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하다. SF지만 개념적으로 얄팍하거나 허술한 구석이 없고 이야기적으로도 탁월해 즐길 구석이 차고 넘친다. 비주얼은 이런저런 재탕이 많긴 했다만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저장소라는 장치 덕분에 육체를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고 정기적인 원격 백업 기능으로 불미스러운 사고 등으로 사망해도 라스트 업데이트 상태로 부활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클론을 이용하면 자신을 여러 명으로 만들 수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저장소라는 장치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해선 먼 미래에 그냥 그런 게 있더라는 식으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넘어갔지만 나머지 설정들은 지금도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서 마냥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중 육체 문제도 그냥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걸로 깔끔하게 짚고 넘어갔다. 느와르 장르로서의 매력이 충만하고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매우 정교하게 잘 설계되어있다.

 

다만 시간적 배경이 행성 간 여행이 가능한 지금으로부터 최소 몇 백 년 뒤의 먼 미래인데 매춘 시장은 현재와 근본적으로는 별 반 차이가 없어 볼 때마다 우스꽝스러웠다. 설마 그때까지 지금과 같은 형태의 매춘 업계가 존재할까? 엔딩에 밝혀지는 최상류층들이 저지르는 천인공노할 끔찍한 악행도 마찬가지다. 첨단 과학 기술이 발달한 그 먼 미래에 고작 그딴 짓을 저지르려고 그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장치들을 만들진 않을 것 같다.

 

금발 백인 여자의 고공 추락 씬에서 1987년 개봉작 ‘리쎌웨폰’의 오프닝이 연상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65년생 백인 남자이고 원작 소설은 2002년에 나왔다. 여러모로 아재스러운(개인적으론 정겨웠다) 구석이 있긴 하지만 할리우드 이야기 산업의 최첨단을 구경한 기분이다.

 

Posted by 애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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