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영화인이 되었고 나는 블로거가 되었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 후회는 없다!
p.s.
솔직히 이젠 늙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적은 나이는 아닌데 다시 현장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욕이나 먹으며 촬영 중이라고 길 막고 서 있기는 싫었고 남들이 피우고 촬영장 주변 아무데나 버린 꽁초나 줏으러 다니기는 더더욱 싫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어쩐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음달이나 다다음달쯤에는 한참 진행하고 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잘 풀려서 나 자신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줄 만한 껀수가 성사될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니까 그냥 웃음 밖에 안 나온다.
막연한 기대감 따위에 매달리지 말고 그 때 고마운 선배님이 시키는대로 연출부라도 했으면 지금쯤 촬영은 다 끝났을테고 돈도 지금보단 많이 벌었을 것이고 아마도 내년 초쯤엔 극장에서 내 이름을 구경할 수도 있었을텐데 정말 뭘 믿고 그랬는지 후회 막심이다.
물론 그 때 연출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아이템이 갑자기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될 리는 없을 것이고 연출부 잘 했다고 누가 감독하라고 등이라도 떠밀어주는 것도 아니며 당연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뭘로 보나 지금보단 나았을 것 같다. 연출부로 일하면 최소 6개월은 그냥 가는 건데 그 6개월 동안 연출부 안 하고 시나리오를 쓰면 한 달에 한 편만 써도 6편은 더 쓸 수 있고 그 6편 중에 <살인의 추억>이나 <조용한 가족>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 연출부는 안했지만 그동안 시나리오도 안 썼으니 당연히 <살인의 추억>이나 <조용한 가족>이 나올 리도 없다.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다. 모든 걸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누가 연출부 자리가 아니라 현장 진행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소개시켜주면 만사 제쳐두고 열심히 하고 싶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어보니 한동안은 연출부 자리도 구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막상 누가 연출부하라고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쩐지 다음달이나 다다음달쯤 되면 그동안 진행하고 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잘 풀려서 나 자신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줄 만한 껀수가 성사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야 뭐 지금이라도 쓰면 되는 거고 2008년도 아직 한 달하고 5일이나 남았다. 2008이란 컵의 물은 아직도 12분의 1이나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때 연출부라도 할 껄 그랬다는 후회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