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유머? 회색 플롯? 붉은 감정?


'곡성'이 다섯개라 '아가씨'도 다섯개 예상했는데 네개 줬다.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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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기대된다


Posted by 애드맨



개봉일

2016.06.01.


흥행예상

기대 > 우려


‘곡성’은 간만에 영화 외적으로 흥미진진한 한국영화였다. 특히나 영화 한 편에 이 정도로 인터넷이 후끈 달아오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즐거웠다. 여러모로 흥미진진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했던 순간은 이동진이 별 다섯 개 만점을 줬을 때다. 물론 이동진 말고도 거의 모든 평론가와 기자들이 별점을 후하게 준 편이지만 중요한 건 이동진이 별 다섯 개를 줬다는 것이다. 만약 이동진이 별 다섯 개가 아니라 세 개나 네 개를 줬다면 이동진 외 평론가와 기자들 전부가 단 한 명도 빼지 않고 별 다섯 개를 줬더라도 이 정도의 이슈몰이는 안 됐을 것이다. 난 이동진이 별 다섯 개를 줬지만 영화가 흥행에는 실패할 줄 알았다. 영화를 봤지만 아무리 따져 봐도 흥행에 성공할 영화는 아닌 것 같았고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니 관객 반응도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평론가와 기자들보단 별로였다. 그런데도 흥행에는 성공했다. 지금 이 기세대로라면 오백만은 가뿐히 넘을 것이다. 이동진이 별 다섯 개를 줬으니 별 하나에 백만씩 든 셈이다. 평론가가 좋아하는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속설 비슷한 게 있었는데 이동진은 예외가 됐다. 이동진이 다 이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건 다다음주쯤 개봉하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는 과연 이동진이 별 점을 몇 개 줄 것이냐다. 만약 내가 이동진이라면 ‘곡성’을 아무리 좋게 봤어도 조만간 개봉할 ‘아가씨’를 위해 별 점을 한 개 정도 아꼈을 것 같다. 네 개만 줬을 것이다. ‘곡성’에 별 네 개, ‘아가씨’에 별 다섯 개라면 모두가 아무런 논란의 여지없이 화기애애 훈훈 해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곡성’에 이미 별 다섯 개를 줘 버린 게 문제(?)다. 이제 ‘아가씨’에도 별 다섯 개를 주지 않으면 그림이 이상해질 것 같다. 게다가 ‘아가씨’는 칸느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칸느라고 다 똑같은 칸느가 아니다. 물론 이동진이 그런 영화 외적인 이유로 별점을 주는 평론가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영화 개봉 후 감독과 배우들을 모시고 GV도 진행해야 되는 입장에서 ‘아가씨’의 별점이 ‘곡성’보다 적다면 GV 무대 뒤 분위기가 불편해질 지도 모르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아가씨’에 ‘곡성’이랑 똑같이 별 다섯 개를 준다 해도 뭔가 이상하다. 별점 평가라는 게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보는 이도) 마찬가지다. 동급으로 분류해줬다는 또는 분류 당했다는 얘긴가?


암튼 여러모로 ‘아가씨’의 흥행 여부보다 이동진의 별 점 수가 더 궁금해졌는데 조심스럽게 별 다섯 개 예상해본다. 관객도 별 하나에 백만씩 오백만쯤 들 것 같다.


p.s.




Posted by 애드맨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전철과 버스는 끊겼지만 택시비를 아껴보겠다고 한시간 넘게 집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버스 정류장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처음보는 미모의 아가씨 한명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갓길에는 그녀의 차로 보이는 인피니티 한대가 서있었다. 인피니티를 타는 미모의 아가씨의 존재는 심야 새벽길을 홀로 걷는 남자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구시길래 무슨 일로 저런 럭셔리한 미모의 아가씨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고함을 지르며 통화를 하는걸까 궁금했지만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괜히 구경하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관심없는 척 느린 발걸음으로 내 갈길을 가고 있었다. 인피니티는 짙게 선팅되어 있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는데 어쩐지 그 안에는 남자가 한 명 타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너 지금 어디야. 왜 전화 안 받어. 자꾸 거짓말할래?>등의 대사가 하이톤으로 들려오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이성과의 통화 같았다. 상대방이 아가씨의 전화를 피하고 있기 때문에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짐작됐는데 내가 옆으로 지나갈 때쯤 <여보세요. 여보세요. 말해! 안들려?>라는 대사가 들려왔다. 전화가 끊긴 것이다. 아가씨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중전화 주변엔 나외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둘러보더니 고함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얼굴 표정으로 어리버리한 인상의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솔직히 무서웠다.


아무리 미모의 아가씨라도 인적이 드문 새벽길에서 무서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으면 반가울 리가 없다. 이쁜 아가씨 뒤엔 남자가 있기 마련이어서 지금 저 차안에는 나보다 덩치 크고 싸움도 잘하는 남자가 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언제 무서운 얼굴로 소리를 질렀냐는 듯 3월의 햇살 같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성큼 성큼 다가왔다.


길거리에서 사탕이 포장된 안마 전단지 나눠주는 여대생(?) 말고는 나에게 이렇게 과감하게 다가오는 아가씨는 겪은 적이 없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뒷걸음질을 치는데 그녀는 간드러진 눈웃음과 애교섞인 목소리로 <죄송한데요. 핸드폰 좀 빌려주실래요?>라 말하며 섬섬옥수같은 손을 고압적으로 내밀었다.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핸드폰만 빌려주면 뭐라도 빼줄듯한 미소를 날리는 처음보는 아가씨에게 핸드폰을 빌려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과 빌려주지 않았을 때 포기해야할 가능성이 정신없이 머리 속에서 교차했다. 가까이서 보니 인피니티 안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이 야심한 밤거리는 보기와는 다르게 과감한 그녀와 나 우리 둘만의 거리였다.


처음보는 남자에게 거침없이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말할 수 있는 대담함과 이 여자가 나에게 한눈에 반했나 싶은 착각에 아무 말 없이 통화료가 한달 연체중인 핸드폰을 기꺼이 꺼내주었다. 인피니티를 타고 다닐 정도의 여자가 핸드폰 통화료 아끼겠다고 남의 핸드폰을 빌릴 것 같진 않았고 그녀와는 달리 내차는 커녕 통화료도 한달 연체중인 내가 돕지 않으면 안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려니 했다.


겨우 핸드폰 하나 빌려준 걸로 생색내긴 싫었지만 혹시나 핸드폰을 빌려준 대가로 집에까지 태워다 주겠다면 어쩌나 내 핸드폰에 자기 번호를 알아서 저장해버리면 어쩌나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였다. 그녀는 거침없이 폴더를 열더니 다시 무서운 얼굴로 변신한후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어두워서인지 나이를 짐작하기는 힘든 스타일이었다.


<엄마다. 너 오늘 학원 빠졌다며? 엄마한테 자꾸 거짓말하면 아빠한테 이른다. 빨리 안 들어와!! 거기 어디라구? 엄마가 데리러간다니깐!!>


아가씬줄 알았던 그녀는 아들과의 통화를 짧고 굵게 마치고 뻘줌하게 서 있는 나에게 <고마워요.>란 말과 함께 핸드폰을 돌려주고 인피니티를 타고 밤거리로 사라졌다.


그녀가 나를 두고 떠난 이 거리. 내 핸드폰엔 그녀의 아들 전화번호가 찍혀있었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