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문 주간지도 한국영화만큼이나 어렵다는 얘기를 작년 초부터 들어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몇 주간은 필름2.0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결국 못 구했다.)
영화 전문 주간지는 어둠을 밝혀주는 한국영화의 등대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필름2.0 없는 한국영화는 상상할 수 없다.

올해부터는 걱정만 하지 말고 필름2.0을 보다 더 자주 사봐야겠다.

Posted by 애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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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꿈은 텔레비전에 나와 보는 게 아니라 필름2.0이나 씨네21 같은 영화 주간지에 실려 보는 것이었다. 필름2.0이나 씨네21 같은 영화 전문 주간지에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한 특집 기사가 <한국 예술영화가 도달한 절경> 같은 제목과 함께 서너 페이지에 걸쳐서 실리고 정성일이나 김영진 같은 훌륭한 평론가님들에게 ‘참 잘했어요’ 라는 칭찬도 받아 보고 싶었었다.

필름2.0이나 씨네21 같은 영화 전문 주간지에 실리기 위해 영화를 잘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그날 이후 하루 이틀 삼년 사년 영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어정쩡하고 무의미하게 세월을 흘려보내다보니 나도 모르게 필름2.0이나 씨네21 같은 영화 전문 주간지에 실려보겠다는 꿈은 서서히 희미해져갔고 정성일이나 김영진 같은 훌륭한 평론가님들에게 ‘참 잘했어요’ 라는 칭찬을 받아보고 싶기는 커녕 그저 어떻게든 한 편이라도 만들어서 극장에 단 몇 일 만이라도 걸어봤으면 바라게 되었다. 그나마 작년부터는 어떻게든 한 편이라도 만들어서 극장에 걸어보기는커녕 어떻게 해야 이 바닥에 붙어있을 수 있을 지만 궁리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정확히 일년 전 오늘이었다.

하고 있던 일은 도저히 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될 지도 모르겠고 새벽인데 잠도 안 오길래 나도 모르게 블로그라는 걸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블로그를 만들긴 했는데 뭘 올려야 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런 글 올렸다가 욕이라도 먹고 상처라도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글을 올렸는데 고맙게도 몇몇 님들이 덧글을 달아주셨다. 남이 만든 블로그에 덧글이 달리는 건 봤어도 내가 만든 블로그에 덧글이 달린 건 처음이었고 누가 돈을 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 블로그를 열심히 한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엔 또 어느 님들이 덧글을 달아주시는지 확인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재미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술에 취하거나 멀쩡하거나 졸리거나 말거나 슬프거나 울고 싶거나 매일 매일 꼬박 꼬박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물론 1년간 블로그를 열심히 해 온 것과는 상관없이 하고 있던 일은 여전히 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점점 더 깝깝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블로그를 하던 중 하루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덧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스타일의 비밀 덧글이 올라왔다. 한국 최고의 영화 전문 주간지 필름2.0에 내가 만든 블로그에 대한 글이 실렸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블로그를 하며 다양한 종류의 덧글을 읽어왔지만 이런 스타일의 덧글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필름2.0에 내가 만든 블로그에 대한 글이 실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12시가 넘은 심야 새벽에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나가 필름2.0을 확인해보았다. 새벽 시간이라 손님이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서 한참을 필름2.0을 이리 저리 뒤적이며 도대체 어디에 내가 만든 블로그에 대한 글이 실렸다는 건지 찾아보고 있었는데 편의점 매니저가 다가왔다. 편의점 매니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지금 내가 뒤적이고 있는 필름2.0이 내 소유의 필름2.0이냐고 물어왔다. 당연히 아니라고 하니까 필름2.0을 살 것도 아니면서 편의점 안에서 그렇게 오래 동안 읽으면 안 된다고 했고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 빈 손으로 편의점에서 나왔다. 덧글을 달아주신 건 고마웠지만 조금 허무했다. 그 당시엔 블로그를 하다보니 정말 별 일을 다 겪는구나 싶었는데 과연 몇 일 뒤엔 내가 그 때 읽었던 필름2.0의 다음 호에 내가 만든 블로그에 대한 글이 실려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를 안 만들고도 필름2.0 같은 영화 전문 주간지에 실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드디어 텔레비전이 아니라 영화 전문 주간지에 실려보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이루어져서 기분이 좋긴 했는데 블로그의 성격상 차마 필름2.0에 실린 블로그가 내가 만든 블로그라고 평소에 영화 일을 하며 알게 된 지인들에게 자랑할 수가 없어서 조금 안타까웠다. 미친 척 하고 자랑해보려고도 했는데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게 뻔해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하여간 생각지도 못하게 어릴 적 꿈이 이루어지고 나니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블로그를 하고 있었는데 필름2.0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언제나 좋은 칼럼으로 영화를 보는 눈을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주신 장병원 편집장님과 김영진 기자님이 필름2.0에 마지막 칼럼을 올린 것이다. 두 분의 마지막 칼럼을 읽고 나서야 한국 영화만큼이나 한국 영화 전문 주간지도 어렵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고 마지막 칼럼이라고 생각하니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구구절절히 가슴 속에 사무치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러프컷은 그 동안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읽어왔을 정도로 김영진 기자의 팬이었고 나의 어릴 적 꿈을 실현시켜주신 장병원 편집장님에게도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마지막 칼럼을 읽게 되서 가슴이 아팠다. 비록 필름2.0에서는 더 이상 김영진 기자님과 장병원 편집장님의 칼럼을 읽을 순 없겠지만 벌써부터 다른 어딘가에서 읽게 될 다음 글들이 기다려진다.

기대된다.

p.s. 감동의 순간 : 필름2.0엔 참 좋은 기사가 많습니다

Posted by 애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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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도 좋은 기사가 참 많았습니다.
필름2.0 최고에요!
Posted by 애드맨
TAG 필름2.0

필름2.0 김영진 기자를 좋아한다. 김영진 기자가 연재하는 러프컷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읽어오고 있다. 이번호 러프컷 영화광의 꿈과 생활인의 응시도 역시 좋은 글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영진 기자가 교수라는 사실이다.

물론 교수도 생활인이고 나름대로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는 직업이겠지만 전업 영화 잡지 기자보다는 훨씬 편하고 배부르게 느껴진다. 여전히 김영진 기자의 글은 훌륭하고 감동적이지만 김영진 기자가 아니고 김영진 교수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글을 읽어보면 배부르고 등따시니까 이런 글이 나오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진정성이 떨어진다거나 글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느낌은 아니다. 다만 강건너 불구경한다는 느낌?

지난 주 러프컷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본 두편의 영화 생각에서 김영진 기자는 '구로사와 기요시와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의 체력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젊은 감독들의 허영기 없는 맷집이 긴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외형적으로 풍요로운 듯 보이지만 영화적 정체에 대한 사고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한국영화계도 이미 폐허 같은 지점에 와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영화학과 학생들에게 영화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는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이지만 영화산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영화 잡지 기자가 쓸 필요는 없는 글이었다.

만약 박봉에 시달리는 전업 영화 잡지 기자가 저런 글을 쓴다면 상당히 멋있어 보일 것 같다는 아쉬움에 두서없이 끄적여 보았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