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는 청춘영화 빼고는 다 별로다. 특히 블록버스터는 실소가 나올 정도로 별로다. 최근에는 ‘진격의 거인’과 ‘테라포머스’가 진짜 웃겼다. 둘 다 무슨 어린이용 특촬물 보는 줄 알았다. ‘아이 엠 어 히어로’는 그나마 좀비영화여서 기대를 하고 봤다. 일본이 청춘영화를 잘 만들지만 저예산 B급 호러물 중에서도 종종 인상 깊은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혹시나 하고 봤는데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이건 일본영화계 특유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제작위원회 시스템의 한계 같기도 하다. 너무 원작 그대로 만들었다. 검증된 원작의 재미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이상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방대한 원작을 어떻게 각색했을지 궁금했는데 이렇다 할 각색 없이 초반부의 영화 한 편 분량만 뚝 잘라서 그대로 만들었을 뿐이다. 자연히 이야기가 완결된 느낌이 없고 16부작 미니시리즈의 초반 4부 본 느낌이다. 아마 한국에서라면 원작 훼손의 리스크를 무릅쓰고서라도 중후반부부터 대폭 각색에 들어갔을 것이다. 시리즈화가 된다 해도 그닥 기대는 되지 않는다. 원작 자체가 후반부로 갈수록 지리멸렬 흐지부지해지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그랬는데 주인공이 여고생과 함께 모험을 떠나기 전까지만 잠깐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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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휘날리며’ 이후 이런 유의 감동은 처음이다. 좀비 영화는 한국에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시리즈 중 ‘좀비 이야기는 쓰지 마라’ 편에서도 언급했듯 좀비 영화는 작가가 시나리오만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고 특히나 요즘 좀비 영화는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추세이므로 그럴듯한 좀비 영화는 돈과 시스템이 받쳐주는 헐리우드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다. 한국형 좀비 영화 ‘부산행’이 몇 달 전에 칸느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해서 그저 영화 속에 담겨 있을 사회 비판적 메시지 플러스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문 블럭버스터 좀비 영화니까 한 수 접고 봐줬으려니 했다. 몇 달 뒤 언론 시사회 평도 좋길래 그 역시 사회 비판적 메시지 플러스 한국형 블럭버스터 좀비 영화는 처음이니까 한 수 접고 봐줬으려니 했다. 개봉 이후 빠른 속도로 관객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 플러스 한국형 블럭버스터 좀비 영화는 처음이니까 플러스 딱히 볼 게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천만이 넘는 걸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천만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천만 돌파 못하면 나중에 IPTV로 보려고 했는데 천만 돌파 뉴스를 접하자마자 극장에 갔다. 과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말고 뭐가 더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첫 좀비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좀비들이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봐왔던 퀄리티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 퀄리티가 가능할 줄은 몰랐다. 좀비역 배우들의 열연도 놀라웠다. 좀비 연기라는 게 조금만 어설프면 웃기기 마련인데 하나도 어설프지가 않았다. 좀비떼 구현도 훌륭했다. ‘월드워Z’에 비해서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우리 대한민국이 누가 뭐래도 좀비 영화 강국에 등극했단 생각에 은근히 감개무량 뿌듯했다. 이제 한국은 우주 배경 SF 빼고는 다 되는 것 같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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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이야기는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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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렇겐 쓰지 마라 시리즈 중


좀비 이야기는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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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난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친구 한 명이 좀비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러지 말라고 했다. 니가 왜 좀비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지는 알겠는데 무조건 쓰지 말라고 했다. 친구는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좀비 아이템이 얼마나 장점이 많고 매력적인지 주장하며 날 가르치려 들었다. 미국이나 영국같은 영화 선진국에선 잘 되는데 한국에선 아직 안 됐으므로 자기가 지금부터 쓰겠다는 것이다. 나는 다 알겠는데 그래도 쓰지 말라고 했다. 굳이 써야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왠만하면 쓰지 말라고 간곡하게 만류했다. 친구는 그래도 쓰겠다고 했고 나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가능할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1억 미만의 저예산 독립 영화가 아니라 메이저 자본이 투자된 블럭버스터급 좀비 영화가 제작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그 언젠가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친구의 나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기 이전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메이저 자본이 투자된 블록버스터급 좀비 영화 프로젝트는 무명 시나리오 작가가 야심차게 집필한 시나리오로부터 출발할 리도 없다.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업 영화계에 좀비 영화 프로젝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내가 아는 프로젝트만 해도 서너 건 정도 된다. 그것도 단편영화제 수상 경력이 전부인 이름 모를 감독 지망생이나 신인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감독들의 프로젝트들이다. 지금은 다 엎어졌거나 진행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고 있고 아마 향후 몇 년간은 그 프로젝트들을 극장에서 보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유명 감독들의 좀비 영화들이 왜 다 엎어졌거나 지지부진하고 있을까? 분명 시나리오의 문제는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그 시나리오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어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이나 영국같은 영화 선진국의 좀비 영화들에 비해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좀비 영화 특유의 사회적 불안감이나 의미 같은 것들이 세련되게 담겨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거나 자신이 좀비에게 물린 후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며 괴로워하는 장면들도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좀비 영화들이 성취해낸 것들을 넘어서진 못해도 비슷하게는 이루어냈을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먹고 좀비가 된다는 내용의 시나리오가 두 편 있었다.)


그러나 좀비 영화는 다 거기서 거기일 수 밖에 없는 면이 있다. 신인이 쓰건 기성이 쓰건 기획 회의를 여러 번 거치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면 기본은 나오는 반면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짜 낸다해도 기본 이상은 나오기 힘들다. 설령 시나리오가 기본 이상으로 나온다 해도 단지 좀비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프로젝트가 엎어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왜 좀비 영화라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지가 아니다. 좀비 영화는 시나리오를 잘 쓰고 못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게 중요한 것이다. 내 생각에 지금 한국에서 블록버스터급 좀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봉준호 외엔 없다. 박찬욱은 ‘흡혈귀’, 김지운은 ‘하드고어’를 만들며 ‘모두가 말려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씩 써버린 반면 봉준호에겐 아직 ‘모두가 말려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좀비 이야기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혼자서 백날 써봤자 영화화 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강풀이 지금 연재 중인 '당신의 모든 순간'이란 만화는 좀비 이야기다. 어쩌면 영화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강풀이니까'다.) 어느 날 갑자기 메이저 영화사가 속해있는 그룹의 회장님이 국산 좀비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하신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혼자서 좀비 이야기는 쓰지 마라. 내가 지금 나 혼자 잘 되겠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설마 남들은 좀비 이야기 못 쓰게 한 다음에 나 혼자 몰래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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