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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15 시나리오 모니터 이렇겐 하지 마라
  2. 2008.07.21 한국영화 다시 좋아지나? (1)

아는 작가가 직접 의뢰하는 시나리오 모니터를 하다보면 크게 16가지 유형의 시나리오를 접하게 된다. 잘 썼고 재미도 있고 영화화 가능성도 높아 보이고 흥행도 잘 될 것 같은 시나리오, 잘 썼고 재미도 있고 영화화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만 흥행은 안 될 것 같은 시나리오, 잘 썼고 재미도 있는데 영화화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흥행은 잘 될 것 같은 시나리오, 잘 썼고 재미도 있는데 영화화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흥행은 안 될 것 같은 시나리오, 잘 썼는데 재미는 없지만 영화화 가능성은 높아 보이고 흥행은 안 될 것 같은 시나리오, 잘 썼는데 재미는 없고 영화화 가능성도 낮아 보이지만 흥행은 잘 될 것 같은 시나리오, 잘 썼는데 재미는 없고 영화화 가능성도 낮아 보이고 흥행도 안 될 것 같은 시나리오, 잘 썼는데 재미는 없지만 영화화 가능성은 높아 보이고 흥행은 잘 될 것 같은 시나리오, 못 썼는데 재미는 있고 영화화 가능성도 높고 블라 블라 어쩌구 저쩌구 등등이다.

이 중 가장 조심해야할 경우가 ‘잘 썼는데 재미는 없고 영화화 가능성도 낮아 보이고 흥행도 안 될 것 같은’ 시나리오다. 영화화 가능성이나 흥행 여부를 떠나 잘 썼으면 재미있어야 정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시나리오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이런 시나리오를 누군가는 공모전용 시나리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못 믿겠으면 역대 공모전 당선작 중 몇 편이나 영화화에 성공했는지 세어보자. 그런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확실히 잘 썼다는 생각은 든다. 캐릭터나 구조적인 부분에선 아무런 문제점을 찾을 수가 없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고 나름 대의명분도 뚜렷하고 시의적절한 감도 어느 정도는 있다. 시나리오 자체만 놓고 보면 정말 완벽해서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재미가 없고 영화화 가능성도 낮아 보이고 흥행도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썼는데 재미는 없고 영화화 가능성도 낮아 보이고 흥행도 안 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해준다. 솔직한 모니터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고 비록 당장은 기분 나쁠 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고마워할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 때문이다.

상대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건 알겠는데 왠만하면 그러지 마라. 다른 건 몰라도 영화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는 말만큼은 하지 마라. 그랬다간 상대방이 고마워하기는커녕 십중팔구는 앙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영화화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되면 되는 대로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없다는 욕까지 먹게 된다. 앞에서 안 먹는 경우엔 뒤에서 먹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어찌됐건 그 시나리오는 잘 쓴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화가 안 되기라도 하면 또 모르겠는데 흥행도 그렇지만 영화화라는 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다. 아무리 영화화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시나리오라도 뜬금없이 공유같은 탑스타가 출연하고 싶어하거나 세월이 오래 흘러 그런 시나리오를 원하는 시대 분위기가 조성되거나 모두가 망할 거라고 예상했던 시나리오를 밀어붙여서 흥행에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 피디나 투자사 관계자가 남들은 이해 못 할 뭔가에 꽂혀서 영화로 만들고 싶어하면 한 번 정도는 영화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에 희귀하고 드문 경우긴 하지만 말 그대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느낌으로 2년에 한 번 꼴로 벌어지는 게 사실이다. 잘 썼는데 재미는 없고 영화화 가능성도 낮아 보이고 흥행도 안 될 것 같은 시나리오를 읽게 되면 그냥 축하한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니가 자랑스럽다고,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진심이라고 말해줘라. 그래야 두고 두고 욕 먹는 대신 나중에 잘 되면 술이라도 한 잔 얻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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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마라

Posted by 애드맨

진짜 오랜만에 시나리오 모니터 의뢰가 들어왔다. 그것도 한 편도 아니고 두 편씩이나 들어왔는데 두 편 다 무명 작가가 집에서 혼자 쓴 시나리오가 아니고 나름 이름있는 영화사에서 이름있는 감독과 이름있는 작가가 영화사와 정식으로 계약하고 통장에 돈 들어오는 것 까지 확인하고 나서 쓴 시나리오들이다. 한국영화가 망했다고는 하지만 영화계 말단에 자리잡고 있는 것조차 위태로운 나에게까지 이렇게 시나리오 모니터 의뢰가 들어온 걸 보니 어쩌면 한국영화가 슬슬 다시 좋아지려는 조짐 같기도 하다.


일단 시나리오를 읽어봤다. 아...아...


이런 시나리오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한국영화는 영영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바로 전화했다. 이걸 진짜로 영화로 만들 생각이냐고. 아무 죄 없는 관객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니들이 지금 제 정신이냐고. 차라리 내 시나리오를 공짜로 제공 할 테니까 그걸 영화로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이 시나리오들은 백날 모니터 해 봤자 영화화되지도 않을 거라고. 얘기해줬다. 나의 모니터를 들은 영화사 직원 두 명은 시나리오 끝까지 읽어보기나 한 거냐고 살짝 짜증을 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가 없고 싹수가 안 보여서 중간 정도까지만 읽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모니터를 의뢰한 영화사 직원 두 명은 약속이나 한 듯 내가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은 건지 확인 차원에서 몇 가지 세부 디테일들을 물어왔고 나는 바빠서 오래 통화 못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 미안했다.


그래도 한국영화가 다시 좋아지려는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