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거의 안 보는 편인데 박신양이 연기를 가르치는 콘셉트의 예능이 나왔다고 해서 찾아봤다. 1화는 감동적으로 봤다. 간만에 TV보며 울컥했다. 뜬금없이 나의 지난날들도 반성이 됐다. 박신양의 가르침 하나하나가 다 인상적이었다. 어딘가에 메모해두고 싶을 정도였다. 다들 잘 해주길 바랐지만 장수원을 가장 응원했다. 장수원과 유라의 ‘사랑과 전쟁’을 본방으로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장수원의 ‘배우학교’ 이후의 활약이 기대됐고 언젠가 근사한 드라마나 영화에 캐스팅돼서 명연기를 펼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화를 다 보고 2화를 보기 전에 잠깐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문득 나도 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사실이다. 영화과에 다녔지만 연기 수업도 들었다. 그때 그 교수님도 제법 혹독했었다. 박신양과 똑같진 않았지만 대충 비슷한 분위기였다. 내가 알기론 외국은 모르겠는데 한국 연기 수업은 대충 다 저런 분위기다. 그리고 그때 그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들도 몇몇 떠올랐다. 대충 스무 명 쯤 됐던 것 같은데 그들 중에 지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아니 한 명도 없다.
어느 연기 교수님은 학기 초에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는 말을 했었다. 배우만큼 노력과 결과가 랜덤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배우라는 게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고 특히나 여학생들의 경우엔 연기력만으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캐스팅의 벽에 부딪힐 게 뻔히 보여 연기를 가르칠 게 아니라 양심상 일찌감치 다른 길을 권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2화를 보니까 1화를 볼 때는 안 보이던 게 보였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마 저 멤버들 중에서 연기 수업을 처음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박신양이 내주는 숙제들도 처음이 아닐 것이다. 똑같진 않을 수 있지만 대충 비슷한 숙제들은 많이 해 봤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해보니 장수원은 경희대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갑자기 박신양이 1화에서 학생들에게 했던 연기를 왜 배우고 싶냐는 질문이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건 취업 면접 때 면접관들이 흔히 하는 우리 회사에 왜 지원했냐는 질문과 다를 게 없다. 연기를 배우는 이유는 별 게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 한 번이라도 더 출연해 언젠가 스타가 되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잠깐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건 예능을 다큐로 착각한 내 잘못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생각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2화는 재미가 1화보다는 덜했다. 원래 연기 수업 구경이라는 게 재미가 있을 수가 없다. 역시나 시청률도 1화보다 떨어졌다. 3화 예고를 보니 발레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설상가상이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시청률은 더 떨어질 것이다. 아무리 발레가 연기에 도움이 된다지만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건 연기 수업이 아니다. 제작진들도 나처럼 예능을 다큐로 착각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예능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캐릭터들 사연인데 배우학교의 콘셉트 상 그 쪽으론 더 이상 나올 게 없으니 제작진들도 답답했을 것 같다.
이건 좀 다른 얘기다. ‘배우학교’의 소개 영상에서 신입 학생들이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처럼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장면이 있으니까 하는 말인데 지금 생각하면 닐은 아버지의 강요대로 군사학교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에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가 되겠다고 뻔한 연기학교에 가서 남들 다 하는 연기 수업을 듣는 것 보다는 군사학교에서 또래 배우 지망생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해 보는 게 길게 보면 연기 인생에도 더 도움이 됐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타깝다.
p.s. 오 캡틴 마이 캡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