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용 한국 공포 영화 시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영화가 수준 이하라도 달랑 한편만 개봉한다면 반드시 흥행에 성공한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용 한국 로맨틱 코미디 시장도 존재할까? 만약 크리스마스용 한국 로맨틱 코미디 시장이라는게 존재한다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달랑 한 편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는 반드시 흥행에 성공해야 마땅할 것이다.


작년엔 <달콤한 거짓말> 올해는 <걸프렌즈>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달랑 한 편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였다. 그런데 두 편 다 흥행 성적은 매우 저조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극장의 주요 고객층인 커플 관객들이 크리스마스에는 극장 말고 다른 데이트 장소를 더 선호하는 걸까? 음. 이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모텔이 크리스마스 바가지 상술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지만 모텔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 다음에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다. 모텔 간다고 극장에 안 가는 건 아닐 것이다. 혹시 크리스마스 대목을 겨냥해 제작된 블록버스터에 밀려 극장수 확보에 실패한 걸까? 음. 이건 분명히 아니다. 개봉관수가 독과점 수준은 아니었지만 흥행 성공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영화가 너무나도 수준 이하여서 차마 봐 줄 수가 없었던 걸까? 음. 이건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적어도 <달콤한 거짓말>은 후쿠오카 아시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므로 영화가 너무나도 수준 이하여서 흥행에 실패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또 뭐가 있을까? 더 이상은 모르겠다.


비록 2005년 <작업의 정석>과 2006년 <미녀는 괴로워>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2007년 <내 사랑>의 흥행 성적은 기억이 안 나고, 2008년 <달콤한 거짓말>과 2009년 <걸프렌즈>의 흥행 실패를 보면 크리스마스용 한국 로맨틱 코미디 시장은 없어져버렸거나 원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년 크리스마스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는 달랑 한 편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흥행에 성공할 것 같다고 예상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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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애드맨
가끔씩 네티즌 리뷰를 읽다보면 <이거 보고 여친과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이거 보고 남친이랑 싸웠어요> 등의 <이 영화 보여줬다가 욕먹었다>는 주제의 하소연성 리뷰를 볼 때가 있다. 그만큼 여러 사람의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런 주제의 리뷰를 읽을 때마다 크리스마스에 군대에서 비디오 틀어준 일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우리 부대에서 단 한 명 뿐인 영화학을 전공한 이등병이었는데 마침 부대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장병들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틀어줄 예정이었다. 그날 일직사령은 내가 영화학과에 다니다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영화학을 전공했으니 당연히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부대에서 제일 전문가라고 생각했는지) 부대 밖에 위치한 비디오가게에서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빌려오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자신있었다. 나는 군복무에 찌들어있는 동료 병사들에게 세상에는 헐리우드 최신작이나 홍콩 액션영화 또는 에로 비디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겠다는 계몽주의적 야심을 품고 말년병장 한 명과 함께 부대 밖에 위치한 비디오가게에 갔다. 말년병장은 당연히 헐리우드 최신작이나 홍콩 액션영화 또는 에로 비디오를 보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 부대에서 단 한 명 뿐인 영화학을 전공한 이등병인데 누구라도 고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영화를 빌려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희생>이나 <거미의 계략>같은 작품을 빌려올 만행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부대 근처에 위치한 시골 비디오가게에서는 나의 계몽주의적 야심을 충족시켜줄만한 작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르고 고르던 중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OOOO>를 발견했다. 무슨 이유로 부대 근처에 위치한 시골 비디오 가게에 <OOOO>가 비치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말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군복무에 지친 동료 병사들에게 영화학적인 깨달음을 주라는 계시가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진심으로 자신있었다. 어린 마음에 정성일 선생님도 극찬하신 <OOOO>라면 세상에는 헐리우드 최신작이나 홍콩 액션 영화 또는 에로 비디오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동료병사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년병장은 자대배치 받은 지 얼마 안 된 이등병이 진열대에서 꺼내 든 <OOOO>의 자켓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부대에서 단 한 명 뿐인 영화학을 전공한 이등병이 선택한 작품인지라 아무런 토를 달지 못했다.


우리는 비디오가게에서 나와 부대 근처에 위치한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맛있게 먹은 후 (말년 병장이 사줬다.) 부대로 복귀했다. 내무반에 들어가니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잔뜩 몸이 달아있던 동료 병사들의 기대감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잠시 후 우리 부대에서는 정성일 선생님도 극찬하신 <OOOO>가 상영되었고 그 날 이후 우리 부대에서 단 한 명 뿐인 영화학을 전공한 이등병은 다시는 비디오테잎을 빌리러 부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당시에는 나의 야심을 몰라준 동료 병사들이 정말 원망스러웠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도 여전히 원망스럽다. <OOOO>가 뭐가 어때서...

Posted by 애드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