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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5 엔딩크레딧_9회

혹시나 회사 사람들에게 자기와 민정이 함께 있는 걸 들킬까봐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준호와는 달리 민정은 전혀 죄 지은 기색 없이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민정은 술집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처음처럼’ 한 병을 시켰다. 입사동기이긴 하지만 아주 친한 편은 아니어서 둘만 따로 앉게 되자 조금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오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평상시랑은 뭔가 다른데?”

 “일은 무슨... 넌 어때? 기획팀 일은 좀 할 만해?”

 “할만하지. 연출부 일에 비하면 천국이지.”

 “뭐가 천국이야?”

 “보고 싶은 책이랑 영화 실컷 보면서 월급까지 받잖아.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딨겠어?”

 “그래? 아무리 그래도 남자 나이 서른에 월급 백이면 너무 짠 거 아냐?”

 “훗훗. 내가 영화과 졸업하고 삼년간 연출부 세편 하면서 받은 돈 다 합쳐도 여기 석 달 다니면서 받은 월급보다 작아.”

 “헉. 그럼 연출부 연봉이 백만원이었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한데 내 경우엔 그랬어. 못 받은 돈도 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올모스트 백만원이었지. 난 진심으로 기획팀 일 사랑해. 대표님도 사랑하고. 영화하는 동기들 중에선 내가 돈 제일 잘 벌걸?”

 “그렇구나.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궁금증?”

 “널 보면 뭐랄까. 항상 행복해 보이더라구. 보통 서른 먹은 남자라면 월급 백 받으면서 딱히 비전도 없는 회사 다니면 우울할 수 밖에 없거든.”

 “하아. 그랬구나!”


준호가 민정의 말에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몰라 애매하고도 씁쓸하게 맞장구를 치는 순간 종업원이 메뉴판과 함께 ‘처음처럼’을 가져왔다. 민정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해물 떡볶이 주세요. 괜찮지?”

 “응. 나 떡볶이 좋아해. 사실은 알탕이 더 땡기긴 하지만.”

 “그럼 해물 떡볶이 먹고 나서 알탕도 시켜. 오늘은 내가 살께.”

 “막걸리는 안 좋아하나봐? 요즘엔 막걸리가 대세던데.”

 “그럼 넌 막걸리 마실래?”

 “아냐. 난 소주도 좋아;;”

민정과 준호는 서로의 잔을 듬뿍 채워주고는 첫잔을 깔끔하게 원샷했다. 민정이 먼저 준호의 잔을 채워줬고 준호가 두 손으로 민정에게 술을 따랐다.


 “야. 한 손으로 따러. 니가 무슨 호스트라도 되냐?”

 “헤헤. 미안. 넌 어때? 다닐만해?”

 “음. 관둘거야. 요즘 다른 회사 알아보고 있는 중.”

 “왜? 왜? 왜?”

 “너무 짜.”

 “다른 영화사 가도 별 반 다르지 않을텐데?”

 “영화 쪽 말고 아예 다른 업종으로 옮기려고.”

 “서운하다. 이제 좀 정 들기 시작했는데...”


민정은 준호의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또 다시 소주 잔을 원샷했다. 준호는 민정이 잔을 비울 때마다 재깍 재깍 잔을 채워줬지만 민정은 잔이 채워지기가 무섭게 원샷을 반복했다. 빈병이 한 병 두 병 늘어갔고 준호는 얼떨결에 민정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가 보통 때보다 훨씬 빨리 취해 버렸다.


 “너무 빨리 마시는 거 아냐?”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입사동기한텐 알려줘야 될 것 같아서.”

 “그래! 아무튼 다른 회사 가서도 잘 살구. 나 너 없으면 앞으로 회사 어떻게 다니니! 벌써부터 외롭다. 당장 내일 점심은 누구랑 먹어야되냐! 으앙.”

 “나 내일 관둘 거 아니거든?”

 

술에 취해서일까? 준호의 눈에 민정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엔딩크레딧_8회(5)2009.11.25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