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애드맨입니다.

매년 이맘 때쯤 되면 진학, 진로 상담 메일을 보내주시는 분이 계신데요 정중히 사절하겠습니다.
진로 쪽으론 조언을 드릴 자격이 없고 연극영화과쪽 사정은 입학한 지 오래돼서 잘 모르거든요.

매번 똑같은 내용 복사해서 일일이 답장을 드리기도 좀 그렇고 해서 걍 공지로 올립니다.

p.s. 영화 관련 수업 리포트 도움 메일도 사절요. 저 공부 못했어요(졸업평점 3점 이하) ^^;
 
Posted by 애드맨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하곤 했지만 이젠 어린 나이도 아니고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안달이고 다니고 있는 사람은 나오기 싫어서 안달이고 심지어는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는 번듯한 대기업을 설마 제 발로 뛰쳐나올 리는 없을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냥 배부른 소리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한 달 안으로 사표를 낼 예정이라며 구체적으로 날짜까지 얘기하는 걸 보니 이번에는 진짜로 그만두려는 것 같았다. 회사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친구라도 다니기 싫을 것 같긴 했다. 역시 세상엔 공짜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말렸다. 진정한 친구라면 말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내 마음은 잘 알겠는데 많이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라며 진지하게 진로 상담을 부탁했다. 나는 분명히 말렸다고 나중에 내가 말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구체적인 진로 상담에 들어갔다. 일단은 니가 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감독이 되고 싶은 거라면 영화 아카데미 같은 곳에 진학하거나 단편 영화를 찍어보거나 방에 틀어박혀서 장편 시나리오를 쓰면 되고 작가가 되고 싶은 거라면 시나리오 학원 같은 데 다니면서 글만 쓰면 되고 PD가 되고 싶은 거라면 제작부를 하거나 돈 많은 지인을 끌어들이거나 CJ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면 된다고 조언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구는 그런 일은 하기 싫고 기획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정확히는 기획 일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냥 데스크 일만 하고 싶다는 거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니가 생각하는 기획 일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는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걸 영화로 만들라고 시키는 일이 기획 일 아니냐고 대답했다. 나는 그게 기획 일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니 상황에서 니가 생각하고 있는 기획 일을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주었다. 친구는 그럼 어떻게 해야 자기가 생각하는 기획 일을 할 수 있는 건지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니가 지금 다니고 있는 대기업에서 초고속 승진을 해서 파워맨이 된 다음 영화 사업부 같은 걸 만들어서 거기 ‘짱’이 되면 니가 생각하고 있는 기획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다. 회사에서 나와 바닥부터 새출발하는 것 보다는 그게 훨씬 빠를 거라고 추가 설명도 해주었다.

친구는 알았다고 했다. 내 말을 잘 알아들었다면 한 달 안으로 사표를 내진 않겠지만 어차피 사람 일은 모르는 거고 회사를 그만두면 더 잘 될 수도 있는데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