 더 이상 구하지 못해 촬영이 중단된 영화가 한편 있다.


술마신 밤이면 늘 그렇듯 잠이 안와서 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는데 만약 그 영화가 끝끝내 제작비를 구하지 못하고 엎어지면 그동안 고생한 감독과 스텝들의 마음이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할지 내가 스텝이라고 생각하고 상상을 해 보았다. 천문학적인 피같은 돈을 날리는 투자자의 심정은 절대로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현장에서 밥차로 끼니를 때우며 모텔에서 수많은 날들을 지새우며 고생한 스텝들의 노고와 허무함은 억지로 상상하면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시나리오 작가의 원통함은 내가 미쳐 상상하지 못했었다. 제작이 중단되더라도 받을 돈 다 받았으면 그걸로 뭘찍건 신경끄고 다른 작품 구상하면서 행복하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영화사에서 진행하다 제작이 중단된 작품의 작가님은 그렇지 않았다.


방송국 드라마 작가와는 달리 한국 영화계에서의 시나리오 작가란 존재는 촬영과 동시에 잊혀진다. 고사 지낼때도 회사에서 불러는 주지만 자리에 모인 현장 스텝 중에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뻘쭘하게 절 순서를 기다리다 절하고 돈내고 집에 간다.


드라마는 한회 촬영 끝나면 시청자 반응보고 다음 회 대본을 작업하는 촬영과 집필의 동시 진행 시스템이지만 영화는 촬영 전에 대본을 다 써서 넘겨버리기 때문에 크랭크인 후에는 작가의 이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하여간 시나리오 작가의 원통함을 알게 된 계기는 촬영이 중단된 채 오랜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고 있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의 남자 친구와의 전화통화였다.

어느 날 저녁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길래 사채광고 전화겠거니 생각하고 심드렁하게 받았다. 잠깐의 침묵 후 낯선 남자가 내 이름을 대며 아무개씨 핸드폰이죠? 라고 묻는 것이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호감형은 아니어서 잠깐 긴장을 했는데 남자는 자기가 제작 중단된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의 남자 친구라고 정체를 밝혔다.


작가의 남자 친구가 왜 나한테 전화를 했는지 작가는 왜 남자 친구를 시켜서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그 작가와 친하지 않아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잠깐 머리가 복잡했는데 남자는 내가 그걸 궁금해할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작가와 친한 우리 영화사의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전화를 해봤는데 통화가 되질 않아서 결국 알지도 못하는 나의 핸드폰 번호를 명함에서 찾아보고 전화를 했다고 자초지종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었다. 여자 작가가 소심한 성격이라 명함만 받았지 말 한번도 안해본 나에게 전화하는 걸 쑥스러워하길래 옆에서 보고 있기 안스러워 자기가 나섰다는 것이다.


일단 왜 다른 사람들이 작가의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이 없어서 촬영을 못하고 있고 마지막 촬영 이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돈을 구할 확률은 낮아지고 엎어질 확률은 높아지고 있는데 그 사실을 조만간 자신의 시나리오를 스크린으로 볼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게 행복해하던 작가에게 통보하는 악역을 맡기가 싫었던 것이다.


정밀 건강검진을 마친 환자에게 당신은 시한부 인생이니 남은 인생 잘 정리하세요라고 말하는 의사의 심정과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때로는 남은 인생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환자일 경우에는 보호자와 상의 후 환자의 심적 충격 완화와 모르는게 약이라는 이론을 근거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고도 들었다.


나는 제작 중단된 작품의 작가의 남자친구에게 조만간 다시 촬영이 시작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거침없이 밝은 톤으로 말해주었다. 남자는 정보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엿듣고 있던 여자 작가의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그때가 저녁 6시쯤이었는데 두사람은 나의 거짓말을 듣고 기분 좋다고 비싸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갔을 수도 있겠다.


나에겐 거짓말이 아니라 영화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고 싶다는 꿈이 있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