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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4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조촐한 송별회 (1)
  2. 2007.10.18 망해가는 영화사 직원의 송별회1

망해가는 영화사에 사직서를 내고 온 새침떼기와 소주를 마셨다.


새침떼기를 생각하면 언제나 맞은 편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하는 해맑은 얼굴이 기억난다. 영화인의 꿈을 이뤄보겠다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우리 회사에 힘들게 들어와 정말 열심히 일할 각오를 했었지만 결국 한 작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사회 초년생의 눈에 훌륭한 인생 선배로 기억되고 싶어서 발전적인 관계로 잘 지낼 수 있을만한 사람들도 소개시켜주고 좋은 말도 많이 해 준다고 했는데 결국 그녀의 인생에 별 도움은 되지 못한 실속없는 인생 선배로 남게 됐다.


그녀는 그토록 바라던 현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비록 모두에게 축복받는 유명한 스타가 나오는 영화는 아니고 개봉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큰 저예산 독립 영화지만 드디어 현장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안 그래도 큰 두 눈이 유난히 반짝 반짝 빛났다.


제목을 들어보니 예전에 시나리오를 읽어본 기억이 났다. 넘버투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를 내가 먼저 읽은 후 투자 부적격 판정을 내렸고 혹시나 해서 읽어본 넘버투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린 후 잊어버린 바로 그 영화였다. 왠만하면 메이저 영화사에서 스타가 두 명 이상 나오는 영화 현장으로 가라고 말해주려다 도와 주지도 못할 거면서 괜한 소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자격지심에 입을 다물었다. 하긴 그런 영화 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겠지.


자기도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흥행이 잘되거나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무작정 현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 밖에 없고 어떻게든 현장에서 살아남아 나중에 영화사를 차리고야 말테니 행운을 빌어달라고 했다. 굿럭.


회사 차원의 송별회는 없었다. 현장일을 갑자기 하게 됐고 사직서도 급하게 냈기 때문이다.


문득 나를 위한 송별회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는데 나를 위한 송별회 따윈 열리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들 오늘 내일 하는 마당에 누가 누굴 위해 송별회를 준비하겠는가. 우리 회사의 첫 송별회는 삼겹살에 소주였고 두번째 송별회는 중국집요리와 맥주였다. 그때 떠난 직원들은 비교적 융숭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이런 게 타이밍이라는 걸까?


그녀는 헤어지기 전에 대표님 차가 더 좋은 차로 바꼈다며 회사 사정이 좋아진 것 같으니 희망을 가지라고 했다. 회사 사정은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리가 없다는 걸 여러 루트를 통해 들은 바가 있어 뻔히 아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려운 때 일수록 기죽지 않고 절대 불황의 파도를 더 좋은 차로 타고 넘으려는 대표님의 사나이다운 기개가 느껴졌다. 이런 게 역발상이구나.

정말 우리 대표님은 일반인들과는 스케일 자체가 다른 대인배시다.
대표님 최고!

Posted by 애드맨

투덜이직원의 송별회가 있었다.


거창한 자리는 아니고 마지막으로 조촐하게 저녁 식사나 같이 하는 자리였는데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우리 대표는 한번 부하직원은 영원한 내 식구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데려간다는 마인드라고 들었다. 대표가 아무리 그렇게 생각을 해도 월급이 안나오고 비전이 안보이면 고맙긴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되니까 떠날 수 밖에 없다. 하여간 투덜이 직원은 고전적인 스탈의 미남이고 명문대 출신의 유학파라 대표가 유독 아끼고 관심을 보이던 직원이었는데 회사가 어려워지자마자 떠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대표에게 귀염을 받기는 커녕 투자된 급여에 비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눈치만 보고 있는 처지라 아마 사직서를 내도 그러려니 할 것 같다. 기획팀 식구 전부가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송별회는 주변 건물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삼겹살 집에서 이루어졌다.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고 자리를 잡긴 했는데 직원들이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다들 이런 저런 일들이 있다는 이유로 하나 둘씩 따로 따로 나타나서 다 모일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제일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던 나는 투덜이와 둘이서 옛날 얘기를 하며 어색한 시간을 때울 수 밖에 없었다.


어영부영 직원들이 다 모이자 전혀 흥이 나지 않는 건배를 하고 주섬주섬 고기를 주워먹은 후 한시간도 지나기 전에 송별회가 끝났다. 부어라 마셔라 나가서도 우리 잊지 말고 잘 살아라 하는 흥청망청 분위기는 없었고 떠나는 이도 보내는 이도 찝찝하고 어색한 송별회였다. 회사가 망해가는 마당에 누가 누굴 위로하고 축하해주겠는가.


주된 화제는 회사 나가서 뭐 할거냐였는데 투덜이가 앞으로 영화는 안 할거구 아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서 안정된 여생을 누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자 몇몇 고참 직원들의 은밀한 비웃음이 숯불에 고기타는 연기 사이로 흘러내렸다. 대기업이면 대기업이지 아무 대기업이 어딨냐며 잠깐 웃어들댔지만 다시 자리는 잠잠해졌다.


어제까지는 부하직원이고 동료였지만 이제 회사를 떠나면 말 그대로 남인데 대기업을 가든 중소기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유학을 가든 경마를 하든 상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장 우리가 언제 회사를 떠날지 모르는 마당에 남이야 뭘 하든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지금은 가을이고 좀 있으면 연말이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동료가 떠나는 자리여서 싱숭생숭한 마음에 누군가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고 빨리 이 어정쩡한 송별회를 끝내고 각자 스케줄에 따라 자유 시간을 갖고 싶은 눈치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런 눈치를 감지한 리더 언니는 소주병에 소주가 아직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 이거 마시고 일어나자며 분위기를 조성했고 모두들 신속히 잔을 채워 아무 구호도 없는 건배를 하고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삼겹살집에서 나왔다. 아마 삼갑살집 사장님은 테이블이 빨리 비어서 디게 좋아했을 것이다.


송별회가 끝난 후 나는 투덜이에게 허전하면 어디가서 한잔 더 하겠냐고 물어봤는데 약속이 있다며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가버렸다. 회사는 관뒀지만 우리끼리는 자주 봐요 라고는 했지만 자주 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투덜이를 보낸 후 나는 왠지 허전해서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캔을 원샷하고 집에 들어왔다.


아무개 직원의 송별회가 조만간 또 있을 예정인데 그땐 어디서 송별회를 해야할지 고민이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