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01 인연이 멈추는 순간
  2. 2008.03.22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영양가 (2)

몇 년 전 쯤 아무개는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놈이라고 평가 한 적이 있다. 내가 영양가가 없기로 유명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하자 영양가도 없는 놈을 뭐 하러 만나냐며 자기 같으면 그럴 시간에 차라리 영화나 한 편 더 보겠다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친구 사이에는 영양가가 적용되지 않는 줄 알았기 때문에 친구 사이에 영양가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아무개를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었다. 안타깝게도(?) 영양가가 없기로 유명한 누군가와의 만남은 변함없이 영양가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재미도 없었다. 솔직히 이 넘을 왜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한 두 번 든 게 아니다. 아무개의 말대로 이럴 시간에 차라리 영화나 한 편 더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인연을 끊어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엔 아무개와의 통화가 예전같지 않다. 별다른 용건없이 잡담이나 하려고 몇 번 전화를 걸었는데 매번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금방 끊어버린다. 물론 전화가 다시 걸려오는 일은 거의 없다. 아무개의 기준에 의하면 이제는 나도 영양가가 없는 놈인가 보다. 아마도 요즘이 우리의 인연이 멈추는 순간일 것이다. 인연이 끊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멈추는 순간인 이유는 아무개의 평소 행실로 보건데 나에게 다시 영양가가 생겼다고 판단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무개가 엄청 영양가 있어 보일 지도 모르겠는데 알고 보면 아무개나 나나 다들 영양가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도토리 키재기라고나 할까? 이 모든 건 한국영화산업의 장기 불황으로 인해 영양가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어진 시대 분위기 탓일 지도 모르겠다. 암튼 아무개의 말대로 영양가 없는 무의미한 만남보다는 차라리 영화나 한 편 더 보는 게 나은 건 사실이지만 영양가 없는 것들끼리 더 아끼고 위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Posted by 애드맨

갑자기 뭔가 부탁할 일이 생겨 망해가는 영화사를 대학교 동아리 탈퇴하듯 그만둔 전직 엘리트 인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열 두어번 울리더니 소리샘으로 연결되었다.


설마 그래도 한 때는 한 식당 테이블에서 5천원짜리 백반을 나눠 먹던 사이였던 전직 엘리트 인턴이 해가 중천에 뜬 화창한 대낮에 내 전화를 받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도 극장에 있거나 도서관에 있거나 자고 있거나 목욕 중이거나 등등 내 전화를 받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1시간 정도 지난 후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이번에도 통화는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두 번 밖에 전화를 걸어보지 않았고 삼세번은 기본이란 생각에 혹시나 해서 30분 정도 지난 후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통화는 되지 않았다. 내 전화를 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확인사살 차원에서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 문자는 괜히 보낸 것 같다.


전직 엘리트 인턴은 아마도 내 전화 받아봤자 아무런 영양가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 따위의 전화를 받아봤자 자신의 인생에 도움 될 일은 커녕 귀찮기만 할 거란 생각에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억울해서라도 이대로 망해가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조만간 대박 영화를 만들어 전국 관객 500만명을 돌파시켜 대박 영화 기획자가 되자. 그리고 언제나 괜찮은 기사가 많이 실려있는 영화 주간지 필름2.0에서 인터뷰 제의가 오면 마지못해 수락한 다음 (씨네21의 인터뷰 제의는 두 번 정도는 거절할 생각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망해가는 영화사가 한참 망해갈 때 망해가는 영화사를 대학교 영화 동아리 탈퇴하듯 그만둔 전직 엘리트 인턴이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 따위의 전화를 받아봤자 자신의 인생에 도움 될 일이 하나도 없을 거란 생각에 끝까지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걸 보고 반드시 대박 영화를 만들어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우스개 소리처럼 해 주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우연히 전직 엘리트 인턴이 지하철 같은 곳에서 필름2.0을 돈 주고 사서 보다가 한 때는 자기가 전화조차 받지 않았던 무능력하고 시니컬하기만 했던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이 대박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게 다 훌륭한 감독과 물건을 볼 줄 아는 투자사 덕분이라고 겸손한 척 하며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때 내 전화를 세 번 연속으로 받지 않고 문자에 답장도 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되겠지...??


그냥 웃자고 해 본 소리였고 사실 나도 영양가 없어 보이는 무능력한 지인의 전화는 어지간하면 받지 않는 편이라 엘리트 인턴을 비난할 입장이 아니다. 흥행참패라는 형극의 가시밭길을 걷고 계시는 몇몇 감독님들의 전화를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이유로 여러 번 무시했고 지인들이 모니터 좀 해달라며 보내줬지만 한 장도 읽지 않은 시나리오들이 내 컴퓨터 속 폴더 안에 1기가는 될 것이다. 물론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영양가 있어 보이는 지인들의 전화는 전화벨이 세 번 이상 울리기 전에 받는 편이고 그런 지인들이 문자를 보내면 대부분 전화 통화로 화답했다.


이런 게 인과응보라는 걸까?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